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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Nov 23. 2015

20 영어 잘하는 법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나요?

  통장을 다 써서 새로  발급받으러 은행에 갔다. 은행원이 다 쓴 통장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입을 뗀다.


「어? 영어 학원 하시나 봐요?」

「아. 네.」


  (당시에는 영어 학원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더 이상 학원을 운영하지 않는다. 조만간 '나는 왜 망했는가?' 특집을 통해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려고 생각 중이다.)


「에휴.... 첫째 애가 중학생인데 영어를 잘 못해서 큰일이에요.」

「아... 그래요? 그런데 그건 전국에 있는 중학생들이 아마 다 비슷할 거예요.」


  우리 아이만 못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듣자 얼굴이 약간 밝아진 기색이다. 그리고 통장을 새로 발급해주면서 계속 무료 상담?을 시도했다.


「저도 영어를 공부해야지 하는데.. 잘 안 돼요. 영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죠?」

「아 네... (그걸 알면 학원이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통장 발급이 끝나서 황급히 무료 상담을 마무리했다. 


  영어를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지인들을 만나면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대화가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하긴 대한민국에서 영어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모두가 관심을 가지는 내용이다 보니 대화가 열띤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사과 김 과장님이 그러는데 나 이번 근무평가에서 영어성적 안 나오면 위험하데. 어떻게 하지?」

「이게 다 우리나라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이야! 십 년간 영어를 공부해도 말 한마디 못 하다니...」

「애기가 우리말을 배우듯이 영어도 그렇게 배워야 된데!」

「우리 애 엄마가 영어는 어릴 때부터 잡아야 된다고 난리야... 영어 유치원이니 뭐니 알아보고 다니는데 난 다  쓸데없는 것 같은데. 한 마디 했다가 "얘도 당신처럼 만들 거야?"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달려드는데..」

「나는 더도 말고 딱 외국인 하고 영어로 대화만 할 수 있으면 좋겠어. 일주일에 한 번씩 외국인 바이어 만나는데 부장님이 영어를 못 하셔. 우리 부서에 문과 나온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그나마 내가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부장님 방에 불려갈까 봐 외국인만 보면 숨기 바빠.」


  그렇게 실컷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고 나면 드디어 나에게도 발언권이 주어진다.


「근데 말이야. 나 이번에 큰 맘 먹고 영어 학원 등록했는데. 이렇게 몇 달 공부하면 되겠지? 네가 생각하기에는 어때? 너는 영어를 가르치니깐 잘 알잖아?」


  친구의 절박한 얼굴에서 요새 유행하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기운이 느껴졌다. '응 그렇게 하면 잘 될 거야.'라는 대답을 간절히 바라는 친구의 면전에서 나는 진실을 말했다.


「안 돼.」


  잘라 말하는 나의 단호함에 친구는 수긍할 수 없다는 얼굴로 약간 흥분하며 말했다.


「회사 끝나고 월수금 두 시간씩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해도 안 된다고?」

「그렇게 해서 영어가 된다면 전국에 영어 때문에 고민인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

「그 정도는 다들 해보지 않았을까?」

「그럼 어떻게 해야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냥 영어  공부하지 마. 그냥 그 시간에 다른 거 해.」


  나의 처방에 친구들은 쓴 웃음을 지으며 담배를 물었다. 그런데 그 날 나와 만났던 친구들은 다들 좋은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나름 엘리트들이다. 전자, IT, 마케팅 등의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들에게도 영어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영역인 것 같다. 


  헛된 희망을 주는 것보다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것이 낫다. 영어는 일주일에 몇 시간 공부해서 절대로 실력을 쌓을 수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하는 게 정신건강에 더 좋을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 친한 지인들이 '영어 공부법'에 대해서 물어 볼 때마다 나는 아이러니하게 '영어를 포기해라'고 일러준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실망스러울 때는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기대치가 낮으면 실망도 적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인생에서 행복이란 내가 꿈꾸는 모습과 현재 모습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차이가 작으면 인간은 행복감을 느끼고, 이 차이가 크면 인간은 불행을 느낀다. 우리가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가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영어를 잘 하게 되면 인정도 받고 급여도 오르고 스스로도 자랑스럽고, 즉 삶의 질이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즉 영어를 잘 하게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어를 통해서 행복에 이르는 길은 결코 권하고 싶지 않다. 그 과정이 너무나 험난하고 많은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도저히  먹고살 길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영어를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터득한 것을 알려주고 싶다.


  첫째, 영어를 공부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시간 확보'이다. 이게 영어를 공부하는데 제일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얼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학습자들이 예상하는 것과 실제로 필요한 시간의 괴리감이 크다. 수업을 듣는 것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공부하는데 최소한 하루에 3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하루에 1~2시간씩 공부해서는 10년 동안 해도 안 된다. 그리고 하루에 3시간을 확보해도 실제로 공부하는 시간은 2시간 정도로 봐야 한다.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모임과 가족 행사 및 여러 건강상의 이유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1~2시간을 확보하면 실제 공부시간은 1시간 이하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둘째, 외우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 체질적으로 외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영어 말고 다른 것을 공부하는 것이 같은 시간을 투자해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영어는 암기로 시작해서 암기로 끝난다. 영어 공부는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읽으면서 이해하는 것이다. 단어를 외우지 못하면 문장을 이해할 수 없다. 하루에 일정 시간을 단어를 외우는데 투자해야 한다. 외우는데 비법은 없다. 다만 단어 30개를 열 번 본다고 치면, 저녁에 열 번을 보는 것보다 아침에 3번, 점심에 3번, 저녁에 3번, 자기 전에 1번 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셋째, 영어를 잘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자.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영어를 공부하는데 영어를 잘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니? 맞다. 영어를 공부하다가 포기하게 되는 가장 큰 경우가 이런 생각이 들 때이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왜 아직도 영어를 못하지?」


  이런 물음이 생기면 우리 머리는 자연스럽게 답을 찾고자 한다. 우리의 머리가 생각해내는 가장 빈번한 오답은 다음 두 가지이다.


「지금 하는 방법이 문제가 있나 봐. 뭔가 기가 막힌 다른 비법이 있을 거야.」

「나는 해도 안 되나 봐. 영어는 나랑 안 맞아. 」


  이 오답에 빠져서 영어를 포기하는 사람이 전국에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이 오답을 꽤나 설득력이 강하기 때문에 이 오답이 유발하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위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기 위해서는 기대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냥 하자. 최소한 하루에  3시간씩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다. 일단 2년을 그렇게 투자하자. 2년 뒤에는 '왜 아직도 영어를 못 할까?'라는 생각이 안 들 것이다. 왜냐하면 영어 실력이 늘었다는 것을 본인이 느끼기 때문이다.


「헉! 하루에 3시간식 2년을 영어에 투자하라니? 에이! 그렇게는 난 못해!」


  혹시나 이런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은 아직 영어를 공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다. 사람은 절박하면 다 하게 되어 있다. 영어가 초급에서 중급으로 가기 위해서는 하루에 3시간씩 5년 정도를 공부해야 한다. 5년이 너무 길다면 하루에  5시간씩 3년간 하는 방법도 있다. 3년도 긴 사람은 하루에 8시간씩 2년하는 방법도 있다. 참고로 내가 선택한 방법은 하루에 12시간씩 2년 이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생활이 너무 피폐해지므로 권하고 싶지 않다.  


  어쨌거나 영어의 실력은  투자한 시간에 비례한다. 


「주변에 그렇게 안 해도 영어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


  그런 경우는 둘 중 하나이다. 그 친구가 공부하는 것을 못 봤던지, 아니면 그 친구의 언어적 센스가 좋은 경우이다. 어느 분야나 감각이 좋은 사람이 있다. 문제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그게 없다는 것이다. 소수의 감각이 좋은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평범한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기다. 이 때 성패를 가르는 것은 시간이다. 영어는 시간 싸움이다. 누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영어에 투자할 수 있는지가 영어 학습의 본질이다.


  영어 잘하는 법이라고 해서 어떤 책으로 공부하고, 어떤 특별한 수업으로 단기간에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비법을 기대했다면 실망했을 수도 있다. 본인 수준에 맞는 아무 책으로 해도 된다. 단어를 입으로 외우던지, 깜지를 쓰던지, 눈으로 외우던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학원에 다니던지, 인강을 듣던지, 독학을 하던지  상관없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읽어야 한다. 나머지는 다 부수적은 것이다. 

 

  정리하면,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공부하면서 포기하게 되는 이유가 노력한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를 공부할 때는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실망할 이유도 없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깐. 구체적으로 영어를 공부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하루에 3시간을 마련할 수 없는 사람은 영어 공부를 다음 기회로 미루자. 적어도 하루에 3시간을 공부해야 한다. 이렇게 5년 정도 하면 영어로 인한 답답함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이 기간을 줄이고 싶으면 하루에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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