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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Nov 30. 2015

21 제 스타일이에요

공부에도 스타일이 있다.

  1990년 미국, 리타 던(Dunn)은 이전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중학생들만 불러 모았다. 각 학교에서 속칭 골치 아픈 '문제아'들만 모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각각 언제 공부할 때 가장 맑은 정신으로 집중이 잘 되는지 조사했다. 어떤 학생은 아침에 공부하는 것을 선호했고, 어떤 학생은 오후에 공부하는 것을 선호했고, 다른 학생은 밤에 공부하는 것을 선호했다. 조사 후에 리타 던은 학생들이 원하는 시간에 공부를 하도록 허락했다. 그러자 학생들의 수업태도가 달라졌고, 성적이 향상되었다. 벌써 25년이 지난 다른 나라의 연구이지만 여전히 교육에 관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학습방법이 생겨나도 교육은 학습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무릇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코가 마비돼 구린내를 맡지 못한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과목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은 낯선 사람의 관점이 필요하다. 2007년에 한국을 방문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대한민국의 교육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두 같은 나이에 학교에 들어가서 비슷한 것을 반복적으로 배우는 것은 공장을 연상시킨다. 미래에 청소년들이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아닌 만큼 교육의 다양성이 확대돼야 한다.」


  그래서일까 ‘창의적 인재 양성’이라는 국가 교육과정의 목표가 획일적인 교육 현장 아래에서 더욱 처량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을 보면 가끔씩 (내가 보기에) 이상한 모양의 목걸이나 귀걸이를 하고 오는 학생들이 있다. 


「너는 왜 그런 걸 하고 다니냐?」


  라고 물으면.


「제 스타일인데요.」


  라고 일축한다. 그럼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스타일이란 무엇일까? 사전에는 ‘사물의 존재 양태나 사람의 행동에 드러나는 독특하고 일정한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전에 풀이되어 있는 정의가 그렇듯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은 아니다. 좀 더 쉽게 풀이해보면 ‘개인의 취향’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취향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므로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제 스타일이에요.」 


  이라고 말하는 순간 논란의 여지는 사라진다. 그냥 어떠한 연유로 인해서 그게 좋아서 그렇게 할 뿐이다. 개인의 취향은 그 사람의 일부분으로 인정해야 할 요소이지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 그것을 억지로 바꾸고 고칠 필요가 전혀 없다.

      

  배움에도 스타일이 있다. 영어로는 ‘Learning Style’, 우리말로는 ‘학습 양식’ 정도로 번역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옷을 입거나 음식을 선호하는 스타일은 잘 인정하는 데 반해 공부하는 스타일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본인이 생각하기에 옳다고 느끼는 방법을 자꾸 강요한다. 특히 학창시절에 공부 꽤나 했던 어른들은 아래와 같은 식의 주장을 펼친다.


「교과서를 다 암기해야 한다.」

「한 자리에 앉으면 엉덩이를 띄지 말고 세 시간은 공부해야 된다.」


  그리고 본인이 만나본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다 그렇게 했다고 반론의 여지를 없앤다. 과연 그럴까? EBS 프로그램 ‘공부의 왕도’라는 것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전국에서 공부 잘 하기로 소문난 학생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일상과 공부법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학생들은 공부에 관해서는 시비의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우수한 학업성취를 보이는 학생들을 조사한 결과 그들의 공부 방법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혼자서 조용히 수업시간에 필기한 내용과 자습서와 문제집 등으로 정리하는 방법을 선호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 집에서 어머니를 불러다 놓고 본인이 공부한 내용을 설명하는 방법을 선호하는 학생이 있었다. 카메라 감독이 왜 그렇게 어머니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느냐고 묻자, 그 학생은 그래야 기억이 더 잘 된단다. 책에서 읽을 때는 아는 것 같았는데 막상 설명하려고 하면 막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어느 부분의 공부가 부족한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 자리에 앉으면 옆에서 친구들이 불러도 못 들을 정도로 집중을 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 20분마다 자리를 옮겨 다니며 공부를 하는 학생도 있었다. 카메라 감독이 왜 그렇게 자주 움직이냐고 묻자 한 자리에 앉아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집중력이 흐려지기 때문에 자꾸 옮겨 다니는 게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란다.

      

  학생이 아직 공부하는 법을 잘 모를 때는 어른이 올바른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나쁜 습관들(자주 움직이기, 쓸데없는 말 많이 하기,  푹신푹신한데서 공부하기, 어두운 데서 공부하기, 친구들과 공부하기, 먹으면서 공부하기, 시키는 것만 공부하기, 눈으로만 공부하기 등등)을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이런 개인의 특성들이 고쳐질 수는 있는 것일까? 유전과 환경 등으로 인해 몸에 베인 언어, 행동, 사고방식 그리고 개성 등의 경향성은 개인의 특성으로 이해해야 할 요소이지 인위적으로 바꾸기 힘들다고 뇌 연구자 Restak는 말한다. 물론 무력을 통해서 잠시 바꿀 수는 있지만, 그 무서운 사람이 없으면 다시 본인의 스타일로 회귀할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장점과 특성을 살리는 방법으로 공부를 시키자는 것이다. 그리고 학습자들은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본인에게 맞는 스타일을 스스로 찾아 갈 것이다. 남이 이래라 저래라 하면 오히려 반발이 들어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중학교 2학년 태영이는 '방학보다 학교 다니는 게 더 좋다.' 고 말하는 전국에서 유일한 학생일 것이다. 방학이 되면 어머니가 전과목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지를 모두 가져다가 틀린 문제를 오답노트로 만들라고 시키기 때문이다. 태영이 어머니가 그렇게 해서 효과를 봤는지, 그 방법이 좋다고 들어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태영이는 방학이 되면 오답노트 만드느라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바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방학 때마다 그렇게 놀지도 못하고 오답노트를 만드는데 태영이의 성적에는 큰 변화가 없다. 오히려 자신은 방학인데도 놀지 못한다는 피해의식만 커지고 있다. 태영이는 원래 모범적인 타입이다. 그리고 스스로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 즉 자기주도 학습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태영이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믿어주고 격려를 해주는 사람이다. 그러면 태영이는 틀림없이 본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것이다. 그런데 일방적인 전과목 오답노트가 아이의 학습의지를 사장시키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 공부로 유명한 사람이 있었다. 건설현장에서 막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틈틈이 공부해서 서울대 법대에 수석으로 들어간 장승수이다. 그의 이야기는 전국에 많은 수험생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공부 했던 과정을 책으로 썼는데, 그 제목 때문에 많은 수험생이 고개를 떨구었다. 책 제목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이다. 수연이는 책에서 소개한 공부법을 따라 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안 되었다. 왜 그럴까? 그는 하루 종일 육체노동을 하고 와서 자기 전까지 국사책을 틈틈이 읽어 20번을 회독했는데, 수연이는 한 번도 읽기가 쉽지가 않았던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장승수 와 수연이는 다르기 때문이다.      


  홍정욱이라는 사람은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하고 공부한 이야기를 7막 7장이란 책으로 풀어냈다. 그 책이 나오고 그가 다녔던 초우트 로즈메리 홀 고등학교에 한국 학생들의 입학이 쇄도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우승한 다음 달이면 많은 어린 여자아이들이 엄마 등에 떠밀려서 아이스 링크 장으로 들어가서 엉덩방아를 찧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월드컵 시즌에는 꿈나무 축구교실이 성황을 이룬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시키는 것은 너무나 좋은 일이다. 문제는 아이들의 특성과 자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내 아이도 저렇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어른들의 마음속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수학의 정석의 저자 홍성대 씨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이 뛰노는 운동장 옆에서 나뭇가지를 가지고 땅에다 수학 문제를 풀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런 말을 듣고 내 아이를 운동장에다가 나뭇가지를 쥐여놓고 수학을 공부하라고 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따라한다고 해서 내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그와 나는 다르기 때문이다. 모범생도 다양한 스타일의 학생이 존재한다. 어떤 롤모델을 정해서 그에게 장점을 배우는 것은 참 좋다. 그러나 학생이 타고난 본연의 스타일을 무시한 채 일률적인 방법을 강요해서는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너무나 힘들고 효과도 미비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학습자의 특성을 무시한 채 획일적인 학습방법을 강요한다면 단언컨대 그 아이는 공부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 공부의 시작은 학습자를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옷 입는 스타일, 음식을 먹는 스타일, 쉬는 스타일... 공부에도 스타일이 있는데 이를 '학습 양식'이라고 한다. 다른 스타일을 인정해주는 것처럼 공부하는 스타일도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엎드려서 공부하는 아이를 힘들게 일으켜 세울 필요가 없다. 본인이 공부하다가 '이게 나 한테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느끼면 알아서 일어날 것이다. 만약 아이가 엎드려서 잔 다면 그 아이는 책상에 앉혀 놔도 잘 것이다. 편하게 엎드려 자게 두자. 그리고 일어났을 때 어떻게 이끌어야 되는지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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