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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Dec 18. 2015

22 내 아이에게 맞는 처방전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를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교육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다양한 학생들을 만난다. 편의상 크게 네 부류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1 능력도 뛰어나고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

2 능력은 뛰어나지만 열심히 노력하지는 않는 학생

3 능력은 평범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

4 능력도 평범하고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는 학생


  '열심히 노력한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를 간단하게 정의해보면, 열심히 노력한다는 말은 평소에도 일정한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은 평소에는 공부하지 않다가 시험기간에만 1~2주 반짝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심지어 시험기간에도 공부하지 않는 학생도 존재하지만 일단은 논외로 하겠다. 이런 아이들은 추후에 따로 다룰 것이다. 너무 할 말이 많으므로...


「어? 선생님. 제 아이는요, 학교도 다니고 학원도 다니고 독서실도 다니는데 평소에 공부하는 것 아닌가요?」


  전국에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학원에 다닌다. 중요한 것은 수업시간에 앉아서 정말로 공부를 하는가 이다. 만약 앉아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과연 지금 내 아이는 수업시간에 앉아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을까? 아니면 어서 수업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매점에 가서 뭘 먹을지 메뉴를 생각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지금의 어른들이 어렸을 때 수업시간에 어떻게 했는지 떠올리면 된다. 시대가 달라져도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다. 특정한 환경에 놓이면 사람은 다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되어있다.


  독서실에서 공부한다고? 응답하라 1988을 보면 아이들이 독서실에 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집에서는 독서실에 간다고 하니깐 "이제 고3이 되니깐 달라졌다."고 아이를 기특해한다. 그런데 독서실에서 만난 친구에게는 본심을 드러낸다. 


「어? 너 독서실에는 웬일이야?」

「아이씨... 집에서 자면 눈치 보여. 여기서 편하게 잘 거야. 나 12시에 깨워줘.」

「......」


  역시 친구는 좋은 것이다.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으니 말이다. 성실하지 못한  한두 명의 얘기일까? 중학교 때 친구 종현이는 독서실을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다. 주말도 거르지 않고 다니는 모습에 나도 위기의식을 느껴서 같은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주위의 친구를 무작정 따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 그런데 독서실에서 종현이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대신 만화책을 보았다. 책상 위의 서랍장을 열어보고 기겁했다. 그곳에 당시에 인기 있었던 만화책이 1권부터 40권까지 꽂혀 있었다. 종현이는 내가 처음 독서실에 간 날 씨익 웃으면서 1권을 건넸다. 그 날부터 나도 열심히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종현이는 독서실에서 못다 읽은 책은 집에 가져간다고 한다. 다만 집에서는 교과서 아래에 만화책을 넣고 봐야 한단다. 엄마가 방에 들어올 때를 대비해서.


  즉 아이들은 독서실에 어른들의 눈을 피해서 자유롭게 다른 것을 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요즘의 아이들이라고 다를까? 형태가 스마트폰으로 달라졌을 뿐 공부하는 척하고 다른 것을 하고 싶어 하는 본심은 달라지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안 사주면 문제가 해결될까? 친구 폰을 빌려서 한다.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는  아이일수록 노는 데에는 기발한 창의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처음에는 수업시간에 잘 가르치면 학생들의 성적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쁜 시간을 쪼개서 TESOL 과정에 등록을 했다. TESOL은 간단히 말해서 영어 교수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1~2개월짜리 속성도 있지만,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근처 대학교에 6개월 과정의 TESOL을 등록했다. 졸업하고 배운 것을 수업시간에 적용해보니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나름의 변화는 있었지만 이론과 현실은 달랐다. 수업시간에 개인적인 만족도는 약간 높아졌지만 학생들도 그렇게 느끼는 지는 미지수였다. TESOL을 시작할 때는 이것만 배우면 문제가 다 해결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문제에서 교수법의 변화로는 근본적인 처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시중에 나와 있는 공부법 관련 책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유명한 책을 섭렵하다 보니 책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내용이 모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공부에 관해 둘째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1 예습 복습

2 꿈

3 계획

4 자투리 시간 활용


  이를 우리 아이들에게 적용해 보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예습 복습이 중요한지 몰라서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습 복습이 중요한지 알아도 하기 싫은 마음이 너무나 커서 실천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의 꿈은 '공부하지 않고 먹고 노는 것'이란 걸 아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계획표를 짜라고 하면 방학 계획표처럼 지킬 수 없는 시간표가 나왔고, 자투리 시간에는 눈이 충혈될 정도로 게임을 하고 정신이 나갈 정도로 수다를 떨었다. 역시나 아이들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법을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책에서 읽을 때는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 교육현장에서 적용을 해보니 '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TESOL에서 배운 교수법도 안 통하고 전문가들이 말하는 공부법도 안 통했다.  그즈음에 어렴풋하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공부하기 싫어하는 '마음'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직접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전공은 '교육심리'였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직접 아이들의 마음을 파헤치기로 결정한 것이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문제의식은 하나였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 하게 이끌 수 있을까?


  대학원 공부를 마칠 때 이 질문에 대한 답만 가지고 나오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목표가 명확하니 마음에 동력이 생겼다. 그렇게 전 세계의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진 연구들에 대해서 읽어보고 고민할 기회를 가졌다. 흥미로운 점은 나라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아이들이 보이는 특성은 비교적 유사하다는 것이다. 전 세계 어느 곳이나 부모와 자식은 공부 때문에 갈등이 있었고, 어른들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위 질문에 대한 대해서 내가 찾은 답은 다음과 같았다. 효과가 있는 방법으로 하면 된다. 안 되는 아이는 없다. 교육자가 그 아이에게 효과가 없는 방법으로 이끌기 때문에 아이가 따라오지 않는 것이다. 어떤 방법이 효과가 있는지 물어보면 한 마디로 대답할 수는 없다. 너무나 다양한 학생이 존재하기 때문에 방법도 다양하다. 


  지연이는 재수생이다. 그런데 내일부터 당분간 학원에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해맑게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엄마 가요. 저보고 그렇게 공부해서는 100년을 공부해도 대학을 못 간데요. 쓴 맛을 보고 정신을 차려야 해서 아는 사람의 식당 주방에서 한 달간 강제로 일 하래요. 」


  그렇게 지연이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하루아침에 재수생에서 주방 보조로 바뀌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이틀 만에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그곳을 '지옥'같은 곳이라고 묘사하며 치를 떨었다. 지옥을 경험한 지연이는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그 방법은 지연에게 효과가 없었다. 그렇게 지연이는  올해 수능을 보고 내년 재수 선행반에 다시 등록을 하러 학원에 찾아왔다.


  진수는 고3이다. 영어만 1~2등급 정도가 나오고 나머지는 4~6등급 대에 머물렀다. 어렸을 때 진수 부모님은 고민 끝에 조기유학을 결정했다. 한국에서는 영어 하나만 잘해도   먹고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진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초등학교 6년을 필리핀과 캐나다에서 생활했다. 덕분에 영어 하나는 웬만큼 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을 한국의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하지 못하는 대가를 치렀다. 기초가 너무 부족하니 공부에 의욕 자체가 없었다. 부모님은 애간장이 탔고 혹시나 조기유학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죄의식마저 느꼈다.  그때 진수 아버지가 내린 처방은 전국의 명문대학 탐방이었다. 아버지는 진수가 유명한 대학 캠퍼스를 보고 '나도 이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란 것이었다. 그렇게 진수는 일주일 정도 아버지와 전국에 있는 명문대학교 투어를 했다. 명문대학 탐방이 끝나고 진수한테 무엇을 느꼈냐고 물었다.


「아이씨... 다리 아파 죽는 줄 알았어요.」

「그거 말고 뭐 다른 건 없어? 아 이 대학을 보니깐 죽어라 공부해서 가고 싶다 라든지...」

「어차피 오르지도 못할 나무를 쳐다보면 뭘 하겠어요...」

「아버지한테도 그렇게 말했니?」

「에에? 그럼 큰일 나죠.」

「그럼 아버지한테는 뭐라고 했는데?」

「그냥 열심히 하겠다고 했죠 뭐...」


  이는 진수에게는 별로 효과가 없었던 방법이다. 역시나 명문대학 탐방을 한 뒤로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이 무기력하게 공부하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환점이 생긴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진수가 흥분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유명 연예인(아마도 문근영이었던 것 같다.)이 어떤 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본인도 미친 듯이 공부해서 그 연예인이 다니는 대학교의 그 과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본인은 그 연예인을 실제로 한 번만 보고 죽어도 소원이 없을 정도로 좋아한다는 것이다. 우리 어른들이 들으면 한심한 생각이지만 진수는 그게 학습에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몇 달간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결국 두 과목의 등급 합이 4가 나와서 목표로 한 대학에는 떨어졌지만 서울 4년제 대학에는 들어갔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과는 다른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이유로든 아이가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한 다면 그것으로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하는 것 아닌가? 모든 아이가 '지구촌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겠다', '불치병의 치료약을 개발해서 전 세계인의 삶에 기여를 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질 수도 없고, 가질 필요도 없다. 그저 내 아이에게 맞는 처방전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정리하면,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를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에 대한 대답은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쓰자는 것이다.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일률적으로 답할 수가 없다. 주변에서 그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어른들과 상의해서 풀어가야 할 문제이다. 누가 그 아이를 가장 잘 알까? 뱃속에서 10개월간 품고 기어 다닐 때부터 봐온 부모보다 그 아이를 잘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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