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석철 Dec 29. 2015

24 너는 이것도 모르니?

우리 아이 발달 보고서

  학원을 운영할 때였다. 원생을 모집하기 위해서 광고지를 만들어서 집집마다 돌렸다. 그러데 기다리던 상담전화는 오지 않고 경찰서에서 오라는 것이 아닌가? 이유를 물어보니 남의 집에 불법으로 광고물을 붙여서 신고가 들어왔기 때문에 벌금을 내라는 것이다. 현행법상 남의 집 대문에 광고지를 붙이는 것이 불법이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범법자가 되었다. 경찰서에서 '몰랐습니다.'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그러면 우리 집 대문에 매일 붙어있는 중국집, 치킨, 피자 광고지는 뭐냐고 물어보니깐,  그분들은 벌금을 감수하고 광고를 하는 거란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영업이 안 되니깐. 세상 물정을 몰랐던 나의 미숙함에 입술을 깨물고 경찰서를 나왔다.


  며칠 뒤 다른 경찰서에서 또 연락이 왔다. 벌금을 냈는데 왜 또 오라고 흥분해서 따졌다. 나의 이런 반응에 익숙한 듯 수화기 넘어 경찰서 직원은 노련하게 나의 분노를 잠 재워 나를 경찰서까지 오게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경찰서마다 관할구역이라는 것이 있는데,  지난번 경찰서에서는 A구역을, 이 경찰서에서는 B구역을 담당한단다. 그런데 전단지를 돌린 지역이 A구역과 B구역을 포함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각각의 경찰서에서 벌금을 내야 한단다. 그게 '법'이란다. 미치고 환장한다는 것이 어떤 상황에 쓰는 말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요즘 정말 다들  먹고살기 힘든데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정말 저에게 재량권이 있으면 저는 이런 민생 관련 일은 훈방조치로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신고가 들어오면 어쩔 수없이 처리를 해야 됩니다. 」

「지난번에도 냈는데 또 내라니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정말 미안하고 저도 이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장님 말고도 이렇게 많은 신고가 들어옵니다. 그런데 원장님은 그나마 형편이 좋은 분이에요. 좀 전에 여기 이 열쇠 하는 분이 다녀 가셨는데, 정말... 그 할아버지는  며칠 동안 일해서 번 돈을 벌금으로 낸 거예요. 원장님은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

「.....」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최대한 하겠습니다. 제일 액수가 적은 걸로 끊어드리겠습니다. 」


  생활질서계였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그 문을 나오면서 다시 한 번 인생을 배운 수업료를 치렀다. 그리고 며칠 뒤에 그 광고지를 보고 초6 유종이라는 한 아이가 등록을 했다. 그 아이가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는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종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해맑았다. 나는 속으로 '이상한데, 한국에서 저렇게 해맑은 아이는 보기 힘든데...'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부모님 사업으로 베트남에서 초등학교를 보내고 이제 한국에 왔단다. 비교와 경쟁으로 내몰리는 한국에서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으면 저런 표정이 나올 수가 없었다. 


  일이라는 것이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유종이가 들어오고 조금 있다가 잘 다니던 미정이가 학원을  그만두겠다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와 통화를 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특목고를 보내기 위해서 아이를 소위 빡센 학원에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때 미정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평소에 나이에 맞지 않는 어두운 표정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집에서 날마다 얼마나 시달렸을까? 미정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미정이가 '영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영재가 아니라면 교육을 통해서 영재가 되게끔 만들 기세였다. 그러한 어머니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미정이는 영재 코스프레를 해야 했다. 인간은 자신의 양육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본능적으로 존재한다. 이 동물적 감각이 어른이 돼서는 자신보다 권한이 센 사람이 요구하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파악하는 능력으로 발전한다. 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면 사회생활이 고달파진다. 어쨌든 미정이는 열혈 어머니 덕분에? 그러한 감각이 또래보다 월등히 발달할 수 있었다.


  사실 학원에서도 미정이는 초3 친구들과 수업을 듣지 않았다. 어머니의 성화에 초4 언니 오빠들과 같이 수업을 들었다. 초3과 초4는 큰 차이가 없기에  거기까지는 아이도 그럭저럭 따라오고는 있었다. 그러나 1학년 선행으로는 어머니의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후문으로 들었는데 미정이는 특목고 대비 학원의 '심화 선행'반에 들어갔단다. 미정이의 실력은 정확히 초등학교 3학년 중간 정도이다. 그런데 중학교 기초과정을 심도 있게 먼저 배우는 반에 들어간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성장을 한다. 성장하는 속도는 제각각이지만, 성장하는 단계는 정해져 있다. 이 단계를 이론으로 정립한 사람이 그 유명한 발달심리학자인 피아제이다. 예컨대 눈에 보이는 물건을 서랍 속에 넣으면 1~2세 아기는 그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두리번거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아직 이 부분을 사고하는 뇌 부위가 발달하지 않은 것이다. 이 아이에게는 (설사 말을  알아듣는다고 해도)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갓난아기들은 눈에 보이면 사물이 존재한다고 믿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사물이 사라진다고 믿는다.


  물체가 시야에서 사라지더라도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능력을 '대상영속성'이라고 한다. 이게 어른들에게는 '그걸 왜 모르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기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다 3~7세가 되면 뇌의 여러 부위가 성장하기 시작한다. 말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감정 표현도 한다. 그러나 아직도 뇌는 공사 중이다. 이 시기의 아이는 대상영속성은 습득했지만 아직 어른의 뇌와는 다르다. 예컨대 똑같은 양의 물을 보여주고 한쪽 물을 높은 통으로 옮겨서 어떤 물이 더 많은지 물어보면, 높은 통으로 옮긴 물이 더 많다고 얘기한다.  이때 어른이 할 수 있는 최악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너 바보냐? 이걸 왜 몰라? 봐봐... 같잖아. 같은 양이야! 이걸 다른 통으로 옮기도 당연히 같지! 응? 알겠지?」

「네.....」


3~7세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한다. 


  며칠 뒤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확인해본다. 그런데 이 시기 아이들은 논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기억력도 어른과 다르다. 며칠 전 일을 새까맣게 잊어먹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너는  지난번에 배웠는데 그걸 벌써 잊어먹었니?! 이게 같은 거라고! 봐봐! 같잖아!」

「네.....」


  며칠 뒤에도 혹시나 하고 다시 한 번 확인을 했다. 그제야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준다. 이해를 한 것일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여전히 이해는 되지 않지만 혼나지 않은 선택을 한 것일 뿐이다. 왜 이 시기의 아이들은 이 간단한 것을 이해하지 못할까? 이 시기의 아이들은 많아 보이면 많은 거라고 생각한다. 이게 많아 보이지만 좀 전에 같은 양이 있었으므로 같은 것이라는 논리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 이를 '직관적 사고'라고 한다. 


  이러한 아이를 때리고 윽박지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또 가르친다고 이해가 되는 것도 아니다.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뇌가 발달해야지만 직관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4차원과 5차원의 얘기가 나온다. 이 영화를 보고 굉장히 많은 어른들이 '이해가 안 된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일반인들의 뇌는 4차원과 5차원을 사고할 수 있는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 한 번을 보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저 나이 또래의 아이들에게 물을 다른 통으로 옮기고 나서 어느 것이 많은지 물어보는 것은 어른들에게 4차원과 5차원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 이 나이의 아이들은 엄마의 생일 선물로 뽀로로 인형을 준다. 즉 내가 뽀로로를 좋아하면 다른 사람도 뽀로로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의 생각이나 관점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를 '자아중심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뇌가 발달하는 속도는 개인의 경험, 문화, 성숙도 등에 따라 다르다. 소개팅에 나가서 본인이 좋아하는 게임 얘기를 늘어놓는 남자, 또는 본인이 좋아하는 연예인 얘기만 하는 여자는 아직 자아중심성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내 생일에 본인이 좋아하는 술을 선물하는 남편은 아직 자아중심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걸로 볼 수 있다. 


  연구결과 일반적으로 질량, 길이, 면적을 담당하는 뇌는 7~9세 때, 무게의 개념을 담당하는 뇌는 9~10세 때, 부피의 개념을 담당하는 뇌는 14~15세 때 발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므로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에게 부피를 구하는 문제를 풀게 하려고 애쓰지 말자. 논리적인 사고를 관장하는 뇌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발달한다. 발달 수준에 맞는 교육을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초등학교 때 중학교 과정을 선행하는 아이가 얼마나 끔찍한 경험을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정리하면, 아이를 교육하는 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항은 '발달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뇌의 발달을 말한다. 몸은 크지만 뇌와 몸이 비례해서 발달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특정 나이가 되면 뇌의 어떤 영역이 발달한다는 것은 연구로 확인되었지만 이 또한 개인차가 크다. 따라서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어른으로서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3 선행학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