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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Jan 03. 2016

25 자기주도학습

자기주도학습으로 전교 1등을 하는 아이들

  중3 철희는 여느 학생과 마찬가지로 공부를 하기 싫어한다.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만 활력이 생기고 수업시간이 되면 다시 책상에 엎드리거나  딴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성적이 잘 나올 리가 없었다. 성적이 끝없이 추락하자 엄마는 불안한 마음에 여기저기 좋다는 학원을 알아보고 시작했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자기주도학습'에 관한 강연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거기서 철희 엄마는 충격을 받았다. 자기주도학습을 통해서 전교 하위권, 중위권아이들이 상위권으로 올라가는 사례를 보자 드디어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한 듯 심장이 두근거렸다.


  1등을 하는 아이들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철희 엄마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했다. 어려서부터 시행착오를 통해서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평생 의존적인 사람이 된다는 얘기에 철희 엄마는 가슴이 철렁했다. 안 그래도 아이가 스스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서 걱정이 컸기 깨문이다. 부모님의 지나치게 과열된 교육열이 아이들의 정신장애를 유발한다는 설명은 남의 얘기 같지가 않았다. 철희가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주의가 산만해서 ADHD가 아닌가 하고 남몰래 걱정하기도 했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자기주도학습을 시키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강연장을 나왔다. 


  엄마는 비장한 결단을 내렸다. 철희는 학원을 모두 끊었다. 진정한 자기주도학습을 위해서 이제부터라도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을 찾기로 한 것이었다. 스스로 학습하지 못하면 고등학교에 가서 절대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다고 강연회에서 들은 내용이 결단을 내리는데 힘이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스스로 해보자는 말에 아이도 별다른 반발은 없었다. 그런데 평생을 '타인주도학습'을 해왔던 아이에게 자기주도학습은 처음부터 험난했다. 


  강연회에서 소개되었던 아이들과 철희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자기주도학습을 성공적으로 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짜고 이를 하나하나 실천하면서 성취감과 보람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자기효능감, 자아존중감, 자신감등이 점점 높아졌다. 그런데 철희는 목표가 없었고 계획도 없었다. 그저 책상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강연회에서 들은 대로 따라 해도 성과가 없었다. 왜 다른 아이는 자기주도학습이 되는데 철희는 그게 안 되는 것일까?


  한 때 자기주도학습이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다. 그 열기는 지금도 상당하다. 그런데 침착하게 생각해보면 자기주도학습이란게 원래 없었는데 누군가가 만든 것이 아니다. 수 백 년 전부터 존재해왔고 누구나 알고 있는 개념이다. 자기주도학습을 조금 쉬운 말로 하면 다음과 같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야.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현실에서는 미처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늘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기주도학습으로 공부하는 초4 효진이는 반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이다. 그런데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같은 반 친구 소연이는 반에서 상위권이다. 아이와 부모님이 여기서 흔들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정말로 자기주도학습이란 어떤 것이고 현실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 자기주도학습에 대해서 가장 크게 오해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혼자서 공부하면 자기주도학습이고,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으면 자기주도학습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기준을 정하면 진정한 자기주도학습은 학교 수업도 받지 않고 혼자서 공부해야 한다. 자기주도학습의 기준은 학원에 다니는지가 아니다. 


  시용이는 아무 생각 없이 학원에 앉아 있다가 숙제를 받아 들고 집에 온다. 게임을 실컷 하다가 하기 싫은 숙제를 보고 억지로 몇 문제 풀어본다. 이는 자기주도학습이 아니다. 진섭이는 학교 수업을 듣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참고서를 보면서 공부를 했는데 역시나 아리송했다. 마침 학원에서 그 부분을 설명하고 있어서 더 쉽게 설명해달라고 질문을 했다. (한 반에 30명이 넘는 학교에서는 쉽게 질문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반면에 5~10명 안팎의 학원은 질문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선생님은 어려운 용어를 배제하고 예를 들어서 다시 한 번 쉽게 설명을 했고 진섭이는 마침내 개념이 이해가 되었다. 진섭이는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것이다.


  자기주도학습이란 공부에 대해서 학생이 주도권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학원에 다니고 과외를 한다고 해서 자기주도학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학원에 다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기주도학습을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학원을 끊고 혼자서 공부하면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할까? 자기주도학습에 대한 열풍이 불자 전국의 많은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실험?을 해보았다. 공부에 대해서라면 대한민국 학부모들은 열혈 투사가 된다. 그중 대다수의 아이들이 자기주도학습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다시 학원으로 복귀했다. 자기주도학습이 좋은 것은 알겠는데 해 보니  말처럼 쉽지는 않더라는 것이 공통된 이유였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의 중, 고등학생들은 한 번의 시험이 가지는 영향력이 너무나 커서 인생을 걸고 시행착오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자기주도학습은 궁극적으로 모든 학습자들이 지향해야 할 올바른 방향임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자기주도학습의 맹점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데에 있다. 우리가 너 '이상형'이 어떻게  되니?라고 물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다.


「긴 생머리에, 눈, 코, 잎이 똘망똘망하고, 날씬하고, 청바지에 흰 티만 입어도 맵시가 나며, 성격은 털털하고 배려심이 많으며,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이해해주고 헌신적인 여자요.」


「키는 180 정도에 눈빛은 촉촉하고, 지적이고, 당당하고, 회사에서는 초고속 승진을 하고, 늘 뒤에서 말없이 나를 챙겨주고, 더러운 내 성격도 다 받아주고 나만 사랑해주는 남자요.」


  한 번 지금 옆에 있는 남편, 아내 또는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보자. 왜 우리는 이상형과 만나지 못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이상형은 말 그대로 이상적인,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이상형의 모습과 유사한 캐릭터들이 TV 속에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 역할을 하는 연예인도 실제로 만나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이상적인 것은 가상의 영역에만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자기주도학습도 이상적이다. 자기주도학습으로 전교 1등을 하는 아이도 대한민국 어디에는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내 아이가 그렇게 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주도학습을 포기하고 계속 주입식 교육으로 아이를 황폐화시키는 수밖에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다시 한 번 지금 옆에 있는 남편, 아내 또는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보자. (자꾸 힘들게 해서 죄송합니다.) 보면 내가 꿈에 그리던 완벽한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더라도 내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몇 가지 특징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즉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현실적'이다 라고 한다.


  그렇다. 자기주도학습은 이상적이다. 너무 이상향을 그리면 현실에서 동떨어질 수가 있다. 이상형을 찾으려고 노총각, 노처녀로 늙어가는 분들을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공부도 현실적으로 해야 한다. 자기주도학습을 어떻게 하면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공부에 관한 모든 얘기는 학습자의 현재 상태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 아이가 가져온 성적표를 살펴보자. 

   


안 슬 기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기가  도덕  음악  미술  체육

100  100  100   100  100  100   100    98    99    97

-축하합니다. 전체  1등입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아마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말 그대로 '이상적'인 아이일 뿐이다.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성적표는 어떨까?



노 지 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기가  도덕  음악  미술  체육

60     71     84     63     75    80    47     85     86     88

-수업시간에 자주 산만한 모습을 보입니다. 수업을 집중해서 들으며 필기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이런 성적표를 보면 일단 부모님들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그리고 격한 반응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너는 도대체 공부를 하는 거야 마는 거야? 이게 성적표야? 도대체  학교하고 학원에서는 뭐 하는 거야?」


  한 바탕 퍼붓고 나면 아이는 죄인이 된다.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 아이는 몇 개월 뒤에 비슷한 성적표를 들고 온다. 부모님은 아이의 걸음걸이만 봐도 성적표가 대충 짐작이 된다. 그래서 아예 보지도 않는다. 


「저리 치워. 보고 싶지도 않아. 아 꼴도 보기 싫어! 방에서 공부나 해! 누굴 닮아가지고 하여튼...」

「거 말이 왜 그래?...」

「아니 내가 뭐 틀린  말했어?...  그쪽 집안에 어디 변변찮은 대학에 간 사람이 있어?」

「당신 말 다 했어?! 말이야  바른말이지 자식 공부머리는 엄마 쪽이라는 거 몰라?」


  자식 공부가 부모  집안싸움으로 번졌다. 이런 논쟁은 소모적이며 어떠한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자기주도학습을 활용한 솔루션을 제안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수학, 과학, 기가 점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즉 아이가 이과 성형이라는 것이다. (물론 문과 이과는 이제 사라지지만 편의상 얘기하면 그렇다.) 그러면 학교를 마치고 매일 학원에 국영수 수업을 듣는 대신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과목은 스스로 하고 좀 부족한 과목만 학원에 가는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공부를 하는 것 외에도 공부에 관해서 결정하는 문제에서도 학생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자기주도학습의 핵심이다. 


  부모가 정해놓고 '이렇게 해라'고 하면 자기주도학습이 될 수 없다.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사실 진짜 공부는 스스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상의해서 수학과 과학은 월, 수, 금에 스스로 하고, 영어는 화, 목에 학원에 다니고, 국어는 인터넷 강의로 주말에 하겠다고 한다면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현실적인 자기주도학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조금씩 타인주도에서 자기주도로 변모해가는 것이다.  자기주도학습을 한다고 하루아침에 학원을 모두 끊고 혼자서 하라고 하면 부작용이 크다.


  정리하면, 자기주도학습이 올바른 지향점이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완벽한 자기주도학습은 너무 이상적이어서 현실에서 적용해보면 많은 부작용들이 발생한다. 이상을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즉 과목별로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한 과목과 아직은 자기주도학습이 힘든 과목을 구분지어서 선별적으로 자기주도학습을 실행하면 부작용이 덜하다. 물론 이걸 결정하는 것도 공부하는 주체인 아이들이 하는 것이다. 자기주도학습에서 주인공은 아이들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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