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석철 Feb 24. 2016

31 희대의 탈출극

공부에서 멀어지는 아이들

  고1 석현이는 거짓말을 잘 한다. 어머니도 애가 '입만 열면 거짓말'이니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며칠도 지나지 않아서 석현이가 기술?을 쓰기 시작했다. 영어 학원에서는 수학학원에 간다고 하고, 수학학원에는 영어학원에 간다고 하고, 집에서는 학원에 간다고 하고 석현이는 여유롭게 PC방에서 게임을 즐겼다. 그런 식으로 마음껏 어른들을 농락했으며 어른들은 석현이를 어찌하지 못했다. 


  그 날도 영어학원에 있다가 수학학원에 가야 한다며 단어시험을 보지 않고 가려던 찰나 원장님이 더 이상은 속을 수 없다며 아이를 보내지 않았다. 아이가 수학학원에 지금 가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하자 원장님은 기어이 수학 학원에 전화를 했고 석현이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확인했다. 그러자 석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바꿨다.


「어? 이상하네... 오늘이 아닌가?」


  역시 프로는 달랐다. 이런 일이 익숙한 듯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교실로 향했다. 오히려 주변의 선생님들이 얼굴이 달아올라서 흥분해 있었다. 잠시 후 석현이가 화장실을 간다며 학원을 나가서 계단을 막 내려가려던 찰 나 원장님이 황급히 뛰어나가서 석현이를 잡았다. 알고 보니 석현이가 학원 창문 밖으로 가방을 던지고 화장실을 간다고 말하고 내려가서 가방을 가지고 유유히 PC방으로 가려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 희대의 탈출극이 내부자의 고발로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석현이 정도는 아니지만 공부가 미치도록 하기 싫은 아이들이 전국에 엄청나게 많다. 그 아이들은 석현이처럼 것 짓말을 하고 학원을 빼먹을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할 의지도 없다. 이렇게 핑계만 대면서 공부에서 탈출하려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없다. 그러나 오답은 있다. 가장 효과가 없는 오답은 부모님이 아이를 앞에 앉혀두고 훈계를 하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럴 때 부모님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가끔 부모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달라지는 아이들이 소개되진 하지만 이는  그만큼 부모님이 아이들 바꾸기 힘들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만약 부모의 힘으로 아이를 바꾸는 것이 쉽다면, 옆집 앞집 뒷집 아이들 모두 부모가 아이를 바꿨다면 뉴스에서 취급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진로캠프를 추천한다. 매사에 축 늘어져서 의욕이 없는 아이들은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목표는 있다. 그러나 이는 외부에서 억지로 주입한 목표이다. 교육학에서 이를 '외재 동기'라고 한다. 인간은 무언가를 억지로 해서는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월요일 아침 버스나 지하철에 가기 싫은데 억지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떠올려 보자. 어쨌든 의지가 없던 아이도 목표가 정해지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진로캠프는 방학이면 전국 여러 곳에서 개최되니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즈음에 한 번 속는 셈 치고 보내보자. 비용은 시설과 프로그램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1박 2일에 4~50만 원 정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비싸다면 비싸다고 할 수 있는데 아이가 의지를 가지고 공부를 할 수만 있다면 돈이 문제일까. 요즘은 프로그램이 꽤나 잘 되어 있어서 많은 아이들이 캠프를 가기 전과 후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아이에게 부담을 주지 말자.


「엄마가 비싼 돈 들여서 보내는 거니깐 갔다가 와서는 마음 잡고 정말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거다!」

「.....」


  이런 말을 하고 보내면 안 보내는 것보다 못 하다. 그냥 휴가 한 번 보낸다고 생각하자. 사실 잘 한 것도 없는데 무슨 휴가를 보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이므로 우리 국민 모두 가끔씩은 휴가가 필요하다. 아이를 보내고 부모님도 휴가를 즐기는 게 어떠신지.


  그리고 늘 공부를 하기 싫어서  이런저런 이유를 대는 아이들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라이트 형제, 카네기, 포드, 에디슨, 헤밍웨이 등등)을 언급하면서 그들도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고 뛰어난 업적을 이뤄냈으니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듣기에는 기가 차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꽤나 합리적인 핑계거리다. 그런데 이러한 아이들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미국의 아이들도 맨날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를 들먹이며 공부를 그만 하겠다고 해서 교사와 부모가 힘들어한다. 그러다가 오하이오 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빌 게이츠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빌 게이츠는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았는데 MS사의 회장이 되었고 40대에 벌써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됐어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당신의 성공담이 많은 학생들에게 공부를 게을리해도 된다는 핑곗거리가 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는 게 좋겠습니까?



  이에 빌 게이츠가 친절하게도 답장을 보냈다. 편지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MS사를 창업하기 위해 대학 졸업장을 포기했지만 하버드대학을 3년 동안이나 다녔으며 내가 알기로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컴퓨터 업계에 진출해서 성공한 사람은 아직 없다. 그리고 누구든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확신이 없는 한 학교 공부를 중단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못하다. 학교에는 혼자만의 공부로 채울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한 우물을 파기 위해 다른 과목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 역시 큰 실수가 될 수 있다. 학교생활을  등한시한다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빌 게이츠도 마음 좋게 생긴 거와는 다르게 직언을 하는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다. 어쨌든 아이들의 핑계에 부모가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은 현명한 해결책이 아니다. 이미 대부분의 부모가 이런 문제로 자녀와의 충돌을 경험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문제는 논리로는 해결할 수 없다. 효과가 있는 방법으로 방향을 달리 해보자.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전의 실패했던 방법을 쓰지 않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은 지혜롭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멘토를 추천한다. 같은 얘기라도 부모가 해주는 것보다 비교적 자신의 입장과 마음을 잘 이해해줄 것 같은 형, 누나, 언니, 오빠가 해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더 효과가 좋다. 물론 대학생 중에서도 꽉 막힌 성격의 소유자는 곤란하다.


「오빠 제가 공부를 못해서 고민이에요.」

「네가 공부를 못 하는 이유는 게으르고 나태하기 때문이야. 그러면서 세상이 불공평하니 이따위 소리 하지 말고 TV 보는 시간의 반만 공부했어봐 지금 그 성적이겠니?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방에 가서 공부나 해라.」

「.....」


  이런 얘기를 듣고 힘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없다. 그러므로 멘토도 잘 봐서 아이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으로 정해야 한다. 그런데 대학생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어른 같지만 아직 학교의 울타리 안에 있어서 진짜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특히 아이들이 힘들고 도움이 필요로 할 때 대학생들도 시험공부를 하고 과제도 하느라 바쁘고 힘들다. 그래서 대학생 멘토는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멘토가 꼭 대학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입시 컨설팅을 해주는 사람도 일종의 멘토이다. 한 달에 1~2번씩 만나면서 아이의 공부와 진로 적성부터 대입까지 관리해주는 데 부모가 해줄 수 없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이의 성격과 궁합이 잘 맞는 컨설턴트를 만나면 부모의 걱정 중 반은 덜 수 있을 것이다. 나라에서는 지나친 사교육이 문제라고 하지만 바꿔 말하면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고르고 선택할 수 있는 학원이 많은 셈이다. 효율적으로 취사선택을 하면 아이의 공부문제에 관해서 갈등은 줄이고 보다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정리하면, 매사에 의욕이 없고 무기력한 아이를 부모가 바꾸려고 한다면 관계만 나빠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항상 핑계를 대면서 공부를 안 하는 아이를 말하고 때려도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써보자. 이런 아이들에게 우선 진로캠프를 추천한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놀러 간다는 생각으로 보내면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의외로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대학생이나 입시・진로 컨설팅을 추천한다. 같은 얘기를 부모와 하면 싸움이 되지만 언니 오빠 선생님하고 하면 상담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캠프나 컨설팅을 받는 동안에는 학부모는 스스로에게 잠시 휴가를 주자.

매거진의 이전글 30 수능을 잘 보기 위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