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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Feb 16. 2016

30 수능을 잘 보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면 수능 점수가 오를까?

  2016년 대입이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기쁜 목소리로 합격의 소식을 전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예비 1번으로 다시 한 번 수험생의 길을 가야 하는 학생도 있다. 이미 재종 선행반에는 다음을 기약하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일찍부터 나와서 칼을 갈고 있다. 사실 1년 동안 같이 공부한 학생이 합격했을 때 본인도 기쁘겠지만 가르친 사람으로서도 보람과 성취감을 느낀다. 그렇게 내년에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 1년간 아이들과 열심히 지지고 볶고 해야 한다.


  12월 2일 수능 성적표가 발표되었다. 태어나서 가장 큰 시험을 치른 아이들은 저마다 성적표를 보고 근심이 가득해진다.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친 것은 차치하더라도 성적표를 해석조차 못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 일단 수능 성적표에 몇 점을 받았는지 '원점수'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예전의 성적표인 95점, 수, 반에서 2등, 전교에서 17등에 익숙한 어른들은 수능 성적표가 더 낯설 것이다. 


  수능 성적표를 보는 방법을 간단히만 살펴보자. 우선 '표준점수'라는 것이 눈에 띈다. 쉽게 말하면 똑같은 100점을 받았어도 어려운 시험에서는 표준점수가 높고, 쉬운 시험에서는 표준점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다. 다시 말해 남들이 많이 틀리는 문제를 맞히면 점수를 더 주고, 남들이 다 맞는 문제를 맞히면 점수를 조금 주는 것이다. 즉 표준점수란 문제의 난이도를 반영한 점수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국어와 수학에서 둘 다 100점을 받은 학생이 있다.  그런데 그 해 국어의 평균은 80점이고, 수학의 평균은 70점이라고 하자. 그러면 국어의 표준점수는 120점이고, 수학의 표준점수는 130점이 되는 것이다. 


수능 성적표는 이렇게 나온다. 원점수가 몇점인지,  몇 등인지,  수우미양가 같은 방식으로 표시되지 않는다.


  백분위는 쉽게 말해서 퍼센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백분위가 93이란 얘기는   0%부터 올라와서 93%에 걸린다는 의미이다. 즉 100명이 시험을 봤다고 하면 7등 정도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등수와 같은 개념인데 왜 등수로 알려주지 않는 것일까? 한 해 수능을 치는 수험생이 대략 재학생 40만 명, 재수생 10만 명이다. 위에서 물리 I의 백분위가 75이다. 그러면 50만 명 중에서 대략 12만 5천 등이라는 얘기다. 만약에 75 대신에 125,696란 숫자가 적혀 있으면 몇몇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까 봐 나라에서 배려해준 것이라는 설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등급은 1등급부터 9등급까지 있다. 대략 1~4%를 1등급, 5~11%를 2등급, 11~23%를 3등급, 24~40%를 4등급, 41~60%를 5등급, 61~77%를 6등급, 78~89%를 7등급, 90~96%를 8등급, 97~100%를 9등급으로 나눈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 문제로 아이들의 인생이 바뀌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고 해서 점수제에서 등급제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한 문제 또는 1점으로 등급이 바뀐다. 


  어쨌든 아이들이 성적표를 가져오면 영어점수부터 확인한다. 대략 1~2등급은 '잘했다', 3~4등급은 '수고했다', 5~6등급은 '아쉽다' 등의 격려를 해준다. 고3인 은영이는 1년 넘게 수능 영어를 공부했다. 그런데 7등급을 받았다. 물론 은영이만 그런 것은 아니다. 전국에 수 많은 학생들이 1년 아니 그 이상을 공부해도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왜 그런 것일까?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 원인을 살펴 보기로 하자.


  백문이 불여 일견이니 우선 올해 2015년 11월에 있었던 수능 문제를 하나 살펴보자.



다음 글의 주제로 가장 적절한 것은?     

  역사의 바다에는 두 개의 사이렌이 숨어 있는데, 그것들은 과거를 이해하고 제대로 인식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유혹해 오해와 오역의 암초 위에 올려놓는다. 이 두 가지 위험은 자기 시대 중심주의(temporocentrism)와 자기 민족  중심주의(ethnocentrism)이다. 자기 시대 중심주의는 자신의 시대가 모든 가능한 시대 중에 최고라는 믿음이다. 모든 다른 시대는 그리하여 열등하다. 자기 민족 중심주의는 자신의 문화가 모든 가능한 문화 중에 최고라는 믿음이다. 모든 다른 문화는 그리하여 열등하다. 자기 시대 중심주의와 자기 민족 중심주의는 결합하여 모든 다른 개인들과 문화를 자신들의 현재 문화의 ‘우월한’ 기준에 의해 판단하는 개인들과 문화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과거와/과거나 외국의 문화를 다를 때 총체적인 관점의 결핍과 그에 따른 그것들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평가를 초래한다. 자기 시대 중심주의와 자기 민족 중심주의는 현대인들을 유혹해 과거의 민족들에 대한 정당하지 않은 비판에 빠지게 한다.     


①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에 있어서 명확한 차이점들

② 다양한 문화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특징들

③ 그들 자신의 문화를 옹호하려는 역사가들의 노력들

④ 두 문화에 걸친 관점의 장단점들

⑤ 과거에 대한 편향된 해석을 야기하는 믿음들



  과연 우리 아이들이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정답을 찾는 것은 고사하고 지문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사용하는 낱말 핵노잼, 개이득, 꿀잼 등과는 수준이 다르다. 수능에서 요구하는 어휘력과 아이들이 사용하는 어휘의 간극이 엄청나다. 일단 많은 아이들이 결국 그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5,6,7,8,9등급의 성적으로 수험생 기간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이 간극은 암기로 좁힐 수 있다. 어려운 낱말 뜻은 외우는 해결책이라도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단어 뜻은 외울 수라도 있지만 문장 뜻은 외울 수가 없다. 단어는 똑같이 나와도 문장은 똑같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단어들이 모여서 제각각 다른 의미를 나타내는 문장은 '이해해야' 한다. 이 이해력이 관건이다. 아이들은 이해력의 정도에 따라서 1,2,3,4등급의 성적으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해력은 가르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가령 위의 문제를 틀린 학생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본인이 왜 틀렸는지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다. 그리고 유사한 문제가 나오면 선생님의 설명을 기억했다가 이를 다시 떠올려서 풀기도 한다. 사실 이는 학생의 이해력으로 푼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설명을 학생이 외워서 '암기력'으로 푼 것이다. 그러나 수능은 매년 전혀 새로운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전혀 새로운 문장을 읽고 이해해야 하는데 늘 다른 사람의 설명만 들었던 아이들은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모의고사에서는 2~3등급이 나와서 수능장에 가면 4~5등급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이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될까? 이해력이라는 것은 사고력이다. 즉 생각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러므로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아이 심심한데. 뭐 재미있는 것 없나?」

「배고픈데 치킨을 시켜먹을까? 피자를 시켜먹을까?」

「오늘 집에 부모님 안 계시는데 친구들 불러서 놀아야겠다.」


  이런 생각들은 아무리 많이 해도 수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능에 도움이 되는 생각들은 '논리적인'생각들이다. 가령 신문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았다. 

  

「선진국일수록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떨어진다.」


  그럼 생각을 해야 한다. 


「어? 이상하다. 왜 잘 먹고 잘 사는데 행복하지 않을까?」


  머릿속을 이리저리 탐색해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은 논리적인 생각을 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간다. 우리가 하기 싫은 공부를  참고하는 이유가 나중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잘 먹고 잘 살아도 행복할 수 없다면 큰일이 아닌가? 이렇게 세상의 모든 일은 얽혀있어서 조금만 생각을 뻗어나가 보면 남의 일이 곧 나의 일이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원하는 정보를 머릿속에서 찾을 수 없다면 밖에서 찾아야 한다. 먼저 질문에 대한 답을 알 것 같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방법이 있다. 


「형. 선진국일수록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떨어진다는데 혹시 왜 그런지 알아? 」

「그게 궁금했어? 생각해보면 되잖아. 예전에 지방 출장을 갈 때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가서 일 보고 나서 어차피 다음 날 와야 되니 지방 음식도 먹고 명소도  보고한단 말이야.」

「응. 그렇지.」

「그런데, 이제 KTX가 생겨서 그날 갔다가 그날 올 수 있단 말이야. 그래서 기술이  발전했는데 오히려 사람은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말이지.」

「아하. 그렇게 되네. 와 형 되게 똑똑하다.」


  이런 형을 두고 있는 동생은 행운아이다. 그러나 행운은 모두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현실 속에 있는 형은 아래와 같이 대답할 확률이 높다.


「형. 선진국일수록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떨어진다는데 혹시 왜 그런지 알아? 」

「그러냐? 나도 몰라. 나 지금  게임하니깐 바빠 말 시키지 마.」

「.....」


  대부분의 아이들이 주변에 궁금한 것을 물어볼 적당한 사람도 없고, (있다 하더라도 쓸데없는 것을 묻는다고 혼낸다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지적인 자극을 주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0년을 넘게 논리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성장했다. 그런데 수능에서 갑자기 논리적인 생각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람은 본인이 넘을 수 없는 막다른 길에 다다랗을 때 처음에는 애쓰지만, 결국 좌절하고 포기하게 된다. 


  수학을 공부하는 많은 아이들이 수학 공식을 몰라서 문제를 못 푸는 것이 아니다. 수식으로 문제를 내면 푼다. 그런데 수식을 말로 길게 풀어서 질문을 하면 문제를 풀지 못한다.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시나 수학 개념과 공식은 배울 수 있지만, 생각하는 것은 배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위에서 풀었던 수능 문제는 국어문제가 아니라 영어문제였다. 수능은 이런 난이도의 글을 영어로 읽고 풀어야 한다. 시간은 대략 1분 30초 정도 안에 풀어야 한다. 참고로 이 정도 난이도는 수능에서 어려운 편에 속하지 않는다. 뒤에 있는 어법, 어휘, 빈칸, 순서 배열 등의 문제가 더 난도가 높다. 



  수능 성적표는 지금 당신의 이해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공부를 오래 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만약 이해력이 떨어진다면 아무리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중고를 생각하지 않고 보낸 아이들은 수능에서 절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사회는 냉정하게도 이 아이들에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만을 허락한다. 


  독서가 답일까? 장기적인 독서는 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단 기간에 생각하지 않고 왕창 몰아서 책을 읽는 것은 삼일 동안 굶었다가 뷔페에 가서 왕창 먹는 것과 같다. 체한다. 독서와 신문 사설 등도 중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주위 어른들의 지적인 자극과 논리적인 사고의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와 무슨 얘기를 할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주제가 될 수 있다.


「왜 프랑스에서 일반시민들을 상대로 무차별 테러가  일어났는가?」

「왜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일까?」

「왜 최저임금으로는 먹고살 수가 없는 것일까?」

「왜 세월호가 침몰할 때 우리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가?」

「삼성 휴대폰과 애플 휴대폰의 차이는 무엇인가?」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계로 대체될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이 있을까?」

「공부는 도대체 왜 해야 하는가?」


  어른이라고 모든 답을 알 수는 없다. 같이 알아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 아이가 미래를 살아가는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정리하면, 많은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해도 실망스러운 수능 성적표를 받는다. 그 이유는 아이가 열심히 공부를 안 해서도 아니고, 공부 방법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다. 10년이 넘게 단편적인 생각만 하다가 갑자기 논리적인 사고를 해야 하니깐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고3이나 재수생이라면 공부와 더불어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능에서 원하는 점수는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아직 시간이 있다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수능을 위해서. 인생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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