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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Mar 17. 2016

34 너는 도대체가 무슨 생각이니?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고3 준영이는 내 앞에 죄인처럼 서 있다. 교무실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준영이를 계속 쳐다보았다. 이 아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않았다.


「아니 선생님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차 싶었다. 화를 내면 안 되었는데... 어쨌거나 내뱉은 말은 담을 수 없다. 나는 다시 차분하게 대화를 시도했었다.


「그러니깐 엄마한테 대학교 원서를 접수한다고 카드를 빌렸다 이거지?」

「네...」

「그리고 대학교 원서를 접수하려고 인터넷에 접속했는데 순간 신발 광고를 봤다는 말이지?」

「네...」

「그리고 신발이 2만 원 인 줄 알고 결제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20만 원 이었다는 거지?」

「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예. 아니, 정말 이예요...」


  나는 또 화가 올라왔지만 겨우 억눌렀다. 어제 준영이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지는 아이가 대학교 원서를 접수한다고 해서 카드를 줬는데 원서 접수는 안 하고 신발을 샀다는 것이다. 아이가 엄마 말은 듣지 않으니 선생님께서 아이 신발을 환불해 주시고 대학교 원서를 접수해 달라고 부탁해 온 것이다. (왜 아이가 엄마 말을 듣지 않냐고 묻자 3대 독자라서 오냐오냐 키워서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제 준영이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얘기할 기회가 없었고 오늘 학원에 나타난 것이다. 문제는 어제가 입시 접수 마감일 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준영이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너 어제 전화 왜 안 받았어?」

「아 네.. 온 줄 몰랐....」

「너 어제가 원서 접수 마지막 날인 거 알았어 몰랐어?」

「아 네? 알았... 아니 몰랐....」

「.....」


  지금 이 순간 준영이는 마치 어떻게 답해야 덜 혼날까를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준영이를 중2 때부터 보아온 나는 준영이의 이런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결국 원서는 날짜가 지나서 넣을 수가 없었다. 신발은 내 앞에서 주문을 취소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들 때문에 속이 터지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이 아이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들은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이야기가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다. 위험천만한 일을 저지르고 난 뒤 어떤 결과가 따를 것인지는 어린아이라도 예상할 수 있건만, 아이들은 반복해서 위험한 행동을 한다. 실제로 고등학생 남녀가 동물원에 놀러 갔다가 변을 당한 적이 있었다. 농담 삼아 시작된 말이 화근이었다.


「너 저기 사자 우리에 들어갈 수 있어?」

「저기? 저길 어떻게 들어가?」

「에이 겁쟁이...」

「너는 들어갈 수 있어?」

「그럼. 당연하지.」

「그럼 한 번 들어가 봐?」

「내가 너냐? 난 한다면 해.」

「와... 죽이는데~」


  정말로 죽을 뻔했다. 사자 무리가 멀리 한가로이 앉아 있기에 들어갔다가 금방 나오면 되겠지 생각했다. 큰일이야 나겠지 싶었다. 그리고 사자 우리에 들어갔다가 나온 뒤 영웅 대접을 받을 환상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쿵하고 우리에 발을 내딛는 순간 사자들이 덮쳤다. 사육사의 도움으로 목숨은 건졌으나 팔을 잃었고 전신에 250 바늘이 넘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어쨌든 살아있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왜 청소년들은 이토록 충동적으로 행동할까?


  그 이유는 논리적인 사고, 사리분별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이 단계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이다. 즉 덩치가 크다고 어른하고 똑같이 생각할 것이라고 예상하면 오산이다. 이 부분의 뇌가 발달 중인 아이들은 충동적인 행동을 억누를 수 없다. 동생을 놀린다고 혼난 형이 바로 또 동생을 놀리고 또 혼나는 이유도 놀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이를 멈추게 할 브레이크가 아직 생기지 않은 것이다. 무단횡단을 하면서 차에 부딪힐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어린애들의 돈을 빼앗을 경우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모든 불행이 자신을 피해갈 것이라는 환상을 갖는다. 청소년기의 이런 특성을 이해한다고 아이들이 금방 달라지지는 않지만, 이런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정신적인 토대는 마련할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식습관이 달라져서 발육이 예전보다 빠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몸이 크는 것에 비례해서 뇌의 기능도 발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거슬리게 된다. 아직 걷지 못하는 아이가 기어 다니는 것이 당연하듯이 뇌의 여러 영역이 발달 중인 청소년은 부모들이 보기에 참 미흡한 점이 많다. 예컨대 길을 가다가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히면 죄송하다고 하고 지나가면 될 일을. 굳이 얼굴을 붉히고 욕설이 오가고 큰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또 가벼운 농담도 모욕으로 느끼고 남이 웃는 모습을 보고 자기를 비웃는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이는 청소년기는 아직 감정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뇌의 영역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뇌의 여러 기능들은 어른이 된다고 다 온전하게 발달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10대 들에게 놀라는 표정화 화나는 표정을 보여주면서 MRI로 뇌의 활성화되는 부분을 확인하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성인들은 사람의 표정을 볼 때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뇌의 부분을 사용한 반면, 10대 아이들은 감정을 다루는 부분을 사용했다. 즉 아이의 말에 부모가 놀란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화를 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일어난다. 농담 섞인 말에 갑자기 방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는 경우,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고 친구와 싸우는 경우가 그러하다. 아직 뇌가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 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때린다고 달라질까? 


「쟤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런 거야? 나는 안 그랬는데...」


  대부분의 어른들이 하는 착각이다. 기억하지 못할 뿐 지금의 어른도 청소년이었을 때 비슷한 생각과 행동을 했었다. 혹시 인정할 수 없다면 부모님에게 한 번 물어보자. 본인의 청소년기는 어떠했는지...  발달심리학자 데이빗 엘킨드는 청소년들을 연구한 후 10대는 두 가지 착각을 한다고 정리했다. 


  첫 째, 나는 특별한 존재이며 나의 경험은 다른 사람의 경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믿는 것이다. 자신만이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한다고 믿으며 남들은 결코 경험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를 '개인적 우화'라고 명명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말을 자주 하는 것이다.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

「됐어. 내가 어떤 기분인지 말해도 모를 거야.」


  둘째,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본인의 감정과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이 삶의 주인공이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자기에게 쏠려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멋과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사소한 실수에도 과도하게 창피해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크게 분노하는 것도 세상의 중심인 본인의 자존심이 상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을 '상상 속의 청중'이라고 명명했다.


  아이들의 이러한 발달 특성을 아는 것은 자녀와의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아이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되려 격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행동을 눈감아주란 말은 아니다. 적절한 규칙과 규제는 필요하다. 다만 아이가 다소 충동적이고 자아 중심적인 특성을 보이는 것은 어떤 병리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발달 단계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정리하면, 어른들이 보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보이는 10대들이 종종 있다. 이는 논리적 사고, 충동성을 조절하는 뇌의 영역이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교를 하고 체벌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사소한 일에 격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겉모습만 보고 어른처럼 행동하지 못한다고 나무란다고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10대를 연구한 학자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본인은 특별한 존재라고 믿고 세상의 주인공이며 다른 사람들은 조연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적절한 규칙과 규제를 적용하면 아이와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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