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중3 명수는 공부한다고 방에 들어가서는 십 분 뒤에 화장실을 간다고 나왔다. 그리고 또 십 분 뒤에 목이 마르다며 냉장고에 물을 마시러 나왔다. 그리고 다시 십 분 뒤에 나와서 한다는 말이
「엄마. 나 불렀어?」
「부르긴 누가 불러?」
「이상하다... 누가 나 부르는 소리가 진짜 들렸는데...」
「하여튼 공부하기 싫으니깐 방에서 나오려고 별의별 핑계를...」
「.....」
명수는 억울하다. 정말로 누군가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명수 입장에서는 진짜로 들렸을 수도 있다. 우리도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택배가 있으면 가끔 환청이 들리기도 하지 않는가? 어쨌든 자녀가 한 자리에 앉아서 좀 진득하게 공부 좀 하는 게 '소원'인 부모님이 꽤나 많다. 그런데 현실은 학원에 보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나 같은 학원 강사들이 그런 아이를 데리고 공부를 시킨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 아이가 밖에 나가면 가만히 앉아 있을까? 물론 정해진 시간이 있으니 집에서 처럼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는 없다. 대신에 몸을 꼬고 비틀기 시작한다. 마치 맥반석 위에 있는 오징어처럼...
이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서 공부를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집중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아이와 함께 학원에 와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명수는요 집중력이 없어서 공부를 못 해요. 잘 부탁합니다.」
사실 집중력이 없으면 공부를 못 한다. 그런데 잘 부탁한다니... 마치 운동선수의 어머니가 "우리 아이는요 체력이 약해요 운동 좀 빡세게 시켜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집중력이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집중하는 능력이 있는 존재이다.
「아이가 컴퓨터 게임할 때도 집중력이 없나요? TV 볼 때는요? 휴대폰 만질 때는요?」
「그때는 옆에서 누가 불러도 모르게 집중을 해요. 호호호...」
어머니도 알고 있는 것이다. 집중력이 없는 게 아니라 공부에 집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왜? 재미가 없으니까. 교육자의 가장 큰 역할은 학생의 집중력을 공부 쪽으로 물꼬를 틔워주는 일이다. 그러면 공부하는 만큼 성적은 저절로 오르게 되어 있다. 이 집중력의 방향을 틀어 놓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하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큼 고되고 불미스러운 일이 없다. 어머니에게 비유하자면 드라마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예컨대 주인공이 김치 싸대기를 맞으려는 찰나)이 나오는데 시어머니가 불쑥 집에 와서 이것저것 집안일을 시키면 기분이 어떨까? 집안일에 집중을 할 수가 있을까?
집중을 못 하는 이유는 우선 마음이 들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흥분 상태에 있으면 차분하게 무언가를 생각할 수가 없다. 깊은 몰입을 하는데 이게 가장 큰 장애물이다. 보통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비율이 7:3 정도로 이런 증상을 보인다. 24시간 이런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라는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어쨌든 그 정도는 아니라면 병리적인 해결책보다는 생활적인 측면으로 접근해보자. 성격적으로 부산스럽고 산만하고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런 아이들은 좋게 말하면 운동 에너지가 다른 아이들보다 많은 것이다. 이렇게 운동 에너지가 많은데 가만히 앉혀 놓고 공부를 시키려고 하니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운동에너지를 건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자.
내가 다니는 복싱 체육관에 중학생들이 다닌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처음에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들어올 때는 난리 부르스를 친다. 마치 세계챔피언이 될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들어와서 수시로 장난을 치고 정신없게 뛰어다닌다. 그런데 그렇게 한 시간이 넘게 장난을 치고 운동을 하고 나면 어느 정도 운동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차분해진다.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 된다. 운동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는 에너지를 발산하게 도와주자. 성장발육에도 좋고 아이의 학업에도 도움이 된다.
여자 아이의 경우에는 말이 빠르고 산만하고 춤추고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혹시 이 아이들을 아래처럼 말을 통해서 바꿔보려고 한다면 실망할 확률이 높다.
「가만히 좀 있어라.」
「말을 천천히 해라.」
「정신 산만하게 굴지 말고 차분히 좀 걸어 다니면 안 되겠니?」
왜냐하면 말로 고쳐질 것이었으면 진작에 고쳐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전에 무수히 많은 어른들이 위와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하루는 고1 혜민이를 따로 불러서 물어본 적이 있다.
「혜민아. 선생님이 너를 오랫동안 보아 오고 또 네가 잘 됐으면 해서 하는 말인데... 말을 좀 천천히 하면 어떨까?」
「샘 제가요. 정말 그 말 정말 많이 듣고 엄마한테도 손바닥도 맞고 아빠 한테도 엄청 많이 맞았는데요. 저도 정말 알아요 제가 말이 빠르다는 걸. 그런데 안 되는 걸 어떻게 해요? 저도 정말 죽도록 말을 천천히 하고 싶어요. 제가 또 너무 말이 빨라졌죠? 어떻게 해요 죄송해요...」
「.....」
그렇다. 아이들은 본인의 단점을 자각하고 있다. 우리 어른들도 다 장점과 단점이 있지 않은가? 단점을 고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알지만 고치기 쉽지 않은 것이다. 혜민이는 노래에 관심이 있어서 고3 때 예체능으로 입시도 준비할 겸 실용음악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실컷 노래를 하고 오니 말 수가 확연히 줄었고 속도도 느려졌다.
「야. 혜민아. 너 노래 시작하더니 달라졌는데? 왜 이렇게 말이 없어?」
「네 선생님 죽을 것 같아요. 세 시간 동안 발성 연습하고 와서 목이 아프고 힘들어서 말할 기운도 없어요...」
부산스럽고 말을 정신없게 하는 혜민이 한테 10년간의 잔소리보다 실용음악학원 하루가 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틈만 나면 몸을 흔들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아이는 댄스 학원이나 발레 학원에 보내주자. 좋아하는 춤을 실컷 추고 오면 집에서는 좀 차분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효과가 있는 방법으로 해야지 효과가 없는 방법을 반복하면서 갈등을 고조시키는 것은 지혜로운 선택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들뜬 마음을 가라 앉히면 이제 집중을 하고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집중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없어졌지만 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멍하고 둔한 마음이다. 이런 마음도 오랫동안 지속되면 교육학에서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병명을 붙이기도 하지만 굳이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아도 탁 보면 알 수 있다. 멍 때리고 있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정신이 느슨해진 상태, 즉 긴장감이 없는 것이다. 산만한 정신을 바로 잡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고 해도 마음이 여전히 멍하고 느슨한 상태일 수가 있다. 산 넘어 산이다.
이 느슨한 마음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긴장감을 생기게 해주면 된다. 예컨대 내일이 시험이면 아이들은 오늘 긴장을 한다. 평소와는 다른 집중력으로 공부한다. 왜냐하면 내일이 시험이라서 공부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마음의 긴장이 팽팽하게 당겨진 것이다. 그래서 본인의 능력을 120% 발휘하는 것이다. 평소에 축 늘어져 있는 것이 아이의 본모습일까? 시험 전 날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모습이 아이의 본모습일까?
어쨌든 시험이 끝나면 아이는 다시 무기력한 상태로 컴백한다. 여기에 바로 해답이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킬 때 절대로 시간을 많이 주지 않는다.
「11페이지에 나와 있는 단어를 다 외우는데 지금부터 딱 5분 준다.」
「어.. 이걸 5분에 어떻게..」
「어허. 시끄럽다. 몇 분?」
「5분이요.」
「자 실시!」
결과는?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실험?을 해봤지만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여준 아이들은 드물었다. 즉 대부분의 아이들이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 능력을 발휘할 환경이 없었을 뿐. 이렇게 마음의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아이들의 성적은 공부하는 만큼 올라갈 것이다. 이 역할을 부모님이 직접 해도 되지만 주변의 형 누나 언니 오빠 삼촌 과외 선생님 등이 해도 된다. 그렇게 본인이 긴장감을 가지고 공부를 했을 때 달라지는 것을 스스로 경험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점점 스스로 긴장을 하고 효율적으로 공부하게 되어 있다.
정리하면, 아이들이 공부를 못 하는 이유는 집중해서 공부를 안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고난 집중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공부에 집중력을 할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 먼저 산만해서 집중을 못 하는 경우 넘치는 에너지를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면 아이는 눈에 띄게 얌전해지고 드디어 공부를 할 수 있는 마음의 토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는 마음이 해이해져서 긴장감이 없는 경우는 옆에서 긴장감을 생기게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게 긴장감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그게 습관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