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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Apr 21. 2016

36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고등학교 선택의 중요성

  올림픽에서 마라톤 선수가 달린다. TV를 통해서 이를 보는 사람들도 그 고통과 긴장이 어느 정도는 전이가 된다. 본인도 모르게 손에 땀이 난다. 원래 감정이라는 것이 전염성이 있다. 마찬가지로 집에 고3이 있으면 집 안에 전반적으로 비장한 아우라가 감돈다. 아버지는 뉴스를 평소보다 조용하게 보고, 어머니도 드라마를 삼가한다. 동생도 형, 언니 눈치를 보면서 몸을 사린다. 고3은 본격적으로 입시 레이스에 뛰어드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수험생 본인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가족들도 힘이 든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퍼지고 엔진이 멈추듯이 선수가 퍼진 것이다. 한참 달려 나가야 하는 고3 시기에 학업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리고 펜을 내려놓은 것이다. 사실 펜을 쥐고는 있지만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학업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아니면 의지가 처음부터 없었을 수도 있다. 수업 시간은 엎드려 자고 그마저도 깨우면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말한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무기력한 아이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잠을 자는 것이다. >


「명호야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눈 딱 감고 몇 달만 더 해보자! 응?」

「네....」


  이미 순위권에서 멀어져서 완주를 목적으로 뛰는 마라톤 선수를 보는 것처럼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도 없다. 아마 지켜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좀 더 기운을 내봤으면 하는 바람이겠지만, 그 마음이 누구보다 강렬한 것이 본인이다. 그런데 그게 안 되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 나중에 이런 말을 할 가능성이 높다.


「최선을 다 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수술실에서 환자를 살리지 못한 의사가 말하는 것을 드라마에서 볼 때와 원하는 대학에 떨어진 내 아이가 같은 말을 할 때의 파괴력은 전혀 다르다. 공허한 얼굴로 학교와 학원을 오가면서 원치 않는 입시레이스에 등 떠밀려서 이 지긋지긋한 생활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아이들이 전국에 부지기수다. 이 아이들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민지는 중학교 때 공부를 좀 했다. 공부를 꽤 하니 부모님이 욕심이 생겼다. 


「민지야 서울고등학교 말고 옆에 한강고등학교 가는 게 어떻겠니?」

「네? 한강고요?.... 거기 엄청 빡센데....」 

「서울 고등학교 같은 X통 고에 가면 대학도 못 가요. 이번에 SKY는 고사하고 인 서울도 몇 명 못 보냈다더라...」

「.....」

「한강고는 SKY만 10명 가까이 보냈어! 너도 좋은 대학교 가야지?」

「네.....」 

「공부 잘하는 친구들하고 같이 공부해야 너도 자극을 받아서 더 열심히 하지. 그리고 혹시 서울대학교에는 못 가더라도 열심히 공부하면서 실력도 더 좋아져서 입시 결과도 더 낫지 않겠니?」

「아 네....」


  한강고는 일반고이지만 특목 자사고에 못지않게 공부를 많이 시키는 학교로 유명했다. 벌써 엄마 입에서 서울대학교가 언급되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민지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한강고에 가까스로 진학했다. 민지는 공부에 타고난 재능이 특출 나지는 않았지만 성실한 아이였다. 


  그러나 세상은 성실함 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반에 30명이 있는데 20명 이상이 외국에서 다년간 살다 온 아이였다. 일단 영어에서 상대가 되질 않았다. 수업 시간에도 그 아이들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범위가 고3 상위권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재였다. 국어 수학도 고1 수준을 월등히 넘는 내용을 배웠다. 아이들은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문제는 민지였다.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을 공부하느라 매일매일이 힘겨웠더. 그리고 공부를 못하는 본인을 자책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말수가 줄어들어갔다.


  민지의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 결과는 주요 과목들이 50점 이하로 나왔다. 흔히 말하는 '바닥을 깔아주는 학생',  '희생량'이 된 것이다. 아이도 설마설마했지만 실제로 성적표로 받아보니 충격을 받은 듯했다. 어머니는 머리띠를 두르고 화병에 쓰러졌다. 좋은 고등학교에 자식을 보냈다고 엄마들 모임에서 회식비를 계산할 때만 해도 이런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 나름 열심히 해서 중간 이상은 하겠지 예상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평범한 중학교에서는 중상위권을 유지했지만, 공부를 좀 한다는 아이들과 경쟁해보니 부족한 실력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렇게 민지는 최하위권을 맴돌며 고1을 마쳤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민지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러나 공부가 민지의 수준에 맞는 공부가 아니었다. 1차 함수도 모르는데 2차 3차 함수를 억지로 공식만 외워서 몇 문제를 푼다고 실력이 느는 게 아니다. 즉 공부를 하면서 실력이 늘 수가 없었다. 그 학교의 대다수 학생들은 이미 국영수 학력 수준이 평범한 고1이 아니었다. 타고난 재능에 중학교 심지어 초등학교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을 해왔던 아이들이 주를 이루었다. 평범한 민지가 성실함으로 어찌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렇게 고2가 되면서 민지는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들었다. 민지는 한강고에서 아무것도 잘 하는 것이 없는 무기력하고 우울한 아이로 서서히 변해갔다. 


  혹자는 말한다. 정신력이 부족하다고. 노력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이제 겨우 기어 다니기 시작한 아기에게 뛰라고 매질을 가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아이가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신체와 정신은 다르지만 그 뿌리는 같다. 정신도 발전 단계가 있으며 본인의 학업 수준에 맞지 않는 교육은 정신적 양분으로 흡수할 수 없으며 때로 독이 될 수도 있다. 민지는 그렇게 매일 학교에서 집에서 학원에서 사회에서 '정신적인 매질'을 당했다. 


  민지가 다른 일반고에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정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것이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지를 가르쳐보니 성실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일반고에서 수준에 맞는 내용을 성실하게 공부하면 중위권 이상은 했을 것이다. 개인적인 포부에 따라서 상위권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면 대학 진학의 기회뿐만 아니라 본인의 삶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민지는 고2 때 다른 학교로의 전학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번 시험만 보고... 정말로 이번 시험만 보고.... 하다가 시기를 놓쳤다. 지금 고3이 된 민지는 무기력하게 중하위권-하위권을 맴돌며 공부를 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지금으로서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만약 민지가 내 아이라면...?

  

  정리하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고등학교가 있다. 특정 대학교를 많이 보내는 흔히 '명문고'에 내 아이가 갔으면 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진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학 후 학업을 소화할 수 있는가?이다. 한 가지 오해하는 것은 특목 자사고나 몇몇 일반고가 평범한 아이들을 받아서 '잘 가르친' 후 좋은 대학교에 보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그 학교들은 이미 공부가 완성된 아이를 '선발'할 뿐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알아서 진학을 하는 것이다. 부족한 내 아이를 그 학교에 보내면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 자극을 받아서 더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때로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오늘도 민지는 표정이 없는 얼굴로 소화할 수 없는 내용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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