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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Jun 10. 2016

43 차라리 유학을 보낼까?

대한민국 교육에 실망한 부모들의 마지막 선택

  80년 대는 해외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이 소수였다. 해외 박사 학위 하나만으로 죽을 때까지 대학 교수 자리가 보장되던 시절이었다. 이들은 대부분은 70년대 국비로 유학을 떠난 엘리트였다. 수만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인재였기에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당시 유학은 잠재력이 큰 인재를 보다 선진화된 교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에 맡기는 일종의 '위탁 교육'이었다. 그리고 유학을 마친 이들은 대부분은 국내로 금의환향해서 상아탑과 연구소 요직에 들어가 국가 발전에 부응을 했다고 볼 수 있다.


  90년 대는 이전의 유학과는 성격이 조금 달라졌다. 유학파가 특급대우를 받는 것을 본 사람들이 너도나도 유학을 떠난 시기였다. 이전에는 국내의 교육에서 잠재력을 발현시킬 수 없을 정도로 사이즈? 가 큰 사람들이 국가 장학금을 받고 갔다면, 이후에는 반 정도는 여전히 가능성이 큰 사람이 갔고 나머지 반은 국내 대학을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유학을 떠났다. 다시 말해 있는 집 자녀들 중에서 국내의 괜찮은 4년제 대학에 갈 실력이 안 되는 경우 외국에서 공부를 시킨 것이었다. 어쨌든 이러한 아이들도 투자 대비 수익률? 이 나쁘지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영어가 되면 취업이 어렵지 않았으니깐. 


  그러던 것이 1997년 IMF를 맞으며 나라가 휘청거렸다. 이후 금 모으기 등으로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나랏빚을 갚는데 힘을 모았다. 여담이지만 이때 개봉한 영화 타이타닉이 온 국민이 모은 금 이상의 수익률을 올렸다. 국민이 모은 금을 타이타닉호가 싫고 갔다는 우스갯소리도 나돌았다. 타이타닉 덕분에(?) 문화 콘텐츠 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졌다. 이후 DJ정부에서 학력에 상관없이 지식을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능동적으로 창출하는 사람을 '신지식인'이라 규정하고 육성하기 시작했다. 이때 심형래 씨도 선정되어서 개그맨에서 영화감독으로 전향했다. 어쨌든 기업이 부도나고 실직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유학 붐도 한풀 꺾였다.


  이후 경제가 회복하면서 2000년대 중반에 유학 붐이 전성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나라에서 사건이 터졌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이 그것이다. 모기지(mortage)란 은행이 부동산을 담보로 하여 장기간 빌려주는 주택 자금 제도를 말한다. 프라임(prime)은 우수하다는 뜻이다. 즉 그동안은 은행에서 '프라임 모기지' 제도만 유지했었다. 예컨대 집값이 10억이면 이를 담보로 6~7억 정도의 대출이 가능했었다. 우리나라도 집 갚의 60%까지 대출이 가능했었는데 최경환 님(?)이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명목으로 대출한도를 주택담보 대비 70% 로 늘리는 정책을 시행했으나 경제는 더 위축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최경환 국회의원은 재선에 성공했다. 


  어쨌든 서브(sub)는 낮다는 뜻이다.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주택 가격이 낮아도 돈을 대출해준다는 것이다. 왜? 집 값이 오를 것이니깐. 하지만 미국이 저금리 정책을 종료하면서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금리가 올라갔다. 저소득층 대출자들이 원리금을 갚지 못하게 되자 금융기관들을 대출금 회수불능 사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미국발 금융 위기가 온 세계를 강타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미국 은행이 무너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연쇄 부도가 미국을 쓸고 지나갔고, 전 세계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국가 GDP의 70%를 무역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이는 기업들이 꼭 필요한 돈이 아니면 지출을 줄였다는 말이다. 그래서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해고를 당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업무 평가가 안 좋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업무 평가가 좋았던 사람도 짐을 싸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국 이 화살이 유학파에게까지 날아갔다.


  기업들이 유학파에게 주었던 프리미엄을 줄이기 시작했다. 막상 같이 일을 해 보니 영어는 잘 해서 해외 관련 업무는 잘 했는데 한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그들이 해외에서 공부하는 동안 국내에서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윤리 등을 공부할 기회비용을 치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 간에 소통의 문제가 생겼다. 조직에서 소통은 업무 성과와 직결된다. 그리고 소통이 되려면 '공감'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유학파는 그게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회식, 인맥, 학연, 위계, 야근, 특근 등 국내 문화에 잘 녹아들지 못했다. 


  그리고 같이 일해보면 금방 알 수가 있다. 저 사람이 국내에서 공부하기에 능력이 뛰어나서 외국에서 공부했는지, 국내에서 공부하기에 능력이 부족해서 외국에서 공부했는지. 본인만 모를 뿐이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더 이상 유학파라고 해서 눈을 크게 뜨고 보지 않았다. 즉 유학파라면 묻지 마 취업이 되었던 것이 유학파들 중에서도 업무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만 취업이 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달라지자 가뜩이나 가계도 어려워졌는데 더 이상 아이들을 외국에서 공부시킬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외국에 있는 많은 아이들이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대한민국의 입시지옥에서 지친 아이들과 함께 외국으로 가는 것을 고려하는 부모들이 많다.


  지금 세계의 교육현장은 다가오는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요구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 사활을 걸고 있다. 이와 다르게 우리는 아직까지도 아이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시키고 있다. 시험문제를 하나 더 맞느냐 틀리느냐로 아이들의 대학을 가른다. 심지어 대학교에 가서도 학점을 위한 주입식 교육이 주를 이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금 유학을 생각하는 부모들은 이전과는 또 다르다. 영어와 취업 문제를 떠나 더 이상 대한민국의 입시 지옥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시험공부가 아니라 진짜 '교육'을 시키길 원한다. 지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하길 원하는 것이다. 한국의 한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Chric 교수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서 초등학교 아들을 두고 있다. 그런데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만 한국에서 살고 이후에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대한민국의 초등학교 교육은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중학교부터는 교육이 아니라 시험에서 정답을 고르는 테크닉만 가르치고 배우는 것 같다.」


  할 말이 없어서 겸연쩍게 웃기만 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더 객관적일 수 있다. 더욱이 한국에서 오래 체류한 그였기에 한국 교육의 문제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러면 외국에 나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실제 외국에서 공부한 사례들을 통해서 유학이 국내 교육에 실망한 학부모의 대안 될 수 있는지 다음 글에서 알아보자.




p.s. 

안녕하세요. 홍석철입니다.

지난주에 '다이어트 영문법'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집필 기간 6년에 편집 기간만 1년을 투자할 정도로 정성을 쏟았습니다.

아마 영문법에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저자 특강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본인이나 자녀의 영어 학습에 관심 있는 분들이 오신다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소중한 시간 내서 오신 만큼 제 노하우를 아낌없이 드리겠습니다.^^

그럼 강연장에서 뵙겠습니다~


신청하기 -> http://onoffmix.com/event/7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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