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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Jun 23. 2016

44 차라리 유학을 보낼까? (2)

진정한 교육을 찾아서.

  중3 수영이는 중학교를 마치고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 언니가 먼저 가서 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유학을 결정하고 준비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이 싫었고 외국 선진화된 교육 시스템에 대한 환상도 있었다. 처음 호주에 도착해서 1년 정도 어학연수를 하고 고등학교 3년을 호주에서 마쳤다. 그 과정에서 많은 유학생들을 보고 느낀 점은 다음과 같았다.


「유학을 일찍 온다고 꼭 좋은 점만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특히 초중고등학생들이 부모님 없이 유학하는 애들을 보면 대부분 저럴 거면 왜 유학을 온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


  호주의 경우 고등학교 학비가 꽤 비싸다. 수영이는 공립학교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학비가 연간 1,200만 원

~ 1,300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영주권자면 50%, 시민권자면 20%로 낮아진다. 호주는 유학생이 나라의 주 수입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비가 많많치 않다. 여기에 생활비와 기타 비용도 추가로 든다. 이렇게 비싼 돈을 내고 공부하는 유학생들 중에서 돈이 아깝지 않게 공부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국내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온 대학생들이 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저도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를 호주에서 다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호주의 고등학교 교육은 한국의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과는 다르다. 수업시간에 발표도 많이 하고 아이들이 직접 생각해서 써내야 하는 에세이 과제도 만만치 않다. 물론 호주는 등수에 근거한 상대평가 제도가 아니라 성적표에 A, B, C 등으로 기재되는 절대평가 제도다. 심지어 성적표도 없이 Pass or Fail만 알려주는 과목도 있다. 


  그렇다고 호주가 생각했던 것처럼 이상향은 아니었다고 한다. 호주에도 학벌이 존재했고 명문대에 입학하려고 고등학생들이 수능 공부를 치열하게 한다고 한다. 다만 객관식 시험을 하루에 보는 우리나라와 달리 객관식, 서술형, 그리고 에세이 형식으로 한 달 정도 보는데 원어민과 유학생의 문제가 다르다. 모국어가 아닌 점을 감안해 주는 것이다. 결국 수영이는 호주에서 고등학교까지만 마치고 대학교는 한국에서 다니기로 결정했다. 두 명이나 유학을 하니 집에서 학비를 대느라 힘들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유학을 간다고 모든 게 해결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4년 동안 공부한 뒤 수영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아이는 외국에 나가도 마찬가지더라고요.」


  그렇게 수영이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국내 대학교를 가기 위해 다시 입시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진아는 조금 다른 케이스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를 졸라서 필리핀 영어 캠프에 참가했다. 주위에 친구들이 너도 나도 어학연수를 가니 진아도 외국에 '놀러'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혹시나 초등학생만 보내면 위험하지 않을까? 지역마다 치안 수준이 다르긴 하겠지만, 진아가 공부했던 필리핀 일로일로라는 지역은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한국인 이모님이 운영하는 홈스테이에서 머물렀기에 음식이나 생활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업은 보통 원어민 선생님과 1:1로 많이 하고 아이들이 많은 경우에도 1:4를 넘지 않는. 그러니 수업에 대한 참여가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겨울방학을 포함하고 1달을 개인 사정으로 조정해서 4개월 정도 갔다 왔다. 그 이후로 방학이면 꾸준히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어릴 때 필리핀에서 공부했던 시간을 너무 행복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진아의 영어 실력이 외고에 갈 정도로 뛰어난 수준은 아니다. 그저 일반고에서 또래들보다 발음과 언어적 감각이 조금 좋은 수준이다. 생각보다 비용은 비싸다. 4개월에 다 해서 2천만 원 가까이 든다. 이 정도 비용에 이 정도 시간을 공부해서 또래들보다 조금 나은 정도가 현실인 것이다. 


  혜영이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공무원인 아버지가 미국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동안에 태어난 것이다. 이후 초등학생 시기에 미국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워싱턴, 버지니아, 보스턴 등 다양한 지역을 경험해본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혜영이의 큰 자산이다. 아버지의 해외 근무가 끝나면서 길었던 혜영이의 유학생활도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그러나 중2 때 혼자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기숙학교가 워날 잘 되어 있어서 지내는 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미국 문화권에서 자랐기에 한국보다 미국식 교육이 더 익숙하기도 했다. 한국의 교육은 한 마디로 교과서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 것이고 미국의 교육은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혜영이는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초중고 교육은 사고의 틀을 형성한다. 혜영이는 미국에서 대학교까지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석사 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한국식 교육을 힘들어한다. 특히 무언가를 외워서 시험 보는 과목은 늘 성적이 좋지 않다. 반면에 어떤 현안에 대해서 토론하는 수업에서는 발군의 능력을 보였다. 반대로 한국 아이들은 이렇게 토론하는 수업을 힘겨워한다.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해당 주제에 대한 자료 조사와 논의가 어디까지 진행되어 왔는지 그 사고의 흐름을 따라와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본인의 의견을 뒷받침할 수 있는 데이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험은 주어진 범위를 성실하게 공부하면 좋은 성적이 보장된다. 하지만 토론은 정답이 없다. 정답은 없지만 정답의 가능성이 있는 방법을 탐색해야 한다. 사실 전혀 다른 차원의 공부인 셈이다. 


  미국의 대략적인 유학 비용은 사립고는 1년에 대략 4~5천 만원이, 공립고는 그 반 정도 든다. 더 큰 문제는 자유분방한 아이들이 홀로 유학 와서 그 비싼 학비를 내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미국 문화(?)를 경험하느라 공부를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용돈이라도 풍족하게 보내준다. 철없는 아이들은 좋구나 하고 한 달 용돈을 일주일 만에 탕진하고 또 집에 손을 벌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서 군대식 기숙학교도 존재한다. 지금 혜영이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자녀를 유학 보낼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말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한국에서는 정답만 가르치는데 사실 인생을 살아보면 정답은 없는 것이 아닌가? 모든 아이가 국영수에만 매달리는 게... 물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있지만 그 아이의 인생에서 바라보면 불행할 수도 있다. 아이가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을 수도 있으니깐. 만약 미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가 한국에서 교육을 받으면 한 가지 기준으로만 그림을 그려야 한다. 바로 미술 선생님의 눈에 예쁘게 그리는 것이다. 미술도 음악도 내 거를 해야 하는데 한국은 현실적으로 그게 힘들지만 미국은 가능하다. 그래서 인생에 한 번쯤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교육을 시키고 싶다.」

  

  그러면 언제 보내는 게 가성비가 제일 좋냐는 질문에 '중학생'이라고 답했다. 언어를 고려하면 초등학교 때 보내는 것이 좋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물론 그렇지만 어차피 한국에 돌아와서 살 꺼라면 '친구'가 소중하다고 한다. 친구는 평생의 큰 자산이니 초등학교 동창회 정도는 나갈 수 있게 해주고 싶단다. 사실 가장 격 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초등학교 친구들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유학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수혁이는 대학생 때 캐나다 토론토로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옛날에는 외국물 먹고 오면 다르게 봤는데 요즘은 대학생 중에서 외국에 안 갔다 온 경우를 찾는 게 더 힘들다. 토론토에는 어디를 가도 한국 유학생들이 많다. 그렇게 타지까지 멀리 와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 중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그룹대로 순위를 매겨달라고 부탁했다. 수혁이의 1년간 경험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1. 캐나다 학교에 다니는 초중고 유학생

가장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아시아 인들이 거의 없는 학교에 다니는 초중고 학생들이었다. 이들에게 공부는 미래의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장의 생존을 위한 문제다. 얘기를 못해서 답답하고 아무도 자기를 상대해주지 않고 누구 하고도 유대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언어 능력을 향상하여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언어 외에도 장벽이 있다. 내성적인 성격이다. 이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쉽게 관계를 맺지 못하기에 성격이 활달한 아이들보다 유학생활의 고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2. 방학 때 어학연수 온 초중고 학생

그다음 부모에게 이끌려온 초중고 학생들이다. 이들은 캐나다 학교에 유학에 온 치구들 만큼 절박하지 않다. 교실에 한국인도 많고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 학생들도 영어 실력이 비슷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크지 않다. 그래도 강의 시간표가 있고 다양한 활동이 짜여저 있어서 정해진 시간에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도 적당히 하고 여행도 적당히 즐기다 돌아간다고 한다.


3. 6개월 ~ 1년간 어학연수 온 대학생

문제는 어학연수 온 대학생들이다. 이들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완전히 여행 온 것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다. 새로 사귄 외국 친구들과 수업 끝나고 놀러 다니면서 소중한(?) 경험을 한다. 물론 외국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도 일종의 공부다. 그러나 이렇게 1년 동안 생활하면 딱 기초회화 수준의 실력만 가지고 한국에 돌아온다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도 이들은 자주 만나면서 꿈만 같았던 그 시절 추억(?)을 공유한다. 


  지금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수혁이에게 자녀를 유학 보낼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수혁이는 아이 혼자는 절대로 보내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여건이 되면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유학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유는 영어. 한국 사회에 나와보니 국영수 지식보다 영어가 더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란다. 중학교를 외국에서 보내면 고등학교에 가서 한국에서 공부한 아이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일러주었다. 공부를 못하고 대학을 못 가도 괜찮단다 영어만 잘 하면. 그만큼 영어의 가치를 크게 생각했다. 


  정리하면, 한 때 유학을 이상적으로 바라보고 선진화된 교육 시스템에 아이를 보내 놓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유학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유학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비싼 돈 들여 외국에 나갔지만 국내에 있을 때보다 공부를 안 하는 아이도 있다. 여기에 대학 입시 제도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번 글에서는 입시제도를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간단히 말하면 입시 제도는 유학생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이번 글은 지인들의 유학 경험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그들의 경험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부분이 있는 반면, 사람마다 가치관이나 환경이 다르므로 공감하기 힘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교육은 아이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현시켜서 미래에 경제 사회적 활동을 영위할 수 있게 준비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가늠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이끌어줘야 할지 한 번쯤은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p.s. 소중한 경험을 아낌없이 나눠준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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