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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Aug 11. 2017

62 답이 없어 보이는 아이

그래도 해결책은 있다

  고1 성호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 학원에 다녔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는 과외도 병행했다. 부모님께서 의지를 가지고 영어 하나만큼은 잘 가르치겠다고 의기투합했다. 그런데 아이가 중학교에 올라가서 영어 점수가 50~70점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중학교 때는 아직 어리고 아이도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이게 아이의 본 실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이도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하니 좀 믿고 기다려 주면 성적이 오르겠지 싶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첫 시험에서 사단이 났다. 아이가 반에서 꼴등을 한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성호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고 수업 중이라 통화가 안 되면 다음과 같은 장문의 문자를 계속 보냈다. 


「안녕하세요. 성호 엄마입니다. 성호가 영어가 많이 어렵다고 하기 싫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어서요. 영어 단어는 매일 20개씩 외우고 검사하기로 했어요. 독해도 잘 안된다고 하는데...」


  물론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이가 반에서 꼴등을 했는데 어느 부모님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당장 문제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고 싶은 마음으로 안절부절 못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사람이 절박하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법이다. 


  성호 엄마는 주변에 유능한 선생님을 수소문해서 아이에게 1:1 과외를 붙이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효과가 없지야 않겠지만은 그게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사실 성호가 중간고사 대비를 하는 중에 학원에 들어왔기 때문에 아이에 대해서 100%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다만 왜 이렇게 늦게 학원에 들어왔냐는 질문에, 아이가 겨울방학 동안 기숙학원에서 공부하고 왔다고 했다. 기숙학원에서 무엇을 공부했냐는 질문에 아이는 겸연쩍게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 솔직히 무슨 말하는지 하나도 몰라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성호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파악되었다. 첫 번째는 그동안 학원과 그룹과외에서 '들러리'를 한 것이었다. 성호는 학원에서 어떻게 공부했냐는 말에 친구들과 노느라 공부는 제대로 안 했다고 시인했다. 그리고 그룹과외에서 공부하는 책을 보니 성호가 감당할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단어도 모르는데 문제를 풀면서 진도만 나가고 있었으니 아이가 실제로 소화한 지식의 양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엄마는 모르고 있었다. 9년 동안이나. 어머니가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전업주부로 일하고 있었는데도 상황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되었다. 부모님이 자녀를 매일 봐도 자녀에 대해서 100% 다 아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번째는 고등학교 선택이다. 주변에 여러 고등학교가 있는데 성호는 그중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모이는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면학 분위기가 좋은 곳에서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일까?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고 기본기가 없는 성호가 한 달 공부해서 풀 수 없는 시험지 앞에서 성호는 좌절했다.


  사실 이럴 경우 딱히 해답을 찾기 쉽지 않다. 아이가 죽기로 각오하고 달려들면 성적 향상이 가능하지만 성호는 그럴 정도로 학업에 열정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적당히 열심히 해서는 이미 실력도 좋고 더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과 경쟁 자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공부라는 것이 하다 보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점점 자신만의 노하우가 만들어지는데 성호는 이제 시행착오를 하는 단계이고 다른 아이들은 시행착오를 끝내고 고효율의 학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학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성호와 어머니는 전학이라는 옵션은 아직 생각해 두고 있지 않았다. 그러면 남은 방법은 정면 돌파다. 이럴 경우 부모님의 역할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이가 공부를 해서 실력이 쌓여가는 기간을 부모가 기다려주지 못하고 닦달할 수가 있다. 시험문제가 평이하다면 한 달 열심히 공부해서 늘어난 지식의 양이 바로바로 시험 점수로 환원된다. 그러나 소위 빡센 일반고에서는 문제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점수로 실력이 환원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다행히 성호 어머니는 당장의 시험 점수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다. 수 차례 상담을 통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명문대학교를 나온 고액 과외 선생님을 찾으려는 생각도 버렸다. 이 역시 상담을 통해서 생각을 바꿔 놓았다. 지금 성호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고차원적인 원리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진심 어린 관심을 가지고 아이의 학습관을 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렇게 1년 정도 기초에 투자하면 아이가 달라질 것이라는 말에 어머니가 동의를 한 것이다. 


  단 과외 선생님을 구할 때 대학생과 너무 젊은 선생님보다는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선생님을 추천했다. 그리고 교수 방식에서는 수업을 통해서 아이를 가르치겠다는 사람보다는 아이가 공부를 하고 이를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는 사람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얼마 뒤에 연락을 해보니 집 근처에 원하는 학원을 찾았다고 했다. 40대 여선생님인데 강의식 수업을 하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공부를 하게 이끌어주고 확인을 하는 시스템이라서 마음이 놓였다고 한다. 지금 2주째 다니고 있는데 아이도 부모님도 상당히 만족한다고 한다. 그리고 덕분에 늦게나마 아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서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아이 문제로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언제라도 연락을 하라고 답했다. 


  성호를 보면서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아이가 이 상황에 오기까지 학교나 학원에서 부모님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학교는 무관심했고 학원은 진실을 은폐했다. 물론 아이 책임도 있지만 성호를 보면서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는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어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정리하면, 부모님이라고 자식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아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때로는 객관적으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굉장한 용기와 실망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를 덮어두면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있다. 성호는 '잘 하겠지'라고 생각한 부모님과 '쟤는 언제쯤 공부할까?'라고 안일하게 대처한 교사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집에 가고 보자'라고 생활한 성호의 몇 년간 콜라보(?)로 나타난 결과이다. 심각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잘 찾아보면 해결책은 있다. 해결책은 바로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무턱대고 고액을 들일 필요는 없다. 기본이 부족하면 언제 무너져도 무너진다. 무너진 후 대책은 다시 기본을 세우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입시왕, 공부를 부탁해> 저자 홍석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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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학습에 대해서 관심이나 걱정이 많은 부모님께서 오신다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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