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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Jun 20. 2017

61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

못한다고 생각하니 진짜 못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남녀 공학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총 12개 반 중에서 6개는 이과, 6개는 문과반이었다. 이과는 남학생 반이 두 개, 문과는 여학생 반이 두 개 있었다. 대체로 남자는 수학, 과학에 관심이 더 많았고, 여자는 국어, 영어, 사회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실제로 시험 성적도 관심과 비례하는 듯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미국 수능시험인 SAT 수학 점수 700점 이상인 학생들의 경우 남학생 수가 여학생보다 13배나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반적으로 이런 생각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스며드는 것 같다.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


  실제 결과가 뒷받침하고 있으니 딱히 반박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아이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자도 수학을 못하는 학생들이 엄청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남자가 수학을 못하면 그 아이의 수학적인 감각이 부족한 것으로 여긴다. 


  반면에 여자가 수학을 못하면 원래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여자는 남자보다 수학적 역량이 부족한 DNA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니다. 그럼 왜 여자가 남자보다 수학 점수가 낮게 나올까? 그 원인을 찾아보자.


  1990년대 후반에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연구원들은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 중 수학 성적 상위 10%의 학생들을 선발했다. 이들의 남녀 수학적 점수 차이는 없었다. 그리고 두 그룹으로 나누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게 했다. 


  시험이 끝나고 결과를 분석해보니 한 그룹은 수학 점수에 성별 차이가 없었지만, 다른 그룹은 성별 차이가 발견되었다. 다른 한 그룹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수학 점수에 성별 차이가 없었던 그룹은 시험지를 나누어주면서 여러분 모두 좋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시험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수학 점수에 성별 차이가 발생했던 그룹은 시험지를 나누어 주면서 이 시험의 과거 점수에서 남녀 차이가 있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연구에 참여한 남녀 학생들은 수학 실력이 같았지만 남녀 사이에 불균형이 존재했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실제 남녀 차이가 벌어졌다.  


  실험 결과에 대한 해석은 이렇다. 문제를 풀다가 난관에 부딪혔을 때 여러분 모두 좋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학생들은 아마 문제를 풀기 위해서 최선을 다 했을 것이다. 물론 문제를 푼 학생도 있고 못 푼 학생도 있었다. 그래도 성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 점수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성적이 좋았다는 말을 들은 여학생들은 문제를 풀다가 막혔을 때 이런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어 이게 아닌데? 이상하네...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못 푸는 문제일까? 역시 여자는 남자보다 수학을 잘 못하나 봐. 어차피 해봐야 못 풀게 뻔한데 괜히 힘 뺄 필요 없는 것 같아. 그만 고민하자.' 


  100% 집중해서 고민해도 풀까 말까 한 문제를 이렇게 포기하는 게 더 낫겠다는 목소리와 싸워가면서 문제를 

풀어야 하니 당연히 결과가 좋을 리 없다. 


  못한다고 생각하니 진짜 못하게 된 것이다. 


  최근 시카고 대학교와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경제학자들은 40개 나라의 열다섯 살 학생 27만 6천 명 이상이 똑같은 수학 시험을 치른 2003년도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 데이터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사회의 남녀평등지수와 여학생의 수학 점수 사이에 확실한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예컨대 남녀에 대한 문화적 태도에 큰 격차가 있는 터키 같은 나라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수학 성적 차이가 두드러져 남학생이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노르웨이나 스웨덴처럼 양성 평등이 이뤄진 국가에서는 이런 격차가 아예 없었다. 


  미국은 아직 남녀 불평등이 존재하는 나라이므로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의 수학 성적 격차가 확실하게 드러났다. 아이슬란드처럼 여학생과 남학생의 수학 실력 격차가 거의 없는 국가의 경우에는 수학 성적 전체 중 1퍼센트 이상의 점수를 얻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많았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 SAT 수학 700점 이상에서 여학생들보다 13배 많았던 남학생의 숫자가 '교육 기회 평등법'이 시행되자 바로 2.8배로 줄었다는 것이다. 교육 기회 평등법은 남녀 사이에 운동, 수학, 과학 교육을 비롯해 학습과 관련된 모든 부분에서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여학생이 원래 수학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물심양면으로 훨씬 더 많은 수학 교육 기회를 받았을 뿐이다. 그러면 교육 기회만 동등하게 얻으면 수학 성적이 달라질까? 


  경제학자 데이비드 피글리오는 여자아이의 이름이 여성스러울수록 고등학교에서 미적분 수업을 들을 확률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연구자는 테일러나 매디슨처럼 여성스럽지 않은(중성적인 이름)을 가진 학생에 비해 이사벨라나 애나처럼 여성스러운 이름을 가진 여자들이 스스로를 여성적인 이상형과 결부시키고 부모나 교사, 동료들에게 다른 대우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여성스러운 이름을 가진 여자들은 수학, 과학보다 인문학이나 외국어 등 전통적으로 여자들이 많이 택하는 교과목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스러운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들은 전통적인 성 정체성에 맞는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이 높은 집안에서 자랐을 확률이 높고, 따라서 전통적으로 남자들이 지배하는 학문 분야를 기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육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이름을 중성적으로 지으면 우리 딸이 수학을 잘하게 될까? 여기에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바로 '롤 모델'효과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여름 방학 과학 리더십 콘퍼런스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게 한 뒤 참가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그 결과 홍보 비디오에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많이 등장하면 그 콘퍼런스가 자신의 전공과 관련이 있더라도 여학생들이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낮았다. 반면 그 홍보 비디오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 수가 같으면 많은 수의 여대생들이 참석하고 싶어 했다. 


  과학 콘퍼런스 연구를 수행한 스탠퍼드의 심리학자 클로드스틸에 따르면 사람들은 수학이나 과학 같은 학문 분야에서 자기가 성공할 가능성을 본능적으로 인지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공할 수 있는 징후(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여자가 별로 없으면)가 많지 않으면 그 분야에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수학,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남녀 비율의 불균형은 여자들이 이 분야를 공부하고자 하는 생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수의 여자들이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이는 경우가 거의 없고, 다시 롤모델의 부재로 이어지는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미국 공군 사관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의 경우 수학, 과학 과목을 여교수들이 가르쳤을 때 학점이 더 높았다. 그리고 여학생들에게 수학, 과학 개론을 가르치는 교수가 전부 여자인 경우, 그 여학생은 같은 과목을 남자 교수에게서 배운 여학생들에 비해 이 분야 전공을 택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펜실베니아에 있는 한 초등학교의 경우 '여학생을 위한 점심 학습 모임'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매주 다른 여성 과학자들이 학교로 찾아와 초등학교 여학생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들려준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여학생들을 수학 과학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여자들과 만나게 하고 그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이 모임은 여학생들에게 과학자, 엔지니어, 수학자 등이 남자들만을 위한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준다. 이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여자는 남자보다 수학적 역량이 부족한 DNA를 가지고 있지 않다. 사회문화적 남녀 불평등으로 인해 여성이 동등한 학업 기회를 얻지 못할 뿐이다. 설령 기회는 같더라도 수학 과학을 공부해서 성공할 수 있는 문이 아주 좁기 때문에 이 분야를 진지하게 학습할 동기가 부족하다. 더욱이 몇몇 가정에서는 여자 아이의 정체성(이름)을 전통적인 테두리 안에 가두어 수학 과학은 남자들의 영역이라는 인식을 어릴 때부터 심어준다. 당장 사회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집안의 분위기는 바꿀 수 있다. 수학 과학은 남자들의 학문이라는 생각이 생겨날 수 있는 언행은 피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면 우리 아이가 가지고 있는 수학적 역량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사장되는 효과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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