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기 보다는 그 분야의 가치를 알려주자.
대한민국 교육의 1차 종착역은 대학교다. 아무리 특별한 고등학교에 들어가도 희망하는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면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실패했다고 느낀다. 본인도 주변 사람도. 반면에 평범한 고등학교에 들어가도 희망하는 대학교에 진학하면 성공했다고 느낀다.
희망하는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등학생 때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스케줄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중학교 때 어느 정도 준비를 해야 한다. 따라서 중학교부터 치고 나가려면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내려가다가 태교 학습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남보다 일찍 시작하면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과연 옳을까? 이론적으로는 틀리지 않는 것 같다. 남보다 더 일찍 더 많이 노력했으므로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남보다 학습을 일찍 시작한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옆집, 윗집, 아랫집 아이들이 전부 수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우리 아이만 놀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공부를 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까지는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 어린아이들이 하는 공부라는 것이 사실 놀이반 공부반이니깐.
아이들도 어른들이 무언가를 하라고 하면 처음에는 곧 잘 따라 한다. 처음부터 '나한테 공부하라고 그러면 나 밥 안 먹을 거야!'라고 협박하는 아이도 별로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공부하라고 하면 아이들이 완강히 저항하기 시작한다. 그 터닝포인트가 어디쯤일까?
어른으로서 부모님으로서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교육을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매우 정상적이다. 하지만 공부를 시작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교육을 통해서 내 아이를 먼저 유리한 고지에 올려놓아 경쟁자들보다 더 똑똑하고 유능하게 만들어야지.」
이 생각이 바로 불화의 씨앗이다. 사실 인간이 무언가를 습득하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본인이 남보다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한 가지 떠올려보자. 등산, 요리, 테니스, 골프, 미술, 음악 등등.. 내가 좋아서 적극적으로 하는데도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생각 같아서는 착착착 진행될 것 같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슬럼프와 끝없는 훈련 과정이다.
하물며 이제 유치원, 초등학생 아이들이 의지도 관심도 없는 공부를 하는데 실력이 빨리 늘까? 언어적, 수리적 감각이 좋은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매일 이런 말을 들을 것이다.
「너는 이것도 모르니?」
「도대체 몇 번을 설명해줘야 알겠니?」
「됐다. 너는 공부 쪽은 아닌가 보다.」
이런 말을 입 밖으로는 안 내더라도 어른의 얼굴, 표정, 눈빛, 말투를 통해 아이들은 느낀다. 그리고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과도한 압박감을 느낀다. 이런 스트레스의 결과는 유치원생이 두통과 복통을 일으키고, 초등학생이 학습 장애와 우울증을 앓으며, 10대가 약물 남용과, 섭식 장애, 자살 등으로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영어 울렁증을 앓고 있는 중고등학생을 여러 명 만났다. 이들의 증상은 하나같이 비슷하다. 영어 책만 펼치면 바보가 된다. 얼굴이 붉어지고 말을 더듬고 눈빛이 두려움에 흔들리고 표정이 경직되는데 억지로 웃음을 짓는다. 이들의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영어 유치원을 나왔다는 사실이다.
한 동안 이해가 안 됐지만 얼마 전 영어 유치원을 운영하는 지인을 만나고 궁금증이 풀렸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부모님은 자녀가 뭔가를 배웠다는 확실은 증거를 원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부모님 참관수업을 위해서 아이들은 한 달 동안 죽어난다는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 뭔지도 모르는 영어 때문에 혼나고 남아서 따로 억지로 외우고 주변 사람들의 한심한 눈빛을 받은 아이가 영어를 좋아한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지 않을까? 이렇게 잘못된 교육을 받은 아이는 평생 회복할 수 없는 정서적 장애를 안고 살아갈 수도 있다.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7세에 읽기를 시작한 아이들이 6세에 시작한 아이들보다 읽기와 관련한 학습 장애를 덜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덴마크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읽기 교육을 시작하는데 문맹률이 1% 이하이다. 프랑스는 5세부터 읽기 교육을 시작하지만 읽기에서 문제를 겪는 아이들이 30%에 이른다.
너무 일찍 교육을 시작한 아이들이 후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늦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적정한 시기가 있는데 이게 아이들마다 개인차가 존재한다. 기억해야 할 점은 빨리 시작한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시간 주의 한 학교는 14년간 추적 조사를 실시한 후 영재아이들의 조기 입학 제도를 폐지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입학 후 3분의 1은 학교 부적응
2. 사회에 나갔을 때 성공한 아이는 20명 중 1명
3. 사회에 나갔을 때 4명 중 3명은 평균 이하의 성과를 보였다.
4. 4명 중 1명은 학교에서 유급을 당했다.
그러면 일찍 시작해서 좋은 결과를 낸 아이들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비범한 능력을 보여준 많은 인재들을 연구한 결과 그들이 창의적인 인물이 되는 데 부모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대답을 직접 들어보자.
- 부모님은 교육을 잘 받은 분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사회적 가치를 체득하고 지식이나 정보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부모님과 저녁 식탁에서 나눴던 대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 나는 부모님과 아주 가까웠고 부모님은 나를 열심히 응원해주셨다. 나는 집에서 많은 독서를 했는데, 부모님이 늘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이 점이 학교에서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 나는 책과 잡지, 신문이 넘쳐나는 집에서 자랐다. 우리는 그 안에 쓰인 내용이 마치 중대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끊이지 않고 토론을 했다.
- 교육적으로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두말할 나위 없이 내 부모님이다. 부모님은 우리가 원하는 '학습 도구'는 무엇이든 구해준다는 철학을 갖고 계셨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부모님이 자녀에게 특별한 기술을 직접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부모님이 자녀에게 보내는 응원과 격려 그리고 집 안에서 만들어내는 지적인 분위기가 중요한 요소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재들의 첫 번째 멘토인 부모님은 이들이 성공한 분야의 대가들이 아니라 그 분야에 대한 엄청난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그 첫 번째 멘토인 부모님을 통해 해당 분야에 큰 흥미와 가치를 느끼게 되어 그 분야에 종사하게 되었다. 기술을 가르쳐준 멘토는 해당 분야에 들어선 후에야 비로소 만나게 된다.
평범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배움에 대한 흥분과 열정인 것이다. 동기가 마련되면 기술은 쉽게 배울 수 있다. 그런데 잘못된 교육은 기술에 집중하느라 동기를 손상시킨다. 바로 유치원 초등학생들에게 몇 가지 기술이나 가르치자고 그 학문을 싫어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리하면, 남보다 먼저 시작한다고 항상 더 잘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과도한 교육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의 정서적 발달에 치명적일 수 있다. 과학적인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게 되는 소수의 성공한 케이스는 1%의 아이들임을 기억하자. 이들 뒤에는 99% 아이들이 학습 장애와 복통, 두통, 우울증에 고통받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중에서 조기교육에 성공한 사례들을 분석해보면 부모님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부모님이 직접 해당 분야의 지식을 전수하기보다는 그 분야의 열정을 통해서 자녀가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분야의 고급 스킬(?)은 해당 분야에서 종사하면서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