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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Oct 04. 2016

48 사고의 방향

미래지향적인 사고

  9월 12일 경주에서 한반도의 관측 이래로 가장 강력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후 전국에서 400회가 넘는 여진이 일어나고 있다. 더 간담이 서늘한 것은 지진의 진앙지가 월성 원전에서 28Km, 고리 원전에서 5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안전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경상남도 주변에서 지진이 여러 번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진이 일어난 원인은 지각이 어긋나 있는 단층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럼 단층이 왜 움직였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두고 많은 전문가들이 갑론을박을 하고 있다. 크게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거론되고 있다. 


1 북한 핵실험 

2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

3 한반도의 단층이 활성화되고 있다

4 아직 파악하지 못한 기타 원인


  위에서 언급한 원인들은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지진 연구와 관측으로 밥을 먹고사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이니 그 근거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모든 것이 '가설'이라는 것이다. 신빙성 있는 자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이 이번 지진의 정확한 이유라고 단언하기 힘들다. 위에서 말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왜 9월 12일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 지진이 발생했는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떠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찾아가는 것을 '과거지향적'이라고 하자. 그리고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을 '미래지향적'이라고 하면, 우리는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즉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종혁이는 고1 첫 시험에서 반에서 꼴찌를 했다. 평온하던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 성적이 저조한 학생은 이후 삶에서 아주 고약한 일들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종혁이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수화기 넘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질문의 요지는 도대체 우리 아이가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됐냐는 것이다. 즉 꼴찌를 한 원인이 궁금하다는 것이다. 학생과 어머니를 수 차례 만나서 알게 된 사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아이는 그동안 공부를 하지 않아서 학력이 부족한 상태다.

2 아이는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학습 동기도 부족했다.

3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학원을 다녔는데 사실 친구들과 놀러 다녔다고 시인했다.

4 중학교부터 시작한 그룹 과외는 솔직히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5 부모님이 두 분 다 일을 하느라 그동안 아이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문제는 이렇게 가능한 이유들을 살펴봐도 학업이 부진한 이유가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정말 궁금하지만 이런 것들이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얘기해주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아마도 위의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과거지향적인 사고의 흐름은 대부분 여기서 막힌다. 이유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보는 것외에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여기서 사고의 흐름을 미래 지향적으로 유턴해야 한다. 


  우선 들러리를 하고 있는 그룹 과외를 그만둘 것을 권했다. 교재를 보니 아이의 수준에 맞지 않는 내용의 교재였다. 역시나 숙제도 못 해가고 이해도 안 된다며 푸념을 했다. 왜 좀 더 일찍 말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니깐, 다른데 가도 비슷할 것 같아서 그냥 있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답답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니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다니던 학원은 그만두고 당시 내가 운영하고 있는 학원에 왔지만 어머니에게 솔직히 말씀드렸다. 지금 학원 수업을 들어도 기초가 부족해서 효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그래서 이번 시험까지만 우리 학원에서 준비하고 종혁이에게 맞는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그동안 아이가 학원과 과외를 꾸준히 다녔는데 하나도 공부를 안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처음으로 아이와 학업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서서히 아이의 상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분통을 터트리는 한 가지는 그동안 다녔던 학원과 과외 선생님들 중 누구도 종혁이의 상태에 대해서 정학히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끔 통화할 때면 아이가 잘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학원은 아이가 오래 다니도록 해야 되게 때문에 여간해서는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관례(?)라고.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다 솔직하게 말하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학원은 별로 없다. 어쨌든 이것도 과거지향적인 사고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이끌어야 되는지이다. 우리의 사고는 의식적으로 미래지향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계속 과거로 회귀하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종혁이 같은 아이들은 공교육에서 제대로 공부하기 힘들다. 학교에서 수업하는 내용은 아이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누가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가르쳐 줄 것인가? 대한민국에서 사교육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종혁이는 1년 정도 꾸준히 기초를 쌓을 수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과외를 추천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좋은 대학교를 나온 좋은 선생님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에게 좋은 대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다 좋은 선생님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키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더욱이 지금 종혁이에게 필요한 선생님은 고차원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선생님이 아니라 부족한 기본을 차근차근 가르쳐 줄 수 있는 마음이 따뜻한 선생님이라고 설득했다. 


  어머니가 설득되었을까? 설득되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 처하면 조급한 마음에 빨리 아이의 성적을 올려준다는 광고에 현혹되어 이학원 저 학원 다니면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외는 일주일에 3번 정도 가는 것을 권했다. 영어는 언어라는 특성상 노출 시간과 실력의 향상이 어느 정도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습 방법도 수업을 듣는 형태의 공부가 아니라 부족한 단어를 외우고 선생님이 이를 확인해 주는 방법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영어는 초급자들이 할 수 있는 공부가 70%는 단어를 외우는 것이다. 그리고 몇 개월 정도 꾸준히 공부해서 어휘력이 쌓이면 문장을 읽고 듣기 시작할 수 있다. 이때 문장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문법을 배우면 된다. 결국 어머니는 경력이 있는 선생님이 관리해주는 형태의 교습소를 찾았다고 연락이 왔다. 


  정리하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찾을 필요는 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사고의 흐름을 문제의 원인이 아닌 앞으로의 대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아이들 교육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학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과거에 어떤 원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앞에서 본 종혁이의 경우도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통해서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아이가 당면한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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