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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Sep 20. 2016

47 시험에 나올 것만 공부한다

인간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오랫동안 사용하던 휴대폰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한 4년 정도 썼으니 쓸 만큼 썼다 싶었다. 매달 대기업에게 할부금을 내는 게 싫어서 상태가 좋지 않은 기계로 버텼던 것이다. 새로운 휴대폰을 살 생각을 하니 잠시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고민 끝에 다다른 결론은 역시나 매달 대기업에게 월수(?)를 찍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제품이냐 외국 제품이냐 하는 것이다. 고민 끝에 국내 제품으로 선택하고 평소 이용하던 집 근처 대리점으로 향했다. 그러나 마음에 염두에 두고 갔던 제품이 화면의 양 끝이 휘어지는 엣지형으로 밖에 출시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개인적으로 엣지는 마음에 안 들어서 다른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한 휴대폰의 연이은 폭발 사고로 언론이 도배되고 있다. 이 휴대폰이 내가 원래 사려던 제품이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고 제품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여기서 드는 질문 하나. 휴대폰 분야의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왜 이런 어이없는 물건을 만들게 된 것일까? 그 유능하고 똑똑한 인재들은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렇다. 그들은 본인들이 만든 최신 휴대폰이 폭발물 취급을 받아 비행기에 가지고 탈 수 없게 되는 상황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들의 능력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다. 인간은 원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추측할 뿐이다. 예측이라고 일컬어지는 대부분의 행위들은 사실 낮은 확률의 추측일 뿐이다. 우리는 내일 날씨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번 여름에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가 산 주식이 오를지 떨어질지도 모른다. 오르길 기대하면서 살뿐이다. 한 기업이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어서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그러나 그 제품이 폭발물로 변할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우리가 힘없는 개미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500조가 넘는 대한민국 최대 펀드인 국민연금을 관리하는 팀장 홍춘욱 씨가 <워런 버핏의 주주 서한>에서 쓴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나는 명색이 경영학 그것도 재무를 전공한 박사이고, 지금까지 22년 넘게 경제 분석 및 자산운용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주식시장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음을 인정한다. 일단 왜 주가가 그렇게 널뛰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최근 중국 증시의 놀라운 움직임에서 보듯이 그렇게 거대한 시장이 하루에 5% 급등하고 다음 날은 10% 가까이 하락하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한다. 돈을 빌려 투자하는 마진 트레이딩, 그리고 서투른 중국 정부의 대응 등이 중국 증시의 변덕을 일부 설명하지만 왜 그렇게 갑자기 그런 변동성이 나타나며, 또 언제 다시 변동성에 줄어들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어쨌든 그는 모른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할 정도로 본인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적어도 사기꾼은 아닌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주식으로 최대의 갑부 반열에 오른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또한 책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다. 워런 버핏은 본인이 최대 주주로 있는 회사의 다음 분기 실적조차도 전혀 예측할 수 없다고 시인하고 있다. 그저 유능한 직원들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그는 어떤 기업을 싼 값에 사서 나중에 비싼 값에 파는 시세차익은 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철학은 좋은 기업을 제 값을 주고 사는 것이라고 한다. 결론은 인간이 하는 모든 예측은 낮은 확률의 도박일 뿐이다. 


  9월 모의고사가 끝났다. 추석 연휴에도 수험생들은 편하게 쉬지를 못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나고 다음 날 한 삼수생이 찾아왔다. 세상 걱정과 고민은 본인이 다 짊어진 표정이었다. 재수를 하고 삼수까지 하는데 원하는 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으니 그 걱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학생의 질문은 어려운 문제를 계속 틀린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나 틀렸단다.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풀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답은 간단하다.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을 할 수는 없다. 그 학생이 이런 말을 듣자고 찾아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남이 듣고 싶은 말 중에서 고민해야 한다. 확인을 해보니 어려운 문제뿐만 아니라 쉬운 문제도 많이 틀렸다. 그래서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쉬운 문제를 다 맞고 나서 어려운 문제를 공부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돌려서 말해주었다. 학생이 알아 들었을까? 역시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럼 어떤 문제가 나올지 '예측'을 해달란다. 


  한 강사가 수능에 나올 문제를 찍어주겠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속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예측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강사가 찍은 지문이 수능에 꽤 많이 나왔다. 학생들은 열광했고 그 강사는 한 껏 고무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수능에 나올 지문 300개를 찍어서 책으로 팔았다. 내가 그 책을 봤을까?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전에 유명 학원 강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시험에 나올 지문을 선별해서 낸 책으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100개의 지문을 찍었는데 수능에 몇 개가 나왔을까? 1 지문이 나왔다. 1% 적중한 셈이다. 그 전후에도 비슷했다. 물론 유달리 높은 적중률을 보이는 책도 있었지만 다음 해에는 여지없이 예상을 빗나갔다. 그 300개의 지문을 찍은 책에서 몇 문제가 수능에 연계되었을까? 3문제가 나왔다. 역시나 1% 적중했다. 


  6월 모의고사가 끝나고 한 스타 강사가 추락했다. 현재 증거 인멸의 우려로 감옥에 있다. 지인을 통해서 시험문제를 유출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높은 적중률의 이면에는 이렇게 어두운 거래가 있었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무리하게 하려는 결과는 이렇게 끝났고 말았다. 그러나 오늘도 다른 강사들이 예측을 해주겠다며 아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시험에 나올 것만 '효율적'으로 공부하길 원하는 아이들은 이러한 광고에 저항할 힘이 없다. 공부를 해서 실력을 올려야 점수가 오르는데 아이들은 이 소중한 시간을 불확실한 예측을 하며 보내고 있다. 앞에서도 여러 번 확인했지만 다시 한번 상기하면 인간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시장은 고객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그리고 매년 새로 올라오는 고3들은 이 '미끼'를 문다. 


  솔루션은 계획대로 끝까지 우직하게 공부를 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자꾸만 딴생각이 든다. 사교육 시장은 '막판 역전 특강' '파이널 특강' 등의 수업으로 학생들이 차분하게 공부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여기서 중심을 잡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럴 때 주변의 어른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수능을 준비하는 자녀나 조카가 있으면 얘기를 한 번 해보자. 만약 이런저런 생각들로 공부에 제대로 집중하고 있지 못하면 이렇게 얘기해보자. 


「해 오던 대로 마지막까지 하는 게 가장 좋은 거야. 괜히 마지막에 와서 이것저것 건드리면 오히려 안 좋다.」


  물론 마지막 정리를 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이는 평소에 하던 공부를 하고 +a로 해야 하는 것이다. 기존에 해오던 공부를 갑자기 다 멈추고 막판 역전을 노리기 위해서 특별한 수업으로 시간표를 채운다면 결과는 긍정적일 수 없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평소처럼 꾸준히 하는 것에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정리하면,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당장 내일 본인의 감정이 어떨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런데도 어떤 문제가 시험에 나올까? 어떻게 하면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을까?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험에 나올 것만 공부한다고? 물론 시험에 잘 나오는 파트는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파트가 시험에 잘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파트를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다시 그 파트에서 어떤 문제가 나올지 예상문제를 갈구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런 아이들이 너무 많다. 1년 남짓한 수험생 기간 동안 우직하게 공부하는 학생은 별로 없다. 다들 어떻게 하면 기막힌 방법으로 점수를 올릴까 고민하고 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공부를 하고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을까? 만약 아이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면 주변의 어른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 평소 하던 대로 마지막까지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얘기해주자. 이를 통해 아이들은 마음을 가라 앉히고 마지막 정리를 하는 정신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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