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석철 Jul 14. 2016

46 대한민국 사교육 이야기(2)

사교육 활용 방안

  고2 성현이는 영어를 포기했다. 그래서 국어 수학 탐구만 공부한다. 아직 고3도 아닌데 영어를 포기하는 게 맞나 싶어서 아이를 불러서 얘기를 해 보았다. 수능 영어가 어렵지 않게 출제되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는 말이 없었다. 수학과 국어가 3~4등급 정도 나오는 걸로 봐서 학업 능력에는 문제가 없는 걸로 판단되었다. 고1 영어 지문을 펼쳐놓고 읽어보면서 모르는 단어에 밑줄을 쳐보라고 했다. 확인을 해보니 다음과 같은 단어에 밑줄이 쳐 있는 게 아닌가?


like, romantic, guy, vacation, container, empty, dollar,  father,...


  이 정도면 영어를 잘 한다 못 한다의 수준이 아니라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영어 지문을 보자 아이가 급격히 얼굴이 달아오르고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는 듯했다. 일단 아이를 돌려보내고 성현이를 오랫동안 가르쳤던 수학선생님과 얘기를 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성현이는 영어 유치원을 나왔단다. 그런데 왜 이런 기본적인 단어도 모르는 것일까?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니 아이가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 못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부모님 두 분은 다 공부를 잘했고 동생들도 다 공부를 잘하는데 성현이만 예외였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못한다고 비교를 당하면서 주늑이 들어서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영어를 피하게 되고 결국 영어 울렁증까지 생긴 것은 아닐까? 학부모와 상담을 해 보면 영어에 대해서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지금까지 투자한 게 얼만데 1등급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2등급은 나와야지. 참 내 3등급이 뭐야?」


  그동안 들인 교육비에,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했는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할 수도 있다. 흥분하면서 아이에게 배신감까지 느껴진다고 말하는 부모를 만나본 적도 있다. 그러나 이게 아이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다. 아이가 먼저 영어 유치원에 보내 달라고 한 적이 없다. 원어민과 공부하는 비싼 학원에 보내달라고 말한 적도 없다. 부모가 결정하고 부모가 일방적으로 보낸 것이다. 그런데 1등급을 못 받은 아이들은 투자 대비 효율이 떨어진다며 졸지에 죄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동안 영어 때문에 받았던 비난, 고통, 죄의식 등이 무의식에서 성현이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만 보면 땀이 나고 얼굴이 닳아 오르고 손을 떠는 영어 울렁증이 생긴 것이다.


  적어도 이런 결과는 피하려면 사교육을 이용하면서 아이에게 '투자 대비 결과'를  요구하지 말자. 그러면 아이들은 부담스러워해서 학업 의욕이 더 떨어지게 된다. 원희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학원에 갔다가 오면 엄마와 안방에서 그날 배운 것을 복습했다. 아이 공부에 대한 엄마의 열정이 안방을 공부방으로 만들어버렸다. 엄마는 아이가 잘 못하거나 틀려도 그 자리에서 바로 지적하는 것은 피했다. 엄마 생각에 시간이 지나면 잘못 알고 있는 것들 중 대부분을 스스로 깨닫고 고치게 된다는 것이다. 원희 엄마는 학원에서 배운 것을 연습하면서 본인의 것으로 만드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학원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전략적'으로 학원을 이용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어디든 다양한 종류의 사교육이 있으니 이를 잘 활용하면서 아이에게 교육을 시킬 수 있다. 후에 원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했다.


사교육 일번지 대치동 사거리에는 수 백개의 학원들이 밀집해있다.


  원희 엄마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학원에 가면 공부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가 학원에 오면 공부를 어떻게 할까? 먼저 수업을 듣는다. 보통 한 반에 6~8명 정도가 있고, 많게는 15~20명 정도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재수생들 같은 경우는 40명이 넘어가기도 한다. 학원에 있는 시간의 절반은 수업을 듣고 절반은 테스트, 자습 및 첨삭이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학원에는 내 아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업시간에 딴생각을 하는 아이들도 많다. 한 명의 선생님이 다수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환경에서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자습시간에는 그림을 그리고 테스트 시간에는 어렵다, 모르겠다, 이해가 안 간다며 그저 그렇게 있다가 10시가 되면 학원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집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다. 그러니 학원이 아이 공부의 모든 것을 다 해준다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어느 정도는 공부를 시키려고 노력하지만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 학습하는 자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경우에 한 반에 되도록 적은 수의 학생이 들어가는 학원을 선택해야 그나마 더 나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1:1 과외는 어떨까? 일단 1:1 과외를 하면 아이가 들러리를 서는 경우는 없어진다. 사실 교육의 출발은 왕의 아들 세자를 당대 최고의 학자가 가르치는 것이었다. 평민들은 농사짓느라 바빠서 공부를 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니 교육의 기원은 1:1 과외, 요즘 말로 사교육이 되는 셈이다. 어쨌든 보통 과외는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공부를 하니 일주일에 총 네 시간 정도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외를 할 때 더 중요한 것은 과외를 하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이다. 구체적으로 공부한 내용에 대한 예습과 복습이 이루어져야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아이가 공부에 정말 관심이 없고 부모도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건 바라지도 않고 그저 공부를 포기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과외 선생님의 선택이 비교적 자유롭다. 아이와 코드가 맞는 대학생이나 젊은 선생님도 괜찮다. 이런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과목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선생님을 좋아하면 그 과목도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학창 시절에 어떤 선생님을 좋아해서 그 선생님이 가르치는 과목을 더 열심히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시기에 있는 아이는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선생님을 추천하고 싶다. 어느 분야건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데 대학생이나 젊은 선생님은 시행착오를 하는 중인 경우가 많다. 중요한 시기에 있는 내 아이에게 시행착오를 겪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팀 수업이라는 것도 있다. 실력이 비슷한 아이들 3~4명을 모아서 한 선생님에게 맡기는 것이다. 상위권 아이들이 모인 팀 수업은 별 문제가 없다. 상위권 아이들은 몸이 아프거나 집안에 일이 있거나 해와야 할 것은 어떻게 해서든 해온다. 심지어 몸에 탈이 나서 병원에 입원한 아이가 빠진 진도를 공부해와서 다음 수업에 들어왔을 때 전혀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중위권 아이들이 모인 팀 수업은 해보면 늘 1~2명씩 들러리가 발생한다. 숙제를 해오는 학생과 안 해오는 학생으로 나눠지기 때문이다. 몸이 아파서, 수행 평가 때문에, 가족 여행을 가고... 늘 어쩔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니 자기 관리가 안 되는 학생은 팀 수업이나 학원이나 조연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렇다고 항상 1:1 과외만 할 수는 없다. 아이에게 맞는 과외 선생님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면 서로 자극이 되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동료효과라고 하는데, 이 시기의 아이들은 동료효과가 학습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아이가 팀 수업(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을 복습하거나 숙제를 할 시간을 반드시 정해 놓아야 한다. 월화수목금토일 수업으로 꽉 차있는 경우는 아이가 배운 것을 소화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배울 내용을 준비하고, 숙제를 하고, 배운 내용을 복습할 시간을 가져야만 그 수업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정리하면, 대한민국은 사교육의 천국(?)이다. 현실적으로 사교육을 이용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이 이렇게 비싼 사교육을 시켜주니 빨리 1등을 해서 엄마에게 기쁨을 가져오라는 식의 마음은 곤란하다. 그러면 아이가 부담을 느껴서 오히려 학습 효율이 떨어진다. 사교육의 효과를 더 보려면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아이가 에습/복습할 시간을 마련해주면 좋다. 월수금에 학원에 가면 화목토는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안 그러면 아이가 들러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교육에 보낸다고 해서 공부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교육에서 아이를 100% 책임져주지 못한다. 결국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고 사교육은 도움을 주는 것이다. 학생과 부모님도 이런 사교육을 본인의 상황에 맞게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45 대한민국 사교육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