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성적과 문법의 상관관계
민서 엄마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한번 성적표를 보았다. 잘못 본 건 아닌지 여러 번 확인했다. 설마설마했지만 드디어 영어 성적 앞자리 숫자가 8로 내려앉았다.
중2 때까지는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앞자리가 9를 유지했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중3 첫 시험부터 80점대 영어 성적을 민서 엄마는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영어 유치원에, 초등학교는 지역에서 가장 잘 가르친다는(=비싼) 어학원을 보내고, 방학마다 외국에 어학연수를 보낸 걸 생각하면 아이에게 배신감까지 든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민서 엄마는 마음에 병이 생겨서 아이가 집에 들어오면 집 밖을 나가게 되었다. 아이 얼굴만 보면 명치끝에 뭐가 걸린 것 같아서 숨을 쉴 수가 없단다.
민서 엄마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영어교육은 학교에 따라서 그 '룰'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영어는 언어로서 배운다. 즐겁게 듣고 말하면 영어 교육과정을 잘 따라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배우는 교과서를 봐도 단어나 문장이 별로 없고 그림과 노래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영어를 접는(?) 학생은 거의 없다.
그러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영어를 시험을 위해서 공부해야 한다. 문장을 얼마나 정확하게 읽고 이해하고 쓸 수 있는지로 평가한다. 이후 성인이 되면 영어를 언어(말하기)와 시험(토익) 둘 다 준비해야 한다.
그러니 초등학교 때 배운 영어가 중고등학교 때 도움이 안 된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다만 당장 아이의 영어 실력이 점수로 환원되지 않으니 속상할 수는 있다.
중고등학교 영어 시험에서 가장 중요하게 묻는 것은 언어의 규칙, 즉 '문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이다. 아무리 많이 말하고 써도 규칙에 맞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중학교에서 요구하는 어휘력과 독해력은 아주 기본적인 수준이다. 고득점 객관식 서술형 문제가 문법 지식을 묻는 형태다. 여기에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어휘력과 독해력도 받쳐줘야 한다.
민서처럼 영어는 잘 하지만 시험은 못 보는 억울한(?) 경우가 우리나라에 부지기수다. 해결책은 부족한 문법 지식을 채워 넣는 것뿐이다. 하지만 문법은 딱딱하고 재미가 없기 때문에 잘못 배우면 독이 된다.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이해할 수 없는 문법 필기로 가득 찬 칠판을 떠올려보자... 이렇게 옛날 식으로 가르치는 곳에서 배우면 아이가 영문법 장애(?)를 가질 확률이 높다. 그곳에서는 소수의 모범생만 살아남는다.
따라서 문법의 첫 단추는 될수록 흥미 위주로 가르치는 곳에서 배웠으면 좋겠다. 어차피 영문법은 한 번에 절대로 터득할 수 없다. 직간접적인 경험상 영문법 체계를 잡는데 1년은 걸린다.
1년이나 걸린다고?!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한국어 원어민으로 우리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지만 한국어 문법을 잡는데도 6개월은 걸린다. 하물며 영어는 낯선 외국어다.
가장 실패할 확률이 높은 케이스가 기초도 의지도 없는 학생을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는 곳에 보내는 것이다. 어차피 여러 번 회독해야 한다면 처음에는 부담스럽지 않은 곳에서 기본을 연습하고, 이후 어느 정도 문법 실력이 쌓였을 때 소위 빡센 학원에 아이를 보내면, 문법을 정복할 확률이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