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정말 좋아한다. 책에 나오는 노래인 'Dear heart'는 내 플레이리스트에 남아 언제든 책을 떠올릴 수 있는 무언가로 남아있다. 책의 다른 제목인 상실의 시대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상실을 겪은 주인공이 글이 진행됨에 따라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게 참 좋았다.
내가 읽은 '해변의 카프카'도 같은 결의 책이었다. 소년인 다무라 카프카가 집을 나와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와, 불명의 이유로 글을 읽을 수 없게 된 나카타가 고양이를 찾던 중 조니 워커를 죽이고 자신의 사명을 위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가 교차한다. 줄거리를 설명하기에는 한번 본 정도로는 첫 문장도 떼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고 난해하다.
책의 내용에서는 공감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정도로 메타포가 가득했다. 하루키도 이를 원한 듯했다. 책 중간중간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메타포다'는 식의 문장이 반복되었다. 들쭉날쭉한 전개와 메타포로 점철된 책에서 줄거리를 파악하고 교훈을 얻어 가는 건 독자의 몫이었다. 내가 선호하지 않는 '불친절한 류의 책'이지만 이 책은 느낌이 달랐다.
하루키 글의 장점은 문장에 있다. 글의 내용을 따라가지 못한 내가 포기하지 않고 완독 할 수 있었던 건 그의 문장이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책에는 인물의 취향을 묘사하는 부분이 많다. 호시노 청년이 베토벤의 가곡에 빠져드는 과정이라던가, 오시마가 같이 차를 타고 가던 카프카에게 자신의 음악 취향을 설명하는 문장이 그랬다. 이는 클래식에 문외한인 내가 책에 나온 노래들을 들어보게 만들 정도의 흡입력이 있었다. 대단한 일이다. 책에 있는 가상의 인물이 실존하는 독자에게 특정한 행동을 취하게 한다는 건 작가로서 엄청난 업적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취향을 알게 된 나는 애착이 생긴다. 인물들의 말과 행동에 몰입하고, 설득된다.
언젠가부터 책의 내용이 아닌 등장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날 견인하고 있었다. 감탄했다. 나도 글을 쓰는 걸 좋아하기에 그의 묘사와 전개는 경악스러울 정도로 좋았다. 닮고 싶은 어떤 것이었다.
한 권의 책을 마친 후에는 어떤 분야로든 한 단계 발전된 상태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에서 나는 아무것도 얻어가지 못했다. 중심 내용에서 튕겨져 나가 인물들의 묘사에만 겨우 몰두할 뿐이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루키의 책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제에서 벗어난 독자에게도 통통 튀는 문장으로 즐길거리를 준다. 책에서 오픈 월드 게임을 경험한 것만 같았다.
책의 내용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아 재밌었지 그 책.' 하는 느낌만 남았을 때 다시 도전해보려 한다. 그때의 나는 책의 주제에도 한 발짝 가까이 가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