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 그을린 사랑> 후기

by 홍준오

유럽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정원님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녀는 나보다 더 깊고 다양한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취미 겸 습작을 내는 나와는 달랐다. 덕분에 글을 쓰며 하던 생각들을 꾸밈없이 털어놓을 수 있었다. 난 공감과 연민을 사치쯤으로 여기는 사회에 불만이 많았다. 많은 시간을 요하는 대화와 포용이 아닌 즉각적인 답을 뱉어내는 힘과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이 기형적이라고 느꼈다.


내 말을 잠자코 듣던 그녀는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프고, 날카로워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을 진실이 있다. 누군가는 잔인한 진실에 끝까지 다가가려 한다. 어떤 고통이 뒤따를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살기 위해 필수적으로 파헤쳐야할 것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그저 나아갈 뿐이다. 그러나 이를 원하지 않는 누군가도 있다. 유쾌하지 않은 진실은 묻어 버린 채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싶은 이들이 있다. 그들 중 몇은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을 헐뜯는다. 제압하고, 굴복시킨다. 그들이 도착지에 다다르지 못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방해한다.


정원님은 이야기를 마친 뒤 이런 딜레마가 '화염'이라는 책에 담겨 있으며 한국에 가서 읽어볼 것을 제안했다. 이 작품을 통해 내가 하는 고민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과연 그녀의 말이 맞았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깊은 가르침이 있는 책이었다. 이야기는 쌍둥이 잔느와 시몽의 엄마인 나왈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나왈은 언젠가부터 침묵을 시작해 죽을 때까지도 그녀의 자식에게 한 마디의 말이 없었다.


그러나 유서에서는 달랐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녀의 아빠와 존재조차 몰랐던 오빠를 찾아가 편지를 전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두 쌍둥이의 반응은 양분됐다. 잔느는 진실을 찾기 위해 아빠를 찾는 여정을 준비한다. 이에 반해 시몽은 애정 표현 한 마디 없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만을 쏟아낸다. 그런 사람이 말하는 진실은 알고 싶지도 않다며 잔느를 만류한다.


결말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겠다. 최근 내가 읽었던 책 중 가장 깊고 긴 여운을 주었기에 혹시라도 책을 읽는 사람들의 감동을 깨고 싶지 않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엔 잔느보단 시몽의 수가 월등히 많다. 사람들은 일목요연한 여러 표와 도식에 환호한다. 이 막대기와 숫자들은 선지자가 되어 사회를 이끈다. 윤리와 행복, 철학은 도외시되어 구시대의 고물이 되어간다. 그러나 이러한 무형의 가치는 책에서 다뤄지는 진실과 같다. 쓸모없는, 단지 잔소리처럼 느껴지는 무언가가 아니다. 찾는 과정에 여러 고난이 수반되지만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가치다. 수많은 시몽은 진실을 찾으려는 잔느를 힐난하고 조롱한다. 그러나 잔느는 진실을 향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그 가치에 도달하면 수많은 시몽도 감화될 것이다.


결론은 옳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어렵게 말했지만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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