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은 기회가 있으면 꼭 보는 편이다. 황홀한 그림체와 동화 같은 이야기,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까지, 영화 전체의 심오한 이야기보다 장면 하나하나의 미학이 더 와닿는 나에게는 최고의 영화들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많이 달랐다. 여느 스튜디오 지브리 영화와는 다르게 직관적이고 강한 감동의 장면이 없었다. 스튜디오 지브리 감성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꽤 당혹스러운 통보였다.
흔히 우리에게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명작'을 볼 때는 영화 시작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둔다. 장면 하나하나가 내포하고 있는 비유와 복선이 무얼까 맞추기 위해 온 집중을 다 하는 것이다(물론 그래도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엥스러워서 해석 영상의 힘을 빌리곤 한다).
그러나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은 영화를 잘 모르는 나의 입맛에 맞는 '친절한' 영화였기에 더 배신감이 컸다. 영화를 보기 전 후기나 예고편을 보지 않는 나에게는 더 당황스러운 결과였다.
1. 심오한 장면에 대한 불쾌감
이 영화의 여러 장면들은 갖가지 비유들로 끈적하게 색칠되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영화의 장면만 즐기다가는 몰아치는 비유의 파도를 피하지 못한다. 영알못인 나에게는 참 무서운 일이다. 길을 잃은 나는 영화가 끝난 뒤 평론가들의 글이나 영화 유튜버들의 힘을 빌려 겨우 결말에 다다른다. 꽤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평론가들이 '같은 영화를 봤음에도 네 좁은 시야로 인해 영화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구나!' 하면서 비웃는 것만 같달까.
2. 지브리 감성
이 작품에서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있다면 동화 같은 지브리의 감성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 불이 난 어머니의 병원으로 뛰어가는 장면에서 주인공을 포함한 주인공 시야의 주변 인물들이 잔상처럼 지나가는 창의적인 연출은 '아 지브리 감성 참 오랜만이다'하는 반가움을 느끼게 해 줬다. 또한 이야기의 세력 중 하나인 독수리들을 연출만으로 무섭게 느껴지게 한 것도 참 신기했다. 잔인한 장면은 일체 나오지 않았으나 독수리들이 나올 때마다 전체 이용가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잔혹하게 느껴졌다.
3.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물론 이 영화처럼 소위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필요함을 나도 안다. 내가 바라는 것처럼 쉬운 영화만 나온다면 영화계는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명작'들만 즐비한 영화계 또한 고고한 평론가들의 놀이터로만 남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제작자의 의도에 나 같은 영알못도 공감할 수 있게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약간 구부려준 것들이다. 언젠가는 나도 명작 영화들과 눈을 나란히 맞추고 싶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식의 해석을 막 늘어놓으며 친구들에게 맘껏 내 영화 실력을 뽐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