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크로와상을 좋아한다. 달콤한 겉면의 빵의 감촉과 한입 물었을 때 바삭거리는 소리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좋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빵의 결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버터의 향은 나를 중독시킨다. 또한 버터향이 입안에서 코팅이 되어있을 즈음 비집고 들어가는 커피와의 조화는 그 시간 속에 모든 것이 정지되어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빵의 맛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내가 유독 크로와상을 좋아하는 일등공신은 역시 버터이다. 나의 버터 사랑은 빵에 국한되지 않는다. 입맛 없을 때 따뜻한 밥 사이에 버터를 뚝 잘라 넣고 계란과 간장만으로도 근사한 한 끼가 되고, 통밀 식빵을 거의 버터에 뛰기다 싶게 구워내면 크로와상의 대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주로 국내산 버터를 애용하지만 가끔 버터의 세계 속의 탐닉을 바랄 때는 무엇보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프리차드 버터를 찾는다. 70년간 노르망디 지역에서 생산되는 버터 브랜드로 염도가 낮은 것이 특징이라 출출할 때 빵에 버터만 발라먹어도 부담이 되지 않는다.
'버터 타워'의 진실
하지만 나에게 작은 행복을 안겨주는 이 노르망디 버터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25년째 경향신문 기자로 활동 중인 박경은의 <성스러운 한 끼>에 나오는 버터의 흑역사는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는 모네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루앙 대성당'의 관한 이야기이다. 보바리 부인의 배경으로도 유명한 이 성당은 그 시대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가톨릭 교회가 프랑스인들이 주식으로 먹었던 버터를 일반 서민들에게는 금지하고, 일부 부자들에게만 그 섭취권을 판매하여 거둬들인 많은 수익금으로 만든 성당이다.
15~16세기 유럽에서 버터는 아주 인기 있는 식품이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 교회가 지배하던 당시 사람들은 자유롭게 버터를 먹을 수 없었다. 교회는 사람들이 버터 먹는 것을 제한했다. 사순절이나 금식일에 동물성 지방을 섭취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고기는 물론이고 버터, 치즈, 우유와 같은 유제품이나 달걀도 먹을 수 없었다. (중략) 금식 기간에 정해진 규정을 어길 경우 가난한 신자는 무거운 벌금을 내거나 채찍을 맞았고 투옥되는 일까지 있었다. 하지만 부자는 특혜를 누렸다. 바로 돈을 주고 버터를 섭취할 수 있는 권리는 산 것이다.
이로 인해 루앙 대성당은 '버터 타워'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고, 음식사가인 일레인 코스로바는 이를 '영적 착취 시대의 기념물'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성스러운 한 끼>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는 우리가 즐겨먹는 버터와 두부 커피, 계란, 국수 등에 대한 역사를 종교와 짝을 이루어 소개한다. 작가는 음식 담당 기자를 희망했지만, 음식을 독립적 영역으로 인정받지 못하여 문화부 종교담당기자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식과 종교를 엮어 책을 썼다고 한다.
악마의 음료에게 세례를
크로와 상와 가장 잘 어울리는 커피에 대한 역사도 흥미롭다. '카푸치노'나 '마키아토'라는 커피 용어가 이탈리어에 유래한 것은 16세기까지는 이슬람 문화를 대표하던 음료인 커피가 오스만튀르크왕국와 활발한 무역을 한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들 의해 유럽으로 전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 유럽에서는 맥주와 포도주의 양조장을 독점한 기득권 세력들이 있었다. 하지만 커피가 유럽에 전파되어 예술인들 사이에 유행하게 되자,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당할 것을 염려한 그들이 교황에게 커피를 '사탄의 음료'라고 금지할 것을 청원한다.
하지만 커피에 맛에 반한 교황은 "우리가 그것에 세례를 주어 진정한 기독교도의 음료로 만들어 악마를 놀려주자"라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교황의 이러한 지지가 유럽의 커피 문화가 발달한 계기가 된 것이다. 만일 교황이 커피를 '사탄의 음료'로 금지했다면 유럽의 카페에서 탄생한 경이롭고 아름다움 예술작품들은 그 싹을 틔우지도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기득권과의 싸움에서 당당하게 이겨낸 커피에게 존경심마저 들게 한다.
금기가 낳은 걸작 '덴푸라'
금기는 의외의 결과물을 낳는다. 음식의 역사와 유래를 살펴보면 종교적 금기가 낳았던 결과물이 꽤 많다. 일본을 대표하는 요리인 덴푸라가 역시 그렇다.
포르투갈 선교사가 일본의 가톨릭을 전하던 16세기, 사순절 고기를 금하는 그들의 전통으로 인해 고기 대신 생선을 튀겨먹는 전통이 같이 전해진다. 이것이 일본식 덴푸라의 탄생이다. 덴푸라라는 용어도 가톨릭 종교 용어에서 나온 것으로 '구아토로 덴푸라시'에서 따온 것이다.
덴푸라의 소개글의 소제목은 ' 레이스 튀김옷이 아스라한 순수한 맛의 제국'이다. 이처럼 일본에서의 덴푸라는 포르투갈의 요리법을 능가할 만큼 발전하게 되고, 지은이는 롤방바르트의 덴푸라 예찬론과 함께 일본의 유명한 덴푸라 집을 소개하면서 '새우, 파프리카, 가지, 양파 등을 튀겨낸 덴푸라는 흔히 생각하는 튀김이 아니었다'라고 덴푸라의 신비한 경험을 얘기한다. 음식의 금기가 낳은 필요에 의한 간절함이 어떤 감탄을 낳는지를 덴푸라의 생생한 표현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두부의 고단한 세월
다이어트의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남편은 요즈음 두부로 연명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탄수화물보다는 단백질의 섭취를 늘려야 한다는 분위기의 승선하여 저녁은 두부 샐러드, 양념간장을 곁들인 생두부만으로 식사들 대신한 덕분에 어느덧 불룩해진 배는 그 소임을 다한 듯 제법 풀이 죽어있다고 만족해한다.
이제는 서민음식의 대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두부는 월등한 단백질 대용식으로 출소한 사람들에게도 가장 먼저 입에 넣어주는 재료이다. 그러나 두부에도 불교라는 종교 안에서 고단한 세월이 있었다.
불교가 국교인 고려시대에 두부는 사찰에서 부처님께 공양하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 이유로 사찰에서 주로 두부를 만들었다. 당시 사찰은 많은 토지를 소유했고, 부가 집중해 있었기에 음식문화를 선도할 수 있었다. 자연히 두부 제조법도 사찰을 중심을 발전했다. (중략) 콩을 구해 두부 룰 만드는 과정은 보통 번거로운 일 아니었다. 오죽하면 '전생에 지은 죄가 커서 금생에 두부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왔을까.
이러한 스님들의 수행과 함께 '눈물과 땀을 바탕으로' 탄생한 두부 설화의 이야기는 먹거리가 넘쳐나고, 무엇이든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그 안에 수많은 역사를 품고 있는 음식에 대해 대한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해 준다
금기의 역사의 살아낸 음식들
종교가 기득권인 시대에는 절제라는 명목 하에 기본적 욕구와 '약한 본능'을 억제시켜 그들의 권력유지로 사용된 역사가 많음을 알게 되었다. 앞서 소개한 '버터 타워'나 토마토의 금기, 우리나라에서는 군대에세 특정종교의 전도을 위해 주말에 군대네의 종교행사에 참석하는 장병들에게 나눠준 '초코파이 전도'사건도 있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생활의 척박함과 종교적 전통아래 일상적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의 '약한 본능'이 얼마나 나약함을 보여주는지 책은 음식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렇다하더라도 금기는 인간의 욕망을 막을수 없다. 고기를 금기시한 사찰에서는 자연그대로의 식재료로 훌륭한 사찰음식을 탄생시켰고, 술을 금기시한 서아시아 모슬렘들 사이에서는 달콤한 디저트인 '바클라바'가 발달하였다. '빵에 누룩을 넣느냐, 마느냐의'의 문제로 가톨릭와 정교회의 갈등에 의해 오히려 빵의 문화는 더욱 발전되었다.
종교에서 음식은 정신과 마음의 수행이다. 음식으로 욕망의 절제와 인내를 배운다. 그로 인해 탄생한 음식들도 많다. 성욕을 억제하기 위하여 탄생한 콘플레이크, 교황의 절제된 아침식사가 된 에그베네딕트, 스님들의 특별식인 국수, 만수르가 좋아하는 대추야자등 우리가 평소 무심하게 대했던 음식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 시간은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견해에 다른 세계하나를 얹어준다.
금식은 누구에게든 자유롭게 적용되어야 하며 모든 종류의 음식물 역시 누구나 자유롭게 먹을 수 있어여 한다.
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