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생과의 만남
고신국은 차로 세 시간을 걸려서 경성(서울)에 도착했다. 고신국은 지난주에 강원도에서 조명하와 만났을 때, 최 선생이 있는 곳이라며 종이를 한 장을 건네어 받았다.
고신국은 종이를 들고 혼잣말로 말했다. "경성부 종로구 경성 예술원" 그리고 '경성예술원'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 곳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걸어가서 문을 열었다.
웬 남성이 입구에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어떤 일로 오셨는지요?" 고신국은 말했다. "아, 제 이름은 고신국이라고 합니다. 저의 친구가 조명하입니다. 최 선생이라는 분을 만나 뵙기 위해서 강원도에서 왔습니다."
남성은 고신국에게 대답했다. "아, 저희 원장님을 만나러 오셨군요. 지금이 오후 2시이니, 아마도 곧 공연이 끝날 거예요. 여기 의자에 앉으셔서 잠시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났을 때, 공연을 보고 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연주자들과 함께 한 명의 여성이 나오는 것이었다. 고신국은 한 번만 보고서도 그가 최 선생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남성이 최 선생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원장님, 오늘도 공연 진행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아, 그리고 저기 남성분이 선생님을 만나로 강원도에서 찾아오셨다고 하네요."
최 선생이 고신국에게 다가왔다. "혹시, 누구시죠?"
고신국이 대답했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고신국이라고 합니다. 조명하 씨가 제 친구입니다."
최 선생이 말했다. "아, 조사장님. 잘 알죠... 조사장 소개로 오셨다면, 저의 손님이죠."
그렇게 인사를 하고 최 선생은 자신의 사무실로 고신국과 함께 들어갔다.
최 선생이 말했다. "조 사장님이 그렇지 않아도 친구가 경성에 한번 가면 저를 찾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신국이 말했다. "아, 그랬었군요. 아무래도 오랜 시간 죽마고우이다 보니, 저를 도와주려고 했을 겁니다."
최 선생이 말했다. "그럼 한번 말해보세요.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고신국이 대답했다. "제가 관심 있는 연주회와 관련하여 몇 가지 문의하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11월 중순에 진행 예정인 경성 연주홀 음악회가 어떤 목적으로 진행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최 선생이 말했다. "11월 중순이라면,... 제가 몇 달 전에 조 사장님에게 서양 악기가 같이 참여하는 연주회를 소개하면서 연주자와 연주곡 선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었습니다", "실은 저희 경성예술원은 1800년대 조선시대부터 창설이 되었고, 궁궐에서 진행되는 전통음악을 비롯하여 대한제국시대를 지나면서 서양음악을 함께 도입하여 해외에서 공부하고 들어온 연주자들의 서양악기 공연을 많이 소개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신국이 말했다. "경성예술원이 오래된 곳이었군요."
최 선생이 말했다. "네 맞습니다. 아 그리고 11월 중순에 진행되는 공연은 대략 30여 명의 양악 연주자들이 함께 참여하여 진행되는 대규모 연주회입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네요. 거기에는 귀빈으로 지역대표와 일본 고위층 관료들이 많이 오게 될 것입니다."
고신국이 말했다. "원장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그냥 최 선생이라고만 알려져 있어서요."
최 선생이 말했다. "아, 뭐 그게 중요한 건가요? 외국식 이름으로 사라라고 부릅니다. 최사라(Sarah Choi)."
고신국이 말했다. "최사라 원장님, 혹시 11월 중순에 진행되는 연주회의 주최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최 선생이 말했다. "아. 주최요? 일단 이곳에서 제가 원장으로 있게 된 배경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이곳은 한 집안에서 대대로 물려오던 곳인데, 제가 외국에서 음악 공부하던 중에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저보다 나이가 많으셨던 여성분이셨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살던 중에 남편 분이 19세기말에 전쟁에 참여하였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여성분에게는 자녀는 없었고요."
"그런데, 제가 이곳에서 연주를 했던 적이 있었고, 이 여성분과 계속 연락을 하면서 어느 날 제게 예술원을 맡아서 운영해 줄 수 없겠냐고 했어요, 일단 생각은 해 보고 알려드린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 이분이 오랫동안 지병이 있으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남기셨고 거기에 제 이름을 적으셔서 제가 꼭 이곳을 운영했으면 한다는 글과 함께 편지 하나를 남겨 주셨던 것입니다."
[편지 내용] 저의 오랜 친구이며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최사라 선생님, 저는 제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20세에 남편을 만났고 제 나이 30세에 남편을 잃었습니다. 제 남편은 일본의 강압에 이기지 못하고 전쟁에 끌려가서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지금도 일본군이 이 땅에 들어와서 수많은 만행을 저질러서 조선인들을 괴롭히며, 처참히 죽이고 있습니다. 기나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듯합니다.
제가 그동안 운영하던 경성 예술원을 통해 그동안 적은 수입이 생기면 대한제국 의병들을 돕는 데 사용했습니다. 이젠 떠나도 아무런 미련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예술원을 직접 운영하시고 수입이 생기면 국가를 위해 애쓰는 분들을 위해 사용해 주십시오. 아마 이 편지를 읽게 될 때는 저는 이 세상을 떠난 후일 것입니다. 최사라 선생님을 알게 된 것도 저에게 행복하고 기쁜 일이었습니다. - 한영숙 올림 -
고신국은 말했다. "어찌 보면 이 경성예술원도 애국활동을 위해서 유지되었던 것이네요." 최사라가 말했다. "네, 본래 취지는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시국이 워낙 일본인들이 조선에 들어와서 지내기 시작하고 있고, 그들이 좋아하는 서양문물까지 받아들여지면서 이곳도 전통음악에서 서양음악으로 변화를 시작한 것입니다."
고신국이 말했다. "그래서 말씀을 드리는 것인데, 11월 중순 연주회 일정을 보름정도로 연기할 수 없을까요?"
최사라가 말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미 연주회에 대한 일정 공지가 다 된 상황인데요"
고신국이 말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제가 참여하는 조직이 하나 있는데, 그 인원들이 이곳 연주회에 꼭 참석하여 연주회 감상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분들이 다음 주나 되어야 한국에 들어오게 되어서 말이죠. 대신 제가 연주회 일정 연기에 따른 비용은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최사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신국에게 말했다.
"현재 연주회 개최 5일 전에 일정이 변경하는 상황이라, 일정 지연에 대한 비용이 발생될 것입니다. 대신 일반 관객이 구입해야 하는 입장료는 당일 판매가 될 예정이라서 이 부분은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네요. 그러나 대략 30명의 연주자들이 11월 말 일정에 연주 참여가 가능한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그 부분이 가장 걱정이 되며, 비용 지급에 따른 문제가 발생할 것 같습니다. 제가 연주자와 상의를 좀 진행해 볼게요"
고신국이 말했다. "네, 금액은 충분히 지급할 테니, 진행 상황을 하시고 이곳으로 전보를 하나 보내주십시오.! 제가 경기 지역에 연락이 가능한 장소를 하나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최사라와 얘기를 한 후 고신국은 다시 차를 타고 양조 검사소 방향으로 운전했다.
연재소설 '악보제작소(제42화)'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