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아홉 군데 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아홉 군데 서원은 영주 소수서원, 함양 남계서원,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안동 병산서원, 정읍 무성서원, 논산 돈암서원과 함께 장성 필암서원이다. 우리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아 기회가 될 때마다 서원을 찾는다. 지금까지 아홉 군데 서원 중에서 다섯 군데를 가보았다.
서원은 조선시대에 지방 지식인들이 건립한 성리학 교육기관이다. 요즘으로 치면 서원은 사립학교이고, 향교는 국립학교다. 서원은 제향하는 인물의 연고가 있는 곳에 지어졌다. 서원은 자연의 지형과 환경을 잘 살려서 지었기 때문에 서원마다 나름의 운치와 멋을 품고 있다. 요즘은 서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여느 관광지처럼 번잡하지 않아 호젓하게 즐길 수 있는 장점과 매력이 있다.
전국에 서원이 산재해있지만, 기본적인 서원의 공간 배치는 어디나 같다. 서원마다 건물이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지만, 공간 배치는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공간 배치의 구성은 제향을 올리는 제향 공간과 공부와 숙식을 위한 강학 공간 그리고 모임과 휴식을 위한 교류 및 유식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원과 같은 교육기관으로 전국에 많이 있는 향교와의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가장 눈에 띄게 두드러진 차이점은 교류와 유식 공간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보았던 여러 향교에서는 교류와 유식 공간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밖에 향교의 건물들은 거의 같은 형태와 배치로 틀에 박힌 듯이 지어졌지만, 서원은 다양한 건물들이 있어 그만큼 보는 즐거움이 풍성하다. 또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살렸기 때문에 경치가 나름 볼만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보성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보지 못했던 장성 필암서원을 찾았다. 주말을 비낀 월요일이라 서원은 한적했다. 주말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필암서원은 오가는 사람 없이 그야말로 침묵의 고요 속에 빠져 있었다.
필암서원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학문과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현종 3년, 왕이 ‘필암서원(筆巖書院)’이라는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필암서원은 역사에 나오는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졌을 때, 전남지역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서원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필암서원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쏟아지는 한낮의 눈 부신 햇살을 고스란히 맞으면 걸었다. 밝고 따사로운 햇살이 필암서원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높여주었다. 필암서원 주변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뚝 끊겨 있어 마치 조선시대 어디쯤에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설정이라도 좋으니까 갓 쓰고 한복 입은 사람들을 서원 앞에서 오가게 하면 영락없이 조선시대에 와있는 것으로 착각할 것 같았다.
필암서원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확연루이다. 확연루는 서원으로 들어가는 문루 역할과 함께 교류와 유식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군자의 학문은 모든 것을 공정하게 대하는 마음을 배우는 것이라는 뜻의 확연루는 서원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렇듯 서원 입구에 규모 있는 건물을 배치한 이유가 무언지 궁금했다.
큰 건물은 보는 이들에게 권위와 위엄을 느끼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랬을까? 아니면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서원을 보호하는 차원의 역할을 하는 걸까? 정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문화유산을 보면서 이렇게 호기심을 갖고 혼자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는 게 여행자의 권리이자 또 다른 재미이다.
확연루에서 이층 여닫이문을 열어젖히면 그 옛날에는 풍요로운 들판이 드넓게 펼쳐졌을 것이다. 풍요롭고 한가로운 경치는 공부하는 유생들의 머리를 식혀주고 또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을 것이다. 확연루를 지나면 청절당이 앞을 가로막는다. 청절당은 강당으로 강학 공간의 핵심 건물이다.
유생들이 앉아서 공부하던 널찍한 마룻바닥을 보면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저절로 떠오른다. 산(山)자 모양의 정자관을 쓰고,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선생이 무심한 듯한 눈으로 공부하는 유생들을 바라본다. 한편 유생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좌우로 흔들면서 열심히 책을 읽는다.
상상 속의 유생들 책 읽는 소리는 진즉에 멈추었다. 오랫동안 책 읽는 소리에 시달렸던 대청마루는 이제 그에 대한 보상으로 침묵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잠시 쉬어갈 겸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지난 세월의 두껍고 서늘한 기운이 엉덩이를 타고 기분 좋게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필암서원의 고요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몸과 마음이 심연으로 가라앉듯이 편안해졌다. 여행의 진정한 참맛이 느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만히 보니까 청절당의 방향이 조금 낯설다. 그동안 보았던 서원의 강당은 대부분 배향 공간을 등지고 있었는데. 청절당은 그 반대로 배향 공간인 우동사를 향하고 있다. 청절당뿐만 아니라 기숙 공간인 진덕재와 숭의재도 사당을 바라보고 있다. 알고 보니까 이런 배치는 선현에 대한 예의를 표하기 위한 독특한 형식이라고 한다. 필암서원을 지을 당시의 사람들이 선현에 대한 존경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원의 뒤편 북쪽에는 여느 사원과 마찬가지로 제향 공간인 우동사가 자리 잡고 있다. 필암서원 우동사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소중한 경험을 했다. 여느 사원들은 제향 공간에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내삼문을 굳게 닫아 놓는다. 성스럽고 경건한 장소라 아무나 드나들지 못하게 닫아 놓는 게 이해되지만, 한편으로는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까 제향 공간의 사당은 내삼문 문틈으로 훔쳐보듯이 엿볼 수밖에 없었다. 필암서원도 우동사로 들어가는 내삼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도 역시 마찬가지구나 하면서 별생각 없이 돌담을 끼고 돌자 우동사로 들어가는 작은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 문을 보면서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다른 곳에서도 사당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이 있었나?
있는 곳도 있었는데 내가 보지 못한 건지 아니면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동사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같은 건물이라도 가까이에서 보는 것과 문틈으로 훔쳐보듯이 볼 때와는 보는 맛과 느낌이 분명 다르다. 사실 그게 엄청난 차이는 아니지만.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공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그 차체가 특별한 느낌이고 여행의 이야깃거리이다.
필암서원은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다.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서원에 머물다 보면 현재의 시간 속에 있는 건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있는 건지 잠시 즐거운 착각을 하게 된다. 이건 우리의 문화유산을 찾았을 때의 여러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치이고, 점점 나이를 먹어가다 보면 상상의 날개를 펼칠 기회가 별로 없다. 발등의 떨어진 일들에 쫓겨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즐거운 착각이 들 정도였다면 필암서원에서 보낸 시간이 좋았다는 걸 말해준다.
필암서원은 화려하게 단청을 입은 건물과 흘러간 세월에 휩쓸려 잔뜩 빛바랜 건물,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과 초록의 나무숲에 쌓여 있다. 선현들의 문화유산과 자연이 어우러진 필암서원은 그저 정신없이 바쁘게만 돌아가는 세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외면하고 있다. 번잡한 도시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게 왠지 두렵고 싫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