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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by 레드산


경기도 남양주시에 광릉(光陵)이 있다. 광릉은 조선의 7대 왕 세조와 세조 비 정희왕후의 능이다. 광릉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국립 수목원이 있다. 국립 수목원에 갈 때마다 광릉을 가보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가보질 못했다.


5월의 나무들은 연둣빛 어린잎에서 하루 다르게 짙은 녹색으로 변해간다. 마치 어린아이가 청소년기에 들어서는 것처럼 농익은 녹색이 아니라, 녹색 본연의 자리를 찾아간다. 유난히 이 계절의 자연이 좋다. 그렇기에 이 계절에는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어디든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봉선사에 가려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다가 퍼뜩 광릉 생각이 났다. 봉선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이참에 밀린 숙제를 해치우자는 생각으로 광릉을 찾았다.

솔직히 예전엔 광릉이 조선의 왕릉인지는 알았지만, 어느 왕의 능인지는 몰랐다. 광릉이 세조의 능이란 걸 안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뒤늦게나마 세조의 능이란 걸 알았을 때, 호기심과 함께 여느 왕릉을 생각할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세조에 대한 역사적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선의 역대 왕 중에서 가장 비난의 손가락질을 받는 왕은 누구일까? 왕위에 올랐다가 폭정으로 쫓겨나 군으로 격하된 연산군이나 광해군은 일단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왕자의 난으로 형제간에 피를 뿌리고 왕위에 오른 태종과 어린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아닐까 싶다. 이 두 왕을 놓고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세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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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역사는 엄중하고 또 무섭다. 세조도 왕위 찬탈이 후세에 어떤 평가를 받을 건지 모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왕위에 대한 욕망과 욕심을 뿌리치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혹 그렇게 왕위를 빼앗더라도 왕위에 올라 선정을 베풀면 역사가 잘못을 덮어주지 않을까? 하는 자기 합리화를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세조는 재위 기간에 나름의 치적을 세웠지만, 왕위를 찬탈했다는 꼬리표는 영원히 떼지 못했다. 떼기는커녕 세조 이야기만 나오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왕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아마 세조도 이렇게 오랫동안 후세에까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줄은 몰랐을 것이다.


광릉 매표소를 지나 하마비가 있는 곳에서부터 홍살문까지 정말 멋진 길이 이어진다. 길은 널찍하고 양옆으로 우거진 나무숲이 있어 시원한 그늘이 가득했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싱그러운 기운이 있어 걷는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조선 왕릉을 여러 군데 가보았지만, 이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길은 없었던 것 같다.


광릉 주변에는 30여만 평의 넓은 숲이 있고, 100년이 넘는 노송들도 많은 곳이라고 하더니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숲에는 잘려 나간 아름드리나무 밑동에 둥지를 틀고 줄기와 가지를 뻗어낸 작은 나무들이 신기하고 재밌게 보였다. 멋지고 아름다운 길에 마음을 빼앗기고 걷다 보면 세조의 능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좋아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불뚝 솟는다. 사실 지금의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오래전 역사의 사건이지만,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그에 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변하지 않아 그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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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길 끝에 홍살문이 있다. 능으로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답고 좋아서 이렇게 빨리 끝나는 게 정말 아쉬웠다. 이런 길이라면 하루 종일 걸어도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광릉은 조선 왕릉 최초의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다. 동원이강릉은 서로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능을 조성한 형식으로 두 능의 중간 지점에 제례를 지내는 정자각이 있다.

정자각에서 바라보면 왼쪽에 세조의 능이 있고, 오른쪽에 정희왕후의 능이 있다. 광릉은 여느 왕릉과 다른 점이 있다. 첫 번째로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가는 참도(參島)가 없다. 참도는 죽은 왕이 다니는 신도와 살아있는 왕이 제례를 위해 다니는 어도가 합쳐진 길이다. 다른 왕릉에는 다 있는 참도가 이곳에는 왜 없는지 궁금했다.


인터넷을 보면 세조는 생전에 불교에 귀의했고, 왕위 찬탈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화려한 능을 원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다. 이와 함께 몇 가지의 이야기가 있지만, 어느 게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또 다른 하나는 능의 봉분 하단을 두르는 병풍석이 없다. 대개의 왕릉은 12지신상을 새긴 병풍석이 봉분 하단을 두르고 있는데 광릉에는 없다. 그 대신에 12지신상을 난간석에 새겨넣었다.


이건 세조가 능을 조성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부역을 줄이라는 유언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나라와 백성을 생각한 거에 대해서는 후한 평가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원죄의 굴레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왕릉은 왕릉마다 세밀한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건물의 종류나 공간 배치는 거의 같다. 그렇다 보니까 왕릉을 둘러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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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은 경치도 경치지만, 여느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왕릉만의 차분함과 조용한 분위기가 있어 좋다. 왕릉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누구보다 굵게 장식한 왕들이 잠들어 있는 신성하고 경건한 공간으로 왕릉만의 분위기와 느낌을 즐길 수 있는 게 매력이다. 정자각 옆에는 나무숲이 울창하다. 한눈에 보아도 수령이 오래되어 보이는 아름드리나무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나무숲은 어스름한 그늘이 가득해서 한낮의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었다.


몇 발짝 떨어져 있는 정자각 주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정자각 주변이 경건한 고요라면, 숲속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품어주는 고요함이다. 숲속에는 군데군데 벤치가 놓여 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앉아 있는 숲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벤치에 앉아 잠시만 지나면 알게 모르게 왕릉의 차분함과 고요 속으로 오롯이 빠져든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밝은 빛이 가득한 왕릉의 모습이 한 걸음 물러나 숲속에서 보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쨍하게 보이던 경치가 나름의 운치를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 좋은 건 역시 나무숲이 주는 청량함과 시원함이었다. 벌써부터 느껴지는 한낮의 더위는 숲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서 부러운 듯 맴돌았다.


왕릉의 경치를 보는 것도 잠시 정신을 놓아본다. 그야말로 멍때리기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몸안에 켜켜이 쌓여있던 피로의 찌꺼기가 저절로 녹아내린다. 그뿐 아니라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던 삶의 거친 파편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간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 모른 채 앉아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책이라도 한 권 가져올 걸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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