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도시락에 관한 추억 이야기를 하려면 밤을 꼬박 새워도 모자란다. 학교 급식을 먹고 자란 세대들은 알지 못하는 지난날의 소중한 추억이다. 도시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도시락밥 밑에 숨겨서 싸주시던 달걀부침이고, 다른 하나는 겨울에 교실 난로에다 도시락을 데워 먹던 추억이다.
70년대 초반은 너나 할 거 없이 살림살이가 팍팍하던 시절이다. 이 땅의 어머니들은 그 어려운 시기를 살아내시면서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달걀부침을 그렇게 숨겨서 싸 주셨다. 그땐 다들 그랬기 때문에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지극한 마음만 밥 밑에 숨겨졌지, 우리들끼리는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요즘이야 흔하디흔한 게 달걀이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흔하게 달걀을 먹지 못했다. 어쩌다 한 번씩 먹는 별미이자 고급 반찬이었다. 어머니가 도시락에 달걀부침을 싸주시던 날은 점심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밥 위에 달걀부침이 있으면 도시락 뚜껑을 열자마자 친구 녀석들이 젓가락을 들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안 뺏기려고 젓가락으로 칼싸움을 하면서 방어 해보지만, 달걀부침은 순식간에 찢어져 서로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친구들과 실랑이하면서도 낄낄대며 맛있게 도시락을 먹었다. 학교가 파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달걀부침을 잘 먹었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대답하지만, 어머니는 다 눈치를 채셨는지 어느 날부터 도시락밥 밑에 달걀부침을 숨겨서 싸 주셨다.
그러시고는 도시락을 건네면서 밥 밑에 달걀부침이 있다고 넌지시 알려주셨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친구들에게 뺏기지 말고 잘 먹으라는 의미와 함께 형제가 많으니까 다 달걀부침을 넣어주지 못해 돌아가면서 싸 주셨기 때문에 몰래 알려주시는 거였다.
처음 몇 번은 친구들한테 들키지 않고 먹었지만, 얼마 안 가 다들 그렇게 싸 오니까 더는 비밀이 될 수 없었다. 체육 시간이 있는 날에는 달걀부침 절도(?)사건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체육 시간이 되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교복은 교실에 그냥 두기 때문에 교실을 지키는 당번이 있었다.
그런데 장난기 많은 당번 녀석은 체육 시간에 친한 친구의 도시락을 뒤져 달걀부침이 있으면 몰래 먹어 치우고 시치미를 뚝 뗐다. 점심시간이 돼서 그제야 달걀부침이 없어진 걸 안 친구가 길길이 날뛰는 걸 보면서 킥킥대며 웃었던 추억이 생생하다.
그때는 겨울이 되면 난방을 하기 위해 교실에 난로를 설치했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난로 위에 차가워진 도시락을 켜켜이 쌓아놓고 데워 먹었다. 이것도 당번이 있어서 수업 시간 중간중간에 당번이 도시락의 위치를 위아래로 자리를 바꾸어 놓았다. 까닥 잘못해서 맨 밑에 그냥 두면 도시락밥이 타버리기 때문이었다.
도시락 반찬이 변변치 않았던 그 시절, 김치는 하루도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었다. 늘 유리병에 김치를 담아 다녔다. 김칫국물이 새서 가방이 젖고 책과 노트가 벌겋게 물드는 일은 심심찮게 있었다. 그 김치를 밥에 깔고 난로에 데워서 밥과 함께 쓱쓱 비벼 먹으면 정말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입에 군침이 돈다.
요즘은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팔고 있어 어쩌다가 한 번씩 사 먹을 때가 있다. 편의점 도시락은 학창 시절의 도시락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지만, 간편한 것 빼고는 예전 그 도시락의 투박한 맛과 느낌을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도시락 이야기를 길게 한 건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엽전 도시락을 먹었기 때문이다.
통인시장의 엽전 도시락은 2011년부터 시작했으니까 꽤 오래되었다. 재래시장을 살리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종로구청과 통인시장 상인회가 협력해서 만든 문화콘텐츠이다. 관광의 즐거움과 함께 재밌는 체험 요소가 합쳐져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진즉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가볼 기회가 없었다.
얼마 전, 여행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종로구를 여행했다. 이때 점심으로 엽전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늘 마음만 있었지, 먹을 기회가 없었던 엽전 도시락이라 듣던 중 반가웠다. 사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엽전 도시락을 먹지 못한다. 자주 혼자 여행을 하지만, 아직도 혼자 먹는 건 여전히 부담스럽다.
통인시장의 엽전 도시락은 도시락을 통해 재밌는 체험을 할 수 있어 사람들이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재밌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어색하고 쑥스러웠는데, 시장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니까 점점 재미가 붙었다. 통인시장은 시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양옆에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엽전 도시락 때문인지 대부분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들이다. 시장에 들어서서 얼마 가지 않으면 오른편에 고객센터 간판이 보인다. 간판이 붙은 건물 2층으로 올라가면 도시락 카페에서 엽전을 판다. 엽전을 얼마만큼 사야 할지 몰라 두리번대다가 벽에 붙은 안내문을 발견했다. 안내문에는 만 원 정도 구매하는 게 좋다고 쓰여 있어 만 원어치를 구매했다. 쓰다 남은 엽전은 환급해 준다는 내용도 있었다.
만 원을 내면 엽전 열 개를 하나로 묶은 꾸러미 두 개와 도시락 트레이를 내준다. 그러니까 엽전 하나가 천 원인 셈이다. 이렇게 엽전과 도시락 트레이를 챙기고 나서부터 먹을거리를 찾기 위한 장보기가 시작된다. 도시락 트레이를 들고 시장으로 내려가 맛있는 걸 찾기 위해 가게를 기웃거렸다. 그러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엽전과 바꾸어 도시락에 담았다.
내는 가격의 가치는 같지만, 현금이나 카드가 아닌 엽전을 주고받는 게 별거 아닌 거 같으면서도 은근히 생소한 재미가 있었다. 도시락 트레이를 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옛날 거지들이 바가지를 들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동냥하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처음에는 쭈뼛쭈뼛했는데, 나름 분위기에 익숙해지니까 재밌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걸 고르려고 열심히 가게를 기웃거리게 된다. 손에 도시락 트레이를 들고 재밌는 표정으로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통인시장만의 독특하고 재밌는 풍경이다. 당연히 내국인이 많지만, 생각보다 외국인이 많아 살짝 놀라웠다. 그들에게는 나름 특별한 경험이자 추억이 될 것이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좋아하는 만두, 잡채, 계란말이 등을 골라 담았다. 그런데도 엽전이 두 개나 남았다.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을 만큼 푸짐하게 담았는데, 8천 원밖에 들지 않았다. 요즘 어지간한 식당에서 만 원으로 먹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그걸 생각하면 재미는 두 번째치고 라도 정말 저렴하다.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담아 저렴하게 먹을 수 있어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다. 가득 채운 도시락을 들고 다시 도시락 카페로 갔다. 도시락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다행히 금방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일부러 점심시간을 피해 왔는데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사람들이 몰릴 때는 자리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 해보는 것인 데다 재미까지 보태져서 그런지 음식이 다 맛있다. 양도 충분해서 배가 불렀다. 저렴하고 맛있고 또 골라 먹는 재미까지 있어 뭐하나 흠잡을 게 없었다. 남은 엽전 두 개는 나오면서 돌려주고 환불받았다. 분명 내가 낸 돈을 돌려받는 것인데도 공짜 돈이 생긴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함께 한 지인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다들 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