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부처와 함께 화암사를 둘러봤다

by 레드산


사람들은 저마다의 감성과 느낌으로 여행지를 기억하고 또 추억한다. 재밌고 즐거웠던 기억이 있는가 하면, 불편하고 불쾌했던 기억도 있다. 때론 특별할 게 없는 밋밋한 기억도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어떤 곳은 그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붙잡아두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소중한 것이란 걸 우리는 깨닫게 된다. 두 번 다시 마주할 수 없는 기억이고 추억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다녀온 고성 화암사는 태어난 지 이제 7개월이 된 손자와 함께했다. 언제나 벙긋벙긋 웃는 손자를 보면 한순간에 마음이 무장 해제된다. 이렇게 귀엽고 예쁜 손자와 함께한 화암사는 특별하게 기억될 수밖에 없다. 손자를 데리고 2박 3일간 속초 여행을 갔다. 말은 여행이지만, 어디서 무엇을 보겠다는 생각이나 계획은 애초부터 없었다. 귀여운 손자와 함께 보내는 그 시간만으로도 여행의 재미와 즐거움은 차고 넘치기 때문이었다.


요즘의 여름 날씨는 한마디로 미쳤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냥 덥기만 한 게 아니라, 습기를 잔뜩 품고 있어 찝찝하고 짜증이 절로 나온다. 예전에는 더워도 습기가 없어 부채질만 해도 시원했고, 그늘에 들어가면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습한 무더위 때문에 이젠 부채가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조만간 부채는 박물관의 전시물로 남을 것 같다.


날씨가 가당치 않으니까 어린 손자를 데리고 밖에 다니는 게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손자는 잠시 짬을 내어 어디를 가도 칭얼대지 않았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적응을 잘했다. 말은 못 하지만, 손자도 집 떠나 여행 온 걸 즐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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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둘째 날은 손자와 함께하는 첫 여행이라 나름대로 의미 있는 곳을 가보고 싶었다. 어디가 좋을까? 될 수 있으면 사람이 많지 않고 시원한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갈 만한 곳을 찾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곳이 고성 “금강산 화암사”였다. 산사는 한적하고 숲에 둘러싸여 있어 괜찮을 것 같았다. 게다가 가보지 않은 곳이라 마음이 끌렸다.


그것 말고도 사찰 이름에 붙은 금강산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산사는 사찰이 안겨 있는 산 이름을 앞에 붙인다. ‘그런데 북한 땅의 금강산이 왜 여기에?’ 화암사 앞에 어떻게 금강산이 붙었는지 그게 궁금했다. 알고 보니 화암사가 금강산 남쪽 줄기에 닿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금강산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멀고 먼 외국도 비행기만 타면 휭하니 가는 세상인데, 코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곳이 금강산이다. 운 좋게 오래전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다. 그 때문에 금강산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고, 또 화암사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화암사에 가기로 마음먹은 뒤로는 구례에 있는 화엄사가 생각났다. 가로획 하나의 차이가 있지만, 이름이 비슷해서 그랬던 모양이다. 가로획 하나가 왼쪽에 붙느냐 오른쪽에 붙느냐에 따라 수백 Km가 떨어진 고성 화암사(禾巖寺)와 구례 화엄사(華嚴寺)가 갈라졌다. 그런데 화암사의 내력을 보면 화엄사라는 이름하고도 무관하지 않다.

고성 화암사는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창건했다. 그 당시 진표율사는 화엄경(華嚴經)을 설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했기 때문에 화엄사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12년 같은 지역에 있는 건봉사의 말사가 되면서 원래대로 화암사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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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의 안내한 대로 도착한 곳은 널찍한 주차장이었다. 평일의 주차장은 한산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화암사로 가기 위해 트렁크에서 손자의 유모차를 내렸다. 그때 주차 관리인이 관리소에서 몸을 내밀어 더 올라가면 다른 주차장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무더운 날 유모차를 밀고 가는 게 힘들 거라는 마음에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알려주었다. 다시 차를 타고 가보니까 다른 주차장까지의 거리가 제법 되어서 주차 관리인의 배려가 참으로 고마웠다.

주차장에서 화암사로 가는 길은 완만한 오르막이었다. 자동차가 비껴갈 수 있을 만큼 널찍한 길을 따라 나무숲이 우거졌다.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 올라간 나무들이 어스름한 그늘을 만들어 놓았다. 오가는 사람이나 차가 없어 사방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산사를 찾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경차와 분위기이다.

마음을 씻는다는 세심교 너머로 화암사 전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찰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은 범종루 옆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올라가야 마주할 수 있었다. 화암사는 묵직한 천년의 세월이 머무는 사찰이지만, 전각들은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말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화암사에 발을 들여놓으면 전각들보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게 있다. 그건 화암사 맞은편 산봉우리에 우뚝 솟은 ‘수바위’이다. 수바위는 긴말이 필요 없는 장관으로 화암사의 상징물이다. 진표율사를 비롯해 역대 스님들의 수도장이었던 수바위는 큼직큼직한 크기로 굵은 금이 가 있다. 금방이라도 갈라져 무너질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더욱더 웅장하고 신비스럽다.


안내문에는 달걀 모양의 바탕 위에 왕관 모양의 또 다른 바위가 놓여 있다고 쓰여있다. 그 내용대로의 모습을 찾아보려고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멀찍이 떨어져서 보는 내게는 그런 형상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 눈에는 수바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보였고, 산봉우리에서 느닷없이 불쑥 솟아난 것처럼도 보였다.


화암사를 지그시 지켜보고 있는 수바위는 화암사를 둘러보는 내내 시야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화암사의 경치가 한층 더 멋지게 업그레이드되었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경내는 고즈넉함을 넘어 고요한 침묵 속에 빠져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산새들도 날개를 접었는지 그 흔한 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고요한지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무더운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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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를 안고 조심스럽게 대웅전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부처님을 마주한 어린 손자는 몸부림치거나 칭얼대지 않았다. 대웅전의 모습이 신기했는지 해맑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이뻤는지 모른다. 손자는 그렇게 부처님과의 첫 만남을 아주 멋지고 인상 깊게 마무리했다. 지금,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려고 종교적 의미를 떠나 맑디맑은 손자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것에 커다란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다.


대웅전을 나와 미륵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이 제법 경사가 있어서 갈까 말까 살짝 망설여졌다. 불과 5분 뒤에 알게 되었지만, 미륵전에 안 왔으면 크게 후회할뻔했다. 미륵전에서 보는 경치는 지금까지 화암사에서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경치가 펼쳐졌다. 높이 14m의 거대한 미륵 대불도 볼만했지만, 전망대에서 보는 경치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산속에 안겨 있는 화암사의 경치와 달리 드넓게 펼쳐진 경치가 눈과 마음을 대번에 사로잡았다. 저 멀리 속초 시내가 손에 잡힐 듯이 보였고, 그 맞은 편으로 설악산 울산바위를 비롯해 구불구불 이어진 산봉우리들이 장쾌하게 펼쳐졌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면 막혔던 가슴이 한순간에 뻥 뚫리듯이 시원하다. 이렇게 높은 산에서 넓디넓은 경치를 굽어보면 바다를 볼 때처럼 시원함을 느낀다. 둘 다 시원함을 느끼지만, 그 느낌이 같은 듯 다르다. 바다에서의 시원함은 무더운 날에 차디찬 청량음료를 마신 것 같은 느낌이다. 반면에 산에서는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밀려 올라와 폭발하는 듯한 시원함을 느낀다.


화암사에 도착해서 돌아 나올 때까지 손자는 조금도 칭얼대지 않았다. 언제나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보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실감 났다.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불성이 오염되지 않은 맑고 깨끗한 아이의 마음은 부처의 마음이라고도 한다. 오늘은 손자가 아니라 부처와 함께 화암사를 둘러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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