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로 시작하는 ‘서시’와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로 끝나는 ‘별 헤는 밤’이라는 시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시 전체는 모른다 해도 이렇게 한 구절은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시다.
이 시를 쓴 사람은 그 시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 윤동주다. 나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알려진 것만큼 그의 삶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시인으로 일본 유학 당시, 조선의 독립을 선동한 혐의로 체포되어 형무소에 투옥되었다. 그리고 광복을 불과 5개월여 정도 앞두고 옥사했다는 단편적인 사실만 알고 있다.
얼마 전, 여행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종로구를 여행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한 후배가 윤동주 문학관을 일정에 넣었고, 문학관에서 해설을 듣기로 했다. 그 덕분에 그동안 몰랐던 윤동주의 삶과 활동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게 되었다. 윤동주 문학관은 종로구 청운동에 있다.
윤동주 문학관이 왜 종로구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다고 한다. 함께 하숙했던 정병욱과 인왕산에 자주 올랐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인연이 있어 종로구에 윤동주 문학관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윤동주 문학관으로 가는 길에 서촌에서 윤동주가 하숙한 집의 안내판을 보았다. 그건 생각지도 않게 윤동주를 만나기 위한 예습이 되었다. 윤동주 문학관은 수수하고 아담했다. 특별한 장식이 없는 건물 외벽에 유리로 된 1층 전시관이 오픈된 형태였다. 건물 외관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담백했다.
윤동주 문학관은 인왕산 자락에 방치되어 있던 청운 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윤동주 문학관에 들어서면 곧바로 제1전시실인 ‘시인채’다. 이곳에서 해설을 들으면서 전시실을 구경했다. 제1 전시실은 문학관 규모처럼 아담했다. 단순히 구경만 한다면 몇 걸음을 옮길 것도 없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정도이다.
전시관 한쪽 벽에 있는 9개의 전시대에는 윤동주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의 삶이 시간대별로 전시되어 있어 해설을 들으면서 보면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또 유익했다. 그 덕분에 조금 더 깊이 있게 윤동주를 알게 되었다.
전시실 한가운데에는 우물 목판이 자리하고 있다. 윤동주 생가에 있던 우물을 수리할 때 나온 목재 널 유구이다. 처음에는 전시실에 웬 우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과 연관 지으면 문학관에 어울리는 의미 있는 전시물이었다. 우물은 윤동주 문학관 전시관 구성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제2 전시실과 제3 전시실을 ‘열린 우물’과 ‘닫힌 우물’이라고 부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서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후략)”
우물에서 모티프를 얻은 제2 전시실의 열린 우물은 천정이 뚫려 있다. 우물과 꼭 닮은 정사각형은 아니지만, 직사각형 벽체에 둘러싸인 뻥 뚫린 천정을 통해 하늘이 쏟아져 들어온다. 사각형의 정해진 공간으로 보이는 하늘은 평소에 보던 하늘과 달리 색다른 느낌이었다.
막힘없이 드넓게 펼쳐진 하늘과 사각형 크기만큼의 하늘은 모습이나 분위기 그리고 느낌이 분명 달랐다. 사각형의 하늘은 캔버스에 잘 그려진 하나의 작품이었다. 사방을 막고 있는 벽체에는 예전의 물이 담겼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하늘을 더욱더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이게 했다.
사방이 꽉 막힌 벽체는 감옥에 갇힌 윤동주의 암울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뚫린 천정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은 그 암울함 속에서 독립과 자유를 갈망하는 그의 희망과 꿈을 보여주는 듯했다. 제3 전시실 ‘닫힌 우물’에서는 윤동주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영상실이라고 해서 고급스러운 스크린이나 안락한 의자가 있는 건 아니다.
콘크리트 한쪽 벽면이 스크린이고, 엉덩이를 겨우 걸칠 수 있는 동그란 의자가 있을 뿐이다. 그 외에 다른 잡다한 건 보이지 않았다. 다른 박물관이나 전시관이었으면 이런 단출한 모습이 살짝 의아스러웠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윤동주 문학관에서는 거칠고 투박한 이런 모습이 그의 삶과 왠지 더 어울려 보였다.
열린 우물에서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오른쪽 벽면 높은 천정에는 사각형 구멍이 나 있다. 그곳을 통해 밝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어스름한 전시실의 어둠을 밝혔다. 사선으로 내리꽂히는 밝은 햇살은 선명했고 또 인상적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딱 꼬집어 무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보는 사람마다 어떤 의미를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내게는 그 밝은 햇살이 강렬한 희망의 빛으로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