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에서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by 레드산


DSC00141.JPG


사람들이 조선 왕릉을 찾는 이유가 무얼까? 사람마다 여행하는 취향이 다르니까 한마디로 딱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왕릉의 경치도 경치지만, 왕릉에서만 느껴지는 그 독특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사실 왕릉의 경치는 단조롭다. 조선 왕릉을 몇 군데 가 본 사람이라면 경치에 관해서는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도 왕릉은 묘한 끌림이 있다.


조선 왕릉은 어디를 가든 건물의 종류와 배치가 거의 같다. 능침은 봉분의 배치 형태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누어지긴 하지만, 왕릉에서 볼 수 있는 것에 한 부분이다. 왕릉 초입에는 왕릉을 관리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재실(齋室)이 있다. 재실에서 왕릉으로 이어진 길 끝에는 속세인 인간의 영역과 왕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신성한 공간을 구분하는 경계 역할의 홍살문이 있다.


홍살문에서부터 제사 지내는 정자각까지는 직선으로 참도(參道)가 이어진다. 참도는 죽은 왕의 혼령이 다니는 신도와 제사 지내러 온 왕이 다니는 어도가 높낮이에서 약간의 차이를 두고 이어진다. 정자각 좌우에는 수복방과 수라간 건물이 배치되어 있고, 오른쪽 뒤편에는 능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기록한 비석이 있는 비각이 자리 잡고 있다.


정자각 뒤로는 왕과 왕비의 시신을 모신 능침이 있다. 능침에는 문인석과 무인석을 비롯해 다양한 석물들과 혼유석 등이 있다. 능침 공간은 함부로 갈 수 없어 멀찌감치 떨어져서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조선 왕릉의 전부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왕릉 관리는 정말 잘되고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60년대에는 왕릉으로 소풍을 많이 갔다. 소풍을 가면 능침 주변에서 도시락을 먹었고, 능침에 있는 돌로 만든 호랑이나 양, 말을 타고 놀았다.


조선 왕릉은 이래서 여기나 저기나 다 똑같이 보인다. 조선 왕릉에 다녀오면 사진 파일에 바로바로 왕릉의 이름을 기록해야 한다. 나중에 꺼내 보면 어디가 어딘지 헷갈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조선 왕릉은 대부분 경기도 일대에 퍼져있다. 그 때문에 경기도 지역을 여행할 때는 가는 곳에 있는 왕릉을 빠뜨리지 않는다.


DSC00169.JPG


조선 왕릉이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이어서가 아니라, 왕릉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꼽는 건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하다는 것과 함께 왕릉에 내려앉은 경건함이 마치 산사를 찾았을 때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는 왕릉을 오가는 길과 왕릉 주변에 있는 오래된 나무들을 보는 즐거움이다.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 멋진 소나무들이 많아 그것들을 보는 즐거움이 여간 아니다.


왕릉은 이승과 저승의 분기점이고, 삶과 죽음의 경계이다.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가야 할 종착지가 어디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왕릉에 가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다들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그 때문에 왕릉 분위기는 언제나 조용하고 차분하다. 또 왕릉에 내려앉은 경건한 분위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왕릉을 구경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능침 공간까지 볼 수 있으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곳은 갈 수 없어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다른 왕릉을 몇 군데라도 가 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왕릉을 찾는 건, 왕릉 주변 숲에서 왕릉만의 차분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느 왕릉처럼 장릉도 정자각 옆으로 숲이 조성되어 있다. 다만 아쉬운 건 숲에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없어 왕릉에서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아쉬움은 홍살문을 빠져나와 재실 앞에 있는 숲에서 달랠 수 있었다. 재실 앞에는 여느 곳에서 보지 못한 넓은 숲이 있고, 숲에는 한눈에 보아도 수령이 만만치 않게 보이는 거대한 나무들이 있다.


DSC00153.JPG


나무의 굵디굵은 줄기는 예사롭지 않은 세월의 묵직함을 보여준다. 그런 만큼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과 눈길을 끌었다. 나무에 대해 잘 몰라 어떤 나무인지 또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궁금했다. 여름이라 더운 게 이상할 게 없지만, 이날은 유난히 더웠다. 그냥 덥기만 한 게 아니라, 진득진득한 습기를 가득 품고 있어 숨이 턱 하니 막혔다.


거기에 바람 한 점 없어 숲속에 앉아있어도 시원하지 않았다. 한낮에 뜨겁고 날카로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사람 없는 숲속에 혼자 앉아 있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장릉의 분위기 속으로 빠져 들었다. 장릉을 다녀오고 나서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병원에서 고생하던 큰형이 세상을 떠났다. 게으름에 보관만 하고 있던 장릉 사진을 이제야 꺼내 보니 사진을 찍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큰형의 떠남은 오래전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와는 슬픔의 두께와 느낌이 같은 듯 다르다. 내 눈에는 여전히 아이처럼 보이는 딸들이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기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손자들이 삶의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형의 떠남과 무럭무럭 자라는 손자를 생각하면 내가 차지하고 있는 이 공간을 비워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한 세대가 가고 또 새로운 세대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 이건 인간의 삶에 불변의 법칙이자 순리이다. 많은 이들의 사랑과 축복 속에서 이 세상에 온 사람들은 언젠가 떠나야 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죽음이란 걸 남의 일처럼 착각하고 살았다. 아니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영원히 함께 할 줄 알았던 부모님이 떠나고, 친한 친구들을 먼저 떠나보냈을 때도 죽음이란 게 절실하게 와닿지 않았다.


큰형과는 여섯 살 터울이다. 한 방에서 같이 뒹굴며 자랐던 큰형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란 걸 새삼 깨닫는다.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에 염세주의나 허무주의에 빠져 살 일은 아니다. 반대로 천년만년 살 것처럼 기고만장하게 살아서도 안 된다. 이제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기에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든다.


DSC00152.JPG


요즘은 백세시대니까 어쩌니저쩌니하는 말들이 많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건 그 나이까지 산 사람들 이야기라고…’ 세상 어느 누가 언제까지 살 거란 걸 아는 이가 있겠는가. 또 피치 못하게 일찍 떠난 사람들은? 그들도 백 세까지 살고 싶었을 것이다. 죽음은 분명한 명제이지만, 그 명제에 이르는 길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이젠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가끔은 그것에 관한 생각과 고민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죽음의 명제를 받아들이고, 삶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사는 동안 건강해야 한다. 예전에는 다들 오래 살려고 운동했지만, 이제는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려고 운동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건강한 삶에 대한 사람들의 바람을 재치 있게 표현한 숫자가 있다. ‘998833’이라고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깨끗이 죽자는 뜻이다. 정말 그렇게 건강하게 살다가 떠날 수 있다면 그건 하늘이 내린 복 중에서도 최고의 복이다.


나 역시도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사후에 가족이나 주변 이들이 오래 기억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건 그냥 바람일 뿐이다. 특별히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두어 세대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힌다. 또 죽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잊히는 게 당연하다.


무더위 때문에 숲에서 오래 머물지 못했다. 얼른 차에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더위를 떨쳐내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돌아 나오는 길에서도 숲의 나무 이름과 얼마나 오래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장릉 입구에 다 왔을 때, 송풍기를 메고 한창 작업하는 사람이 보였다. 염치 불고하고 가서 물었다.


“그 나무들은 느티나무고, 수령은 400년 정도 되었습니다!” 인조는 1595년에 태어나 1649년에 죽었다. 그러니까 인조가 살아있을 때, 그 나무들도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인조는 땅에서 백골이 흙으로 변했을 텐데, 느티나무들은 아직 살아서 그늘을 내어주고 있다. 왠지 모를 묘한 기분이 들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다시 마주할 수 없는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