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주할 수 없는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보자

by 레드산


“아빠! 여기 생겼어. 가봐!”

얼마 전, 작은딸이 문자와 함께 블로그 포스트를 보냈다. 무언가 싶어 열어보니까 ‘서울 시립사진미술관’을 다녀온 어느 사람의 후기였다. ‘서울 시립사진미술관??’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처음 들어보는 곳인 데다 사진미술관이라는 제목에 호기심이 생겼다. 작은딸 부부가 손자를 데리고 이곳에 갔다가, 여행하면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아빠 생각이 나서 보낸 모양이었다.


블로그 포스트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여행하면서 꽤 오랜 시간 사진을 찍었지만, 내 삶에 있어서 사진과 관련한 기억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서울 시립사진미술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문득 사진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이 무언지 궁금했다. 생각난 김에 가만히 추억의 페이지를 뒤적여보니까 다행스럽게도 사진에 대한 첫 기억이 아주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는 빛바랜 흑백사진도 있었다. 사진 속의 나는 대엿 살쯤이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이 사는 서울이 아니라, 부산에 있는 어느 사진관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와 나 그리고 아주머니 한 분이 함께 사진을 찍은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사진 속의 아주머니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사진을 찍던 그 순간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사진사 아저씨가 길쭉하게 주름관이 튀어나온 커다란 사각형 카메라 뒤에서 검은색 천을 뒤집어쓰고 사진기를 조작했다. 준비가 끝나면 아저씨는 요즘의 셔터 역할을 하는 둥그스름한 장치를 한 손에 쥐었고, 다른 손에는 ‘펑’하는 소리와 함께 섬광이 일으켰던 카메라 플래시 역할의 장치를 들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자아~~ 이제 찍습니다! 여기 보시고, 눈 감지 마세요!’ 하는 소리와 함께 '펑' 소리가 나면서 순간적으로 강한 빛이 번쩍였다. 소리도 컸지만,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섬광에 아주 많이 놀랐다. 그 때문이었는지 어머니는 사진 찍기 전에 눈 감지 말라는 말을 여러 번 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운 좋게도 그때 찍은 흑백사진은 부모님의 손을 거쳐 지금은 나에게 있다. 사진 속의 어린 나는 다행히 눈은 감지 않았지만, 얼마나 놀랐던지 눈이 동그랗다. 지금 보니까 놀란 모습이 꽤 귀여우면서도 동그랗게 뜬 눈 때문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반바지에 모자를 쓰고 예쁜 신을 신은 꼬맹이가 이제 고희의 세월을 맞이하고 있으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이렇게 빛바랜 흑백사진이 남아 있어 기억 저편의 나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여행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게 2009년이었다. 꽤 오랜 시간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 실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사진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고, 몇 권의 책을 통해 혼자 어설프게 익혀서 그런지 어느 순간부터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 사진을 잘 찍는 지인들에게 잠깐씩 조언을 받기도 했지만, 늘 부족함을 느낀다. 그렇다 보니까 이제는 잘 찍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냥 즐기고 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사진을 잘 찍고 싶은 마음이 아직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그 때문에 서울 시립사진미술관은 나의 관심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이런저런 일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연일 뜨거운 날이 이어지던 일요일에 집을 나섰다. 어쭙잖은 사진 실력이라 사진미술관에 카메라를 들고 가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오랜만에 카메라를 챙겨 들었다.



사진미술관은 독특한 건물 외관에서부터 시선을 잡아끌었다. 건물 외벽은 검은색의 건축 자재를 직선으로 층층이 쌓은 모습으로 단순하고 간결하게 보였지만, 미적인 감각이 도드라져 보였다. 건물 아랫부분의 완만한 곡선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보기 좋았다. 건물 외관은 카메라 조리개의 움직임에서 착안해 설계했다고 한다. 이런 노력이 건물의 미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사진미술관으로서의 의미를 함축성 있게 보여주었다.


서울 시립사진미술관은 올해 5월 29일에 오픈했다. 그야말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지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새로운 시설이다. 그 때문에 건물 외관은 물론 내부도 깨끗하고 깔끔해서 구경하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마치 새 차를 사서 탈 때와 같은 새것 특유의 분위기와 설렘이 느껴졌다.

내부는 검은 색조로 이루어졌고, 거기에 작품을 비춘 조명이 어우러져 멋진 흑백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명은 작품의 느낌과 감성이 잘 전달될 수 있을 정도여서 작품들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에 가장 어울리는 노출값을 설정한 것 같았다.


사진미술관에서는 개관 특별전으로 <스토리지 스토리>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 제목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담겨 있다. 스토리지(Storage)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공간이나 시스템을 말한다. 그리고 사진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는 창동(倉洞)의 창은 곡식을 저장하던 곳을 의미한다. 스토리지와 창은 미술관의 수장 기능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어 사진미술관 개관의 의미와 가치를 살려주는 제목이었다.

여섯 명의 작가가 건립 과정에서 수집한 소장품과 자료를 통해 사진미술관 형성의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특별전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더 좋았던 건 3층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개관 특별전<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이었다. 다섯 명 작가의 흑백사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들은 잊힌 지난날의 우리들 모습이 담긴 귀한 작품들이었다.



사진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물론 오래도록 보존해야 할 귀중한 자료들이기도 했다. 흑백사진 속의 장면들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희미한 지난날의 모습도 있어 반갑고 정겨웠다.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을 이렇게 다시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사진 속의 인물들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이 떠올랐다. 부모님은 사진 속의 인물들과 같은 시대, 같은 공간, 같은 모습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한 장 한 장의 사진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쩌면 다시 보지 못할 귀한 사진들이었기에 하나라도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까 발걸음은 좀처럼 앞으로 나가질 못했다. 우리가 여행을 가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남는 건 사진뿐이니까 많이 찍자!” 전시된 사진들을 보는 동안 그 말이 맞다는 게 새삼 다시 느껴졌다.

사진작가들이 이렇게 사진을 찍어 놓은 덕분에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필름 값과 사진을 인화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있어 지금처럼 아무 때나 사진을 찍지 못했다. 졸업식이나 입학식, 소풍 가는 날처럼 가족 행사가 있는 날에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요즘은 누구나 아무 때고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사진을 찍는다. 필름이 필요 없는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고, 누구나 들고 다니는 핸드폰 카메라가 있어 언제 어느 때고 생각날 때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사진 찍는 게 일상이 되었다. 보고 먹고 입고 즐기는 모든 걸 사진으로 남긴다.

사람들은 이렇게 삶의 순간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그 사진들이 쌓이고 쌓이면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사람의 역사가 된다. 자서전을 꼭 글로만 쓸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사진으로 남겨놓으면 글로 쓴 것 이상의 멋진 자서전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매 순간 사진으로 멋지게 자서전을 꾸미고 있는 셈이다.


사진 실력이 변변치 않아서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을 잘 찍고 못 찍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본인이 찍고 싶은 걸 찍고, 남기고 싶은 걸 찍으면 그만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잘 찍으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자기만족이 우선이다. 사진미술관에서 좋은 사진들을 많이 보아서 그런지 사진을 잘 찍고 마음이 다시 굴뚝같아졌다. 지금의 이 마음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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