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카가 잊고 있었던 젊은 날의 추억을 끄집어내 주었다
춘천에 있는 삼악산을 50여 년 만에 다시 올랐다.
1976년인가 1977년인가에 오르고 이번에 올랐으니까 그 세월의 간격이 정말 크다.
처음 삼악산에 오를 때는 20대에 새파란 청춘이었는데, 이젠 고희의 세월에 들어섰다.
그때는 튼튼한 두발로 삼악산을 올랐지만, 이번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다.
무심하게 살아서 그랬는지 삼악산에 케이블카가 생겼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는 3, 61km로 춘천시 삼천동에서 의암호를 가로질러 삼악산을 이어준다.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를 타러 가던 날은 올겨울 들어 최강의 한파가 밀어닥쳤다.
그렇지만 케이블카 덕분에 추운 줄 모르고 편안하게 삼악산에 올랐다.
케이블카 안에서 보는 낯익은 경치가 무척 반갑고 정겨웠다.
멀리 보이는 의암댐과 발아래에 펼쳐진 의암호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었다.
그 때문인지 케이블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옛 추억이 떠올랐다.
삼악산에는 잊히지 않는 젊은 날의 추억이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부터 나온다.
대학 다닐 때. 어울려 다녔던 동기와 선배들이 일고여덟 명 있었다.
그중의 2년 선배인 형이 있었다.
형은 럭비선수라 덩치가 무지하게 컸는데, 사람 웃기는 재주는 요즘 개그맨을 뺨치고도 남았다.
장난기는 또 얼마나 많았는지 형의 선배들도 말리지 못했다.
그래도 사람 좋고 의리가 있어 다들 형을 좋아했는데,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서둘러 세상을 떠났는지 그게 두고두고 안타깝다.
그 형과 얽힌 삼악산의 추억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대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인 어느 날, 느닷없이 형이 나와 동기 2명에게 미팅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장난이 심한 형이라 선뜻 믿기지 않아 망설였는데,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소리에 깜빡 넘어가 미팅을 하기로 했다.
미팅 날까지도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었지만, 약속했기에 옷을 차려입고 형을 만나러 갔다.
요즘은 그러지 않을 텐데, 그때는 미팅할 때 양복에 넥타이를 매는 경우가 많았다.
꼭 정장을 입고 나오라는 형의 당부도 있어서 나름 한껏 멋을 내고 약속 장소로 갔다.
그런데 느닷없이 형이 시외버스를 타러 가자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니? 미팅은 다방에서 하는 게 일반적인데 웬 시외버스?‘
이거 또 형 장난에 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어 왜 시외버스를 타러 가냐고 따졌다.
형 말인즉슨 날씨가 좋아 다방보다 야외가 좋을 것 같아 삼악산 아래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실실 웃는 형의 얼굴을 보면서 또 당하는 것 같아 께름칙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포기하고 시외버스를 탔다.
시외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의구심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양복까지 입었는데 설마하니? 장난일까 싶었다.
그렇지만 역시나는 역시나였다.
믿었던 실낱같은 희망은 여지없이 깨졌다.
여학생과 미팅은 무슨 미팅?
장난기가 하도 많아 안 속으려고 했는데도 또 멋지게 속고 말았다.
미팅은 애당초 물 건너간 거니까 거기서 그냥 돌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형은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삼악산을 올라가자고 했다.
본인이야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었으니 괜찮지만, 우리는 양복에 구두를 신고 있어 말이 되지 않았다.
친구들과 나는 이 복장으로 어떻게 산에 올라가냐고 완강하게 거부했다.
형은 삼악산장이 멀지 않으니까 거기까지만 갔다고 오자고 어르고 달래는 바람에 결국 삼악산에 발을 들여놓았다.
주말이라 다들 등산복에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는데 우리 셋은 양복에 구두를 신고 있으니,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드러내놓고 웃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얼마나 웃었겠는가.
우리 셋은 창피해서 얼굴도 못 들고 산을 올랐다.
형의 장난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말없이 가다가도 또래의 여자들이 지나가면 들으라는 듯이 이죽거렸다.
“야! 너네는 등산하는데 뭔 양복에 구두를 신고 왔냐?”
안 그래도 창피한데 그런 소리까지 해대니 복장이 터질 일이었다.
그 창피함을 무릅쓰고 삼악산장까지 갔다가 내려왔다.
형은 사람을 밀었다 댕겼다 하는 재주가 좋았다.
삼악산에서 내려와서는 막걸리를 사주면서 특유의 입담으로 우리 기분을 달래주었다.
막걸릿잔이 몇 번 돌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같이 웃고 떠들었다.
그때는 그 사건이 이렇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평생의 추억으로 남을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빛나는 젊은 날에 웃음 가득한 추억을 있게 한 형이 고맙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형하고는 자주 만났다.
그러던 어느날, 형이 교통사고를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 형 나이가 40대 초반이라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삼악산에 오니까 형 생각이 났고 또 보고 싶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전망대로 나가 의암호 경치를 눈에 담았다.
의암댐과 호수는 그대로이지만, 흘러간 세월만큼 주변은 몰라보게 변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사정없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지만, 크게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추억이라는 갑옷이 온몸을 감싸고 있어 오히려 훈훈하게 느껴졌다.
의암호 경치를 보는 동안, 예전에 형이 만들어 주던 ’소사달둘주‘가 생각났다.
재밌는 성격이다 보니까, 소주에다 사이다와 달걀을 두 개를 풀어 술을 제조해 마셨다.
그 술맛은 너무 오래되어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그 이름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오늘은 소사달둘주를 한번 만들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