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행] 국립항공박물관

비행기가 내 안의 역마살을 깨운다

by 레드산
20251014_140013.jpg


개구쟁이들이 한낮의 따가운 햇살을 피해 담벼락 그늘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그때 한 녀석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묻는다.

“야! 너네들! 식인종들이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고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

“????”

“그것도 모르냐? 통조림!”

뒤늦게 뭔 소리인 줄 알아챈 아이들이 마주 보며 키득댄다.


이건 60년대에 초등학교 다닐 때 아이들끼리 하던 난센스 퀴즈다.

요즘 아이들은 비행기를 두고 이런 난센스 퀴즈를 하는지 모르겠다.

요즘과 달리 그때는 하늘에 떠가는 비행기를 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어쩌다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발견하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비행기 간다!”라고 외쳤다.

그러면 한창 뛰놀던 아이들이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젖혀 날아가는 비행기를 구경했다.

비행기가 까만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때 개구쟁이들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행사가 되는 꿈을 꾸는 아이도 있었겠지만, 난 별다른 생각을 한 것 같지 않다.

딱히 남아 있는 기억은 없지만, 비행기를 한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그때는 비행기를 탄다는 게 꿈같은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20251014_140610.jpg


너나 할 거 없이 어렵던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이 나이가 되어서도 비행기 구경하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언젠가부터 여행 메모에 ‘국립항공박물관’이 적혀 있었다.

한 6~7개월쯤 되었을까?

주말을 맞아 집에서 빈둥대다가 심심해서 어디나 가볼까 하고 여행 메모를 보다가 국립항공박물관을 발견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찾은 김에 곧바로 차를 몰아 국립항공박물관으로 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박물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래도 조금 기다리면 들어갈 수 있겠지? 하면서 기다렸는데 차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결국 기다리다 지쳐 포기하고 그냥 돌아온 적이 있다.

그렇게 국립항공박물관과는 인연을 맺지 못한 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제주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국립항공박물관 이정표를 발견했다.

여행으로 몸이 조금 피곤했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있을까 싶어 국립항공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0251014_140227.jpg


주중이어서 그런지 박물관은 다소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은 물론 단체로 찾은 아이들이 꽤 많았다.

1층에 들어서면서부터 아이처럼 기분이 들떴다.

3층으로 이루어진 국립항공박물관의 1층은 항공역사관이다.

세계의 항공 역사와 우리나라의 항공 역사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또 이곳에서 갖가지 형태의 비행기들을 볼 수 있다.

2층 항공산업관과 3층 항공생활관에는 각종 체험 거리가 있어 아이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어른인 나도 조종 관제 체험이나 블랙이글스 탑승 체험 같은 것들을 해보고 싶은데 아이들이야 오죽할까.

이제는 눈이 커져서 그런지 전시되어 있는 비행기들이 장난감처럼 보인다.

이런 비행기들이 하늘을 날았다는 게 신기했다.

비행기가 뜨는 건 날개에 생기는 양력 때문이란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지금도 거대한 여객기가 하늘을 나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20251014_141111.jpg


요즘은 누구나 흔하게 비행기를 타니까, 처음 비행기 탔을 때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처음 비행기를 탄 건 80년대 중반, 일본 출장을 갈 때였다.

그때의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하늘로 치솟을 때의 그 짜릿한 전율을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하늘을 향해 이륙하는 비행기를 보면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왜 그런 걸까?

비행기가 낯선 외국으로 데려가기 때문에 설레는 게 아닐까 싶다.

국립항공박물관을 나와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보면, 불과 몇십 분 전에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다시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비행기가 좋은 건지, 내 안에 숨어 있는 역마살이 꿈틀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춘천여행]삼악산호수케이블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