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주 여행에서 인생 도다리회를 만났다
제주를 여행하면 꼭 한번은 먹게 되는 게 생선회이다. 아니 먹지 않으면 제주 여행이 온전하게 채워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간 제주를 여행하면서 먹었던 생선회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는 게 있었다. “○○네 물회” “다금바리회” “자리물회” ○○네 물회는 꽤 오래전부터 찾았던 곳이다. 제주에서 병원을 운영했던 후배의 소개를 받아 알게 되었고, 주변 사람에게 자신있게 추천했던 곳이기도 하다.
다금바리회는 몇 해 전, 둘째 사위를 보면서 온 가족이 함께 먹었다. 다금바리회는 최고급 어종이라 아무 데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생선은 아니다. 거기다 가격도 적잖이 부담되어 좀처럼 먹을 기회가 없었다. 그런 걸 가족과 함께 먹게 되어 생선회 맛은 물론 가족의 사랑까지 보태져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꼽는 건 셋 중에서 가장 최근에 먹었던 보목항의 자리물회다. 지금껏 여러 지역에서 수없이 먹었던 물회 중에서 최고를 꼽으라고 하면 서슴없이 자리물회를 꼽을 만큼 맛있었다. 온 가족이 함께한 이번 제주 여행에서 다른 건 몰라도 자리물회만큼은 꼭 다시 먹어 보고 싶었다. 사실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에서 먹는 생선회는 언제 어디서 어떤 회를 먹어도 여행의 낭만과 즐거움이 있어 다 맛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고기보다 생선회를 훨씬 더 좋아한다. 중국집에서는 짜장면과 짬뽕을 두고 고민하지만, 고기와 생선회를 두고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생선회를 선택한다. 이번 여행은 젖먹이 손자가 있어 먼 거리 이동이 어려워 숙소 정 반대편에 있는 보목항에 가기가 어려웠다. 나의 아쉬운 마음을 눈치챈 큰딸이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횟집을 찾았는데, 도다리 전문 횟집이었다.
도다리회는 내륙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횟감이라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상호에 들어있는 도다리 전문 횟집이라는 문구가 궁금증을 자아냈다. 참치 횟집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껏 횟집을 다니면서 특종 어종만 취급하는 전문 횟집은 처음이지 싶다. 대부분의 횟집이 계절에 따라 다양한 횟감을 파는 게 일반적이라 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집이라는 소리에 서둘러 횟집으로 갔다. 우리는 일찍 도착한 덕분에 바로 자리를 잡았지만, 6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식탁은 이미 다 찼다. 조금만 늦었으면,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뻔했다. 도다리 전문점이란 이름이 붙었듯이 메뉴는 도다리회와 도다리 세꼬시가 전부였다. 탕으로 우럭탕과 우럭 지리탕이 있긴 했지만, 도다리가 메뉴의 전부였다.
회를 좋아하지만, 뼈 채로 먹는 세꼬시는 어떤 어종이든 딱히 좋아하지 않아 도다리회로 주문했다. 어른 네 명이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양을 물었더니 대(大)자를 권했다. 도다리회 대(大)자 가격이 75,000원으로 저렴했다.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데는 이런 가격도 한몫하는 듯싶었다. 한편으로는 가격이 저렴해서 나오는 양이 부실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건 기우였다.
사람이 많아 종업원이 우리 주문을 깜빡하는 바람에 회가 늦게 나오는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뒤늦게 나온 도다리회는 정말 먹음직스럽게 푸짐했다. 보통 횟집에서는 플레이팅을 위해 접시에 무채나 초록색 풀 같은 걸 까는데, 여기는 그런 거 없이 오롯이 도다리회만 담겨 나왔다. 도다리회로만 승부를 걸겠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또 일반 횟집과 달리 소위 “스끼다시”라고 부르는 잡다한 기본 반찬이나 안줏거리를 내지 않았다. 나는 횟집에 가면 스까다시에 젓가락을 거의 대지 않는 편이다. 생선회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오히려 회 맛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선회만 내는 이 집의 운영 방식이 훨씬 더 마음에 들고 그만큼 더 신뢰가 간다. 스까다시가 없어서 그만큼 가격을 저렴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를 썬 두께도 딱 내 취향이었다. 종잇장처럼 얇게 썬 회는 넉넉한 식감을 즐길 수 없어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삼겹살처럼 너무 두툼하게 썰면 그것 역시 회 맛을 떨어뜨린다. 이 집의 회 두께는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적당한 두께여서 생선회의 식감과 맛을 제대로 느끼고 즐길 수 있었다.
회를 먹을 때, 회 본연의 맛을 즐기려고 쌈을 싸 먹지 않는다. 찍어 먹는 소스로는 늘 쌈장을 선호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커다란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인 도다리회는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첫 도다리회를 먹을 때는 마치 음식 평가단이라도 된 것처럼 조심스럽고 맛을 봤다. 도다리회를 쌈장에 찍어 먹는 순간, 정말 놀랄 만큼 맛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찰진 식감과 입안에 남는 달큼한 끝맛이 지금까지 먹었던 도다리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도다리회가 이렇게까지 맛있을 수가 있나 싶어 서너 점을 쉬지 않고 먹었다. 최근 들어 회를 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 집 식구들은 다들 회를 좋아한다. 가족이 모이면 회는 빠지지 않는다. 집에서 가까운 하남 수산물센터에 단골집이 있다. 그래서 늘 싱싱하고 좋은 회를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의 도다리회는 정말 특별하게 느껴졌다.
기다리면서 시간을 버리는 게 아까워 사람들이 많이 가는 맛집은 찾아다니지 않는다. 또 입맛이 까탈스럽지 않아 음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호들갑을 떠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나도 모르게 탄성이 연신 터져 나왔고, 맛있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 했다. 이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가족들 모두가 대만족이었다. 그나저나 이 집에서 도다리회를 먹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 생강하고 생선회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예전에 미처 몰랐다.
회와 함께 초 생강을 먹으면 세콤 쌉싸름한 맛이 더해져 회의 풍미와 감칠맛이 한껏 살아났다. 회에 쌈장을 찍은 다음 초 생강을 곁들여 먹어도 좋고, 그냥 회에 초 생강을 얹어 먹어도 좋았다. 그뿐 아니라, 깨끗하게 씻은 묵은지에 도다리회를 올리고, 그 위에 초 생강을 얹어서 삼합으로 먹으면 정말이지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었다. 각자의 독특한 맛을 지닌 회와 묵은지와 초 생강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 맛이 최고였다.
작지 않은 규모의 식당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고, 어둠이 내린 창 너머에는 이제나저제나 자리 나기를 사람들이 서있었다. 횟집에 있는 사람들의 옷차림새를 보면 80% 이상이 현지인으로 보였다. 이 맛에 이 가격이라면 찾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만약 우리집 가까운 곳에 이런 횟집이 있다면 정말 뻔질나게 드나들었을 것이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이 집이 관광객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퍼져나가는 입소문을 누가 막을 수 있겠냐마는 말이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젊은 친구들이 하는 말처럼 인생 도다리회를 만났다. 세 손가락 안에 꼽은 제주 생선회 중에서 아무래도 오늘부로 하나는 빼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