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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Feb 25. 2023

하목정은 돌아와서야 그 멋스러움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겨울 여행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찾아 즐기려는 여행자는 특히 더하다. 겨울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눈이라도 내려 있으면 모르는데, 그렇지 않으면 생각지 않은 실망감에 당혹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겨울은 분명 겨울만의 멋과 아름다움이 있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기엔 사실 아쉬움이 있다. 

앙상한 가지만으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이 계절의 나무들은 하나같이 죽은 듯이 짙은 갈색으로 변해 있어 딱히 매력적이지 않다. 눈이 내려 앙상한 가지에 눈꽃이 피어 있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그냥 보는 맛은 어쩔 수 없이 쓸쓸하고 썰렁하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달라붙어 있는 옛 목조 건물은 흘려보낸 세월의 무게만큼 진한 갈색으로 변해 있다. 목조 건물이 화사한 꽃이나 초록의 나무들과 어우러지면 건물의 짙은 갈색이 오히려 도드라져 보여 훨씬 더 멋스럽다. 그렇지만 이 겨울에 죽은 듯이 갈색으로 변해 있는 나무들과 함께 있으면 유난히 더 칙칙하게 보인다. 

거기에 계절 특유의 을씨년스러움과 쓸쓸함까지 보태지면 여행자의 마음도 그 분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특히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이 겨울의 쓸쓸함이 유난히 더 진하고 클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이 혼자 여행하는 사람만의 색다른 느낌이 될 수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도동서원을 구경하고 나오면서 안내서를 가지러 갔다가 문화해설사님을 만났다. 서울에서 먼 곳까지 왔다고 친절하게 달력까지 챙겨주셨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근처에 볼 만한 정자가 있는지 여쭈어보았다. 원래 계획은 삼가헌 고택의 하엽정을 볼 생각이었지만, 혹시나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싶은 욕심에 여쭈어보았다.



문화해설사님은 삼가헌 고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하목정(霞鶩亭)을 알려주셨다. 그나저나 이렇게 여쭈어보길 참 잘했다. 하목정을 추천받고, 일단은 계획대로 삼가헌 고택으로 갔다. 한동안 주춤하던 코로나 확진자 수가 근래에 들어 다시 급증했다. 그 때문인지 고택의 대문에는 코로나가 재유행하는 바람에 당분간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아쉽기는 했지만, 소개받은 하목정이 있어 미련 없이 차를 돌려 하목정으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르면 목적지에 다 온 것 같은데 정자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근처 빈자리에 차를 세우고 둘러보니, 규모가 큰 음식점이 하목정을 가리고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오는 길도 그랬지만, 도착한 주변을 보면 정자를 품을 만한 경치는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시골 모습이라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정자 바로 앞에 커다란 음식점까지 떡하니 있어 실망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정자 하면 정자가 품은 경치가 있어야 보는 재미와 즐거움이 있다. 그렇기에 정자에 도착하기 전부터 시작해서 도착하는 대로 가장 먼저 주변 경치를 살핀다. 이런 점에서 하목정은 그동안 보았던 정자들과는 주변 모습이 사뭇 달라 당혹스러웠다. 그동안 정자 여행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생긴 정자에 대한 고정관념도 문제이긴 하다. 그로 인해 실망과 당혹감이 더 커졌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 지형과 환경은 바뀔 수밖에 없다. 산이 많은 비좁은 한반도에서 많은 사람이 살아가려면 시대를 막론하고 개발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7~8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던 역동적인 시기에는 아주 많은 개발이 이루어졌다. 우스갯소리로 올림픽 종목에 부시고 새로 짓는 종목이 있으면 우리나라가 금메달은 떼놓은 당상이라고 했었다. 



이런 개발의 흐름 때문에 하목정은 품었던 경치를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점 건물을 돌아 하목정 앞에 섰다. 작은 솟을대문과 이어진 돌담 너머로 하목정의 지붕이 모습을 드러냈다. 초록이 가득한 계절이었으면 담벼락에 서 있는 나무들에 가려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을 것 같다. 마음속에 주변 경치의 아쉬움이 찌꺼기처럼 남아있는 데다, 앙상한 가지들이 얼기설기 가리고 있어 하목정을 대하는 첫 느낌은 안쓰러움이었다. 그래도 옛 건물이 지닌 세월의 흔적과 무게만은 변함없어 반가웠다. 또 한편으로는 그 오랜 세월의 변화 속에서도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게 고마웠다.

한쪽 문이 열려 있는 대문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하목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훨씬 컸다. 대문과 건물이 가깝게 있어 대문에서는 하목정을 전체적으로 보기 어려웠다. 어찌 되었든 막상 하목정을 마주하고 보니까 좀 전까지 가슴속에 있던 실망감과 안쓰러움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생각지도 않게 기대감이 부풀면서 하목정을 쫓는 눈길이 바빠졌다.

서둘러 왼편에 있는 마당으로 자리를 옮겨 한눈에 하목정을 보았다. 건물의 규모만큼 대청마루가 아주 크다.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널찍한 대청마루가 있어 서원의 강당 건물을 보는 듯했다. 그 대청마루 때문에 정자라기보다 누각으로 느껴졌다. 대청마루 오른편에 있는 온돌방도 대청마루의 규모를 고려했는지 큼지막하게 앉혀 놓았다.



정자의 전면은 툭 터져 있다. 대청마루 후면과 옆면의 판벽에는 문이 있고, 대청마루와 온돌방 사이에는 여는 문이 있다. 이 문들을 모두 열어젖히면 널찍한 건 물론 사방이 시원하게 트이는 열린 공간으로 변신할 것 같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하목정은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이종문이 임진왜란이 끝나고 지어 말년을 보낸 곳이다. 하목정은 정자의 이름을 이해해야 지금은 볼 수 없는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하목은 붉게 물든 노을 속에 날아가는 따오기를 말한다. 당나라의 왕발이 지은 [등왕가서]에 나오는 “지는 노을은 외로운 따오기와 가지런히 날아가고, 가을 물은 먼 하늘색과 한 빛이네”라고 한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여행을 다녀와서 하목정만큼 열심히 자료를 찾은 적이 없다. 그만큼 현장에 있을 때, 하목정에 대한 의문과 당혹스러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역사 문화유산 선비문화의 산실, 누정”이라는 곳에서 위의 이야기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하목정의 옛 모습과 정취가 어렴풋하게나마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목정 저 멀리 낙동강이 흐른다. 지금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하목정이 지어질 당시에는 정자에서 낙동강의 경치를 즐기지 않았을까 싶다. 붉게 탄 저녁노을이 가득한 낙동강 명사십리에 줄지어 하늘을 날아가는 따오기의 모습은 장관이었을 게 틀림없다. 그렇기에 하목정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하목정은 인조가 능양군 시절에 이곳에서 유숙한 인연이 있다고 한다. 왕이 되고 나서 옛 인연을 생각해 ”하목당“이라는 현판을 써서 하사했다. 그 현판이 하목정 처마 아래 붙어있다. 왕이 머물렀고, 왕이 하사한 현판까지 있으니 당대에 이름깨나 알려진 시인 묵객들이 하목정을 찾았을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들이 남긴 시판들이 대청마루 천정을 장식하고 있었다.

처음과 달리 하목정에 대한 느낌이 바뀌기는 했지만, 이 계절이 주는 을씨년스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 하목정을 받치고 있는 목재들이야 흘러간 세월 때문에 짙은 갈색으로 변한 걸 탓할 수 없다. 거기에 정자 주변의 나무들마저 자연의 순리에 따라 갈색으로 변해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고, 칙칙하게 다가왔다. 주변이 온통 짙은 갈색인데 하늘까지 희뿌연 날이라 여행자의 마음도 갈색으로 물들어 버렸다. 

이번 하목정 여행은 나름 특별한 여행이 되었다. 여느 때의 정자 여행과 달리 돌아와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하목정의 숨겨진 멋을 볼 수 있었다. 이전과는 다른 정자 여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정자 여행에서 꼭 필요한 상상의 날개는 한 뼘 더 자랐고, 정자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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