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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Oct 29. 2022

응도당에 등을 기대고 있으면 드러눕고 싶어진다

우리나라 서원(書院)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석굴암과 불국사를 비롯해 여러 세계유산이 우리나라에 있지만, 서원이 세계유산인지는 까맣게 몰랐다. 논산 돈암서원(遯巖書院) 입구에 있는 안내판을 보고 처음 알았다. 논산 돈암서원을 비롯해 아홉 군데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그 아홉 곳은 논산 돈암서원,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정읍 무성서원 그리고 장성 필암서원이다.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은 꽤 오래전에 가본 곳이다. 서원이지만 볼거리는 물론 차분한 분위기가 있어 멋진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우리의 옛것을 찾아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여행을 하면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 중의 하나가 서원과 향교다. 사실 처음에는 구경하면서도 서원과 향교의 차이가 무엇인지 몰랐다. 나처럼 그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서원은 오늘날의 사립학교이고, 향교는 국공립학교라고 생각하면 된다. 둘 다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이지만, 설립과 운영의 주체가 다를 뿐이다. 


향교는 관학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읍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사립인 서원은 행정기관의 간섭을 피해 인적이 드물고 경치가 뛰어난 곳에 자리 잡았다. 여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서원과 향교의 위치를 보면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향교는 가보면 문 닫혀 있는 곳이 많다. 물론 개방한 곳도 있지만, 많지는 않아 보인다.

 

운 좋게 구경한다 해도 두어 군데를 보고 나면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향교는 어디를 가든 건물 배치가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어 다 비슷하게 보인다. 도화지에 물감을 넣고 반으로 접으면 두 면에 똑같은 모양이 대칭되게 나오는 데칼코마니 같다. 그렇다 보니 한두 번은 괜찮은데, 그 이상은 발길이 가지 않는다.

 


서원도 기본적인 건물 배치는 같지만, 향교와는 다른 느낌과 분위기를 보여준다. 서원은 인적이 드물고 경치 좋은 곳에 있어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다. 또 서원이 자리하고 있는 지형의 특성에 따라 건물 배치가 이루어져 훨씬 더 자연스럽다. 서원은 많은 사람이 찾지만,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서원은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돈암서원은 논산을 대표하는 볼거리 중의 하나다. 온종일 오락가락하던 비가 돈암서원에 도착하자 잠시 멈추었다. 그래도 하늘은 잔뜩 흐려있어 수틀리면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태세다. 사람의 첫인상이 중요하듯이 여행지도 한눈에 보이는 첫 느낌을 무시할 수 없다.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는 비 갠 돈암서원의 전경이 탄성을 자아낸다. 그 멋스러운 경치에 마음이 급해지고 덩달아 발걸음도 빨라졌다.


홍살문 뒤로 돈암서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서원 입구에 제법 큰 규모의 산앙루가 있고, 키 큰 소나무들이 서원의 건물을 가릴 듯 말 듯 서 있다. 서원을 감싸고 있는 나무숲에는 운무가 나지막이 깔렸다. 한 폭의 동양화처럼 보이는 그 모습은 현실의 세상이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낯선 미지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묘하게 흥분됐다.

 


홍살문 앞에는 하마비가 떡하니 서 있다. 큼지막한 돌에 새겨진 “하마(下馬)”의 글자가 방금 새겨넣은 것처럼 또렷했다.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왕궁의 수문장처럼 근엄하기 짝이 없다. 말은 없지만, 거부할 수 없는 단호함이 있어 누구라도 군말 없이 말에서 내릴 것 같다. 말을 타고 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제부터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으라고 무언의 눈짓을 보낸다.

 

서원 앞에 있는 산앙루가 찾아오는 이들을 맞는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볼 때 이미 눈치챘지만, 역시나 규모가 웅장하다. 그런 모습의 산앙루는 돈암서원이 어느 정도의 규모와 분위기를 가졌는지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이쯤 되면 돈암서원을 찾은 사람들은 산앙루에 기선을 제압당하고 만다. 그런 만큼 돈암서원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높아진다.

 

잔뜩 들뜬 마음으로 돈암서원의 출입문인 입덕문을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서원 건물들을 쓱 하니 훑어본다. 돈암서원을 보았던 첫 느낌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경치가 펼쳐진다. 오늘 돈암서원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그것도 잠시, 뭐부터 볼지 몰라 고민 아닌 고민을 한다. 양손에 아이스크림을 든 아이가 어느 것부터 먹을지 고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온종일 비가 내려서 그런지 구경 온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잠시 허둥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역시나 기본적인 건물 배치는 내가 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향 공간인 숭례사는 강학 공간 뒤에 있고, 강학 공간은 양성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거경재와 정의재가 있다. 그 밖에 건물들도 좌우에 적절히 나누어져 배치되어 있다.

 


숭례사를 뺀 나머지 건물들은 단청을 입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오랜 세월을 움켜쥐고 있는 건물에서는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묵직함이 엿보인다. 그 묵직함은 서원을 찾은 이들의 마음을 짓누르거나 압박하지 않는다. 묵직한 무게감이 서원의 분위기를 한층 더 차분하게 해준다. 마치 산사에 와 있는 듯한 고즈넉함이 느껴졌다. 

돈암서원은 조선 인조 12년에 창건되었다. 사계 김장생 선생의 제자들이 스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곳으로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예를 숭상한다는 의미의 숭례사에는 사계 김장생을 위시해 신독재 김집,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학창 시절, 국사 시험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것이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었다. 이때 내려진 서원철폐령으로 전국에 있는 약 640여 개 서원 중에서 40여 군데만이 철폐령을 피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곳 중의 하나가 돈암서원이다.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대원군도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돈암서원을 철폐하는 건 마음에 걸렸는지 모른다.


돈암서원 건물 중에서 관심을 끈 건 장판각(藏板閣)이었고,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건 응도당(凝道堂)이었다. 다른 건물들도 저마다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유독 두 건물이 마음을 끌어당겼다. 장판각은 작은 크기에 평범한 건물이다. 장판각은 볼거리를 떠나 건물의 역할과 가치 면에서 관심을 끈다. 장판각은 김장생과 김계휘, 김집 선생의 책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이다.

 


해인사에 팔만대장경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나하나의 목판이 모여 팔만대장경을 이루었듯이 장판각의 책판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 숫자가 팔만대장경에 미치지 못할 뿐, 종이에 인쇄하기 위한 목판이다. 현재는 1,841개의 책판이 남아 있다고 한다. 문이 닫혀 있어 책판을 보지 못했지만, 귀중하고 가치 있는 우리 문화재를 품은 건물이라 관심이 갔다. 


개인적으로 돈암서원의 최고의 건물이자 볼거리는 응도당이다. 응도당은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이다. 고종 17년, 돈암서원이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옛터에 남아 있던 것을 1971년에 옮겨왔다. 이전할 당시에는 양성당이 강학 공간의 중심 건물이었다. 그래서 같은 역할의 응도당은 어쩔 수 없이 서원의 중심에서 벗어난 현재 위치에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 대목에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양성당도 규모 있는 멋진 건물이지만, 여행자의 눈에는 응도당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렇게 크고 멋스러운 응도당을 두고, 왜 양성당에 그 역할을 맡겼는지 궁금하다. 혼자만의 추측이지만, 두 건물의 형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양성당의 마루는 크지 않고, 대신에 방으로 된 공간이 커 보인다. 그에 반해 응도당의 툭 터진 대청마루는 양성당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널찍하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추운 계절을 견디고, 공부하는 집중력을 높이는 데는 닫힌 공간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다. 옛것을 보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이처럼 혼자 상상하고 추리할 수 있는 점이다. 


맞배지붕의 응도당은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펴고 이제 막 땅에 내려앉은 것처럼 보였다. 완만한 경사의 큰 지붕이 건물을 지그시 누르고 있는 듯한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아름다움과 함께 웅장함과 무게감이 있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처마 밑에 걸린 응도당의 편액 글씨는 크고 힘이 넘쳤다. 건물 규모에 어울리는 굵은 기둥과 널찍한 대청마루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무엇이든 넓은 걸 보면 늘 만주벌판 같다고 하셨다. 응도당의 대청마루는 어머니가 사용하셨던 만주벌판 같다는 비유가 딱 어울린다. 대청마루에 올라 돈암서원은 물론 오늘 하루 논산 여행을 마무리한다. 


워낙 크고 튼튼한 응도당이라 앉는데 조심하고 말 게 없다. 대청마루에 앉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사방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어느 조용한 산사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서원의 건물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화려하게 단청을 입힌 우리의 옛 건물도 좋지만,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물도 그에 못지않다. 겉모습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얽히고설킨 지난날의 이야기까지 숨김없이 보여주어 훨씬 더 정겹게 느껴진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고 했던가. 응도당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으면 염치 불고하고 드러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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