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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Mar 27. 2023

사진 한 장이 여행자를 영탑사로 이끌었다


요즘도 하는지 모르겠다. 

저녁 TV 방송에서 PD가 사진 한 장을 들고 사진 속의 경치를 찾아가는 프로그램이었다. 

자주는 아니어도 어쩌다 한 번씩 보았는데 나름 재미있었다.

사진 속의 경치는 우리 땅에 있는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것처럼 한 장의 사진이 어디를 갈까 망설이던 여행자에게 목적지가 되어준다. 

또 방송 프로그램처럼 한 장의 사진 속 경치를 보려고 먼 길을 마다치 않는다.

이번 당진 여행에서 영탑사를 찾게 된 것도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당진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볼 곳을 찾다가 영탑사 “칠층석탑” 사진을 보았다. 

사진을 보는 순간, 조금도 망설임 없이 가볼 목적지의 한 곳으로 정했다.

영탑사는 당진시 면천면 상왕산에 있는 사찰로 통일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영탑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금동비로자나불삼존화상”이 있고, 유리광전에는 충남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약사여래상’도 있다.

그뿐 아니라 충청남도 문화재인 영탑사 범종과 칠층석탑이 있다. 

보물도 있고 유형문화재도 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칠층석탑에 뺏겼다. 



영탑사를 찾은 날은 서둘러 찾아온 봄날같이 화창했다.

텅 비어 있는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대웅전으로 향했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 사방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그 때문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영탑사는 여느 산사처럼 거쳐 가야 할 일주문이나 천왕문이 없다.

주차장에서 경사진 길을 오르면 대웅전과 맞닥트린다.

대웅전 앞마당으로 가는 돌계단 옆에는 느티나무로 보이는 커다란 나무 세 그루가 서 있다.

한눈에 보아도 오랜 세월을 품은 게 드러나는 나무들은 불법을 수호하면서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사천왕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 나무들은 거쳐 가야 할 문들이 없다 보니 쉽사리 대웅전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이 고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계절이 계절이다 보니까 앙상한 가지만으로는 제 생각처럼 대웅전을 가리지 못하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어 초록 잎사귀가 가득해지면 그때야 제 소임을 다할 것처럼 보였다.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은 돌계단을 오르자 영탑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면에 자리 잡은 대웅전은 좌우에 적묵당과 인법당, 공양간을 거느렸다. 

일부러 발걸음을 옮길 것도 없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산신각, 요사체, 유리광전이 보였다.

그리고 영탑사로 여행자를 이끈 칠층석탑이 나무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웅전 앞마당은 여느 사찰과 달리 유난히 넓었다. 

넓을 뿐만 아니라, 보는 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아무것 없이 휑했다. 

여느 사찰의 대웅전 앞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석탑이나 석등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텅 비었다. 

힘 빠진 겨울바람이 할 일 없이 대웅전 앞마당을 쓸고 지나가면 분위기는 한층 더 쓸쓸해졌다. 

그 텅 빈 앞마당을 보면서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과 무(無)를 떠올렸으니 선무당이 사람 잡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대웅전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야트막한 구릉에는 소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이루었다. 

소나무 숲이 있어 대웅전 앞마당의 쓸쓸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사찰에 왔으면 대웅전에 먼저 들르는 게 예의지만, 행사가 있는 것 같아 나중에 들리기로 했다.

그 바람에 곧바로 칠층석탑을 보러 갔다. 

칠층석탑은 유리광전 뒤에 있어 자연스럽게 유리광전을 보았다.

유리광전에는 거대한 바위에 약사 여래상이 양각되어 있었다.

지난 세월의 흔적을 가득 품은 3.5m 높이의 약사여래상을 모시고 있는 유리광전은 독특하게 눈에 들어왔다. 



유리광전을 지나 숲속 길을 오르면 나무들과 어우러진 칠층석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의 암석 위에 세운 칠층석탑은 원래 오 층이었는데, 1911년 중수할 때 이층을 더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눈여겨보면 상층부의 2단은 미세하게 아래쪽과 색깔이 같은 듯 달라 보였다.

석탑에 배어 있는 세월의 무게가 다르다 보니까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칠층석탑은 네모반듯하게 각진 형태로 쭉 뻗어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서 올려다보면 그렇게 당당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높이가 있어 그런지 간결한 모습 속에서 화려함이 엿보였다. 

그런데 왜 이곳에 석탑을 세웠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멋진 석탑이면 대웅전과 가까이 있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뚝 떨어진 높은 곳에 만들었을까?

우리 선조들이 생각 없이 이렇게 했을 리는 없고,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풀 길이 없었다.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딱 부러지게 알려주는 자료는 보이지 않았다. 

칠층석탑에서는 영탑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그렇게 내려다보고 있으면 석탑이 아니라, 마치 고승이 좌선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덕분에 여행자의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석탑을 구경하고 내려오다 보니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대웅전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돌아가신 분을 위해 제를 지내러 온 모양이었다. 

겨울의 끝자락이어서 그런지 그 모습이 영탑사에 쓸쓸함을 더해놓았다. 

오늘따라 떠나가려 하는 겨울이 왠지 안쓰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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