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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May 01. 2023

군자의 아름다움이 정자로 태어났다


지난 3월에 다녀온 당진 여행은 지금 생각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면천 읍성을 보고 났을 때, 점심시간이 꽤 지나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아 읍성 안에 있는 마을로 갔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으려고 마을을 돌아다녔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시간여행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덕분에 배가 등에 달라붙어 힘들었지만 정말 좋았다. 


좋았던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전국에 있는 경치 좋은 정자를 찾는다. 그럴 때마다 일부러 시간을 내야 하는데, 면천 읍성 마을 안에서 생각지도 않게 정자를 만났으니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그것도 묵직한 역사와 함께 멋진 모습의 정자라 복권이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도 정자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면천 읍성의 객사인 조종관에서 면천의 자랑거리인 은행나무를 구경하다가 저만치 발밑에 있는 정자를 발견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지만, 멋진 정자라는 걸 대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크게 기대한 건 아니었다. 생각지 않게 우연히 발견한 정자였기 때문에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정자가 눈길을 끌긴 했지만, 마을에서 지은 평범한 정자일 수도 있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대 반 의구심 반으로 정지를 보러 갔다. 정자의 이름은 군자정(君子亭)이었다. 군자정 입구에 있는 설명 비석을 보고 나서야 숨겨진 보물을 찾은 것처럼 흥분이 되었다. 그동안 좋다는 정자를 찾아 나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동안 보았던 정자들을 생각하면 정자가 자리 잡은 곳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정자는 산 좋고 물 좋은 경치 좋은 곳에 있거나, 아니면 사람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경치 속에 있다. 


둘 다 나름의 멋과 아름다움과 운치가 있다.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그래도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품은 정자가 더 좋다. 거기에 역사의 무게와 세월의 흔적이 보태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그런 정자를 만나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즐거움과 감동에 휩싸인다. 그렇다 보니까 정자 여행을 갈 때는 그 무엇보다 정자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살핀다. 



그런 점에서 보면 면천 읍성의 군자정은 후자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정자에 얽힌 역사의 세월은 흔치 않을 만큼 깊다. 군자정의 시작은 고려 공민왕 때, 군수라고 할 수 있는 지주사 곽충룡이 군자지를 수축하면서다. 그 뒤로 한참 세월이 흐른 조선 순조 때, 면천 군수가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어 팔각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고려와 조선의 두 왕조에 걸친 긴 세월의 흐름이 배어있다. 


연못에는 연꽃을 심었는데 진흙에서 나왔지만 물들지 않은 모습이 군자 같다고 해서 군자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처음 마주한 군자정은 팔각정이어서 그런지 크고 화려하게 보였다. 원래의 군자정이 없어진 후, 1959년에 면천 복씨 종친회장이 실제 크기보다 작게 지었는데, 그것을 허물고 1994년에 지금의 군자정을 새로 지었다.


그렇다 보니 정자의 단청은 새로 지은 것처럼 깨끗하고 선명했다. 그런 모습은 화려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정자에 얽힌 세월의 무게감을 보여주는 데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일까? 아름답고 멋있긴 한데 온전히 꽉 채워진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자가 좋아 여기저기 다녔다고 이젠 건방 끼가 들었는지 때론 내 기준의 잣대를 들이댄다.


군자정은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 앉아있다. 연못 주변에는 벚나무들이 많았다. 가느다란 가지를 늘어뜨린 벚나무와 연못과 정자가 하나로 어우러져 군자정만의 경치를 펼쳐놓았다. 때가 3월이라 아직 나무들은 길고 긴 겨울의 터널을 다 빠져나오지 못했다. 거무스름한 알몸으로 죽은 듯이 서 있는 모습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이것도 사계절이 뚜렷한 이 계절의 경치라 보는 게 즐거웠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의 군자정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게 틀림없어 보였다. 3월의 여행 이야기를 이제야 쓰고 있어 벚꽃이 활짝 핀 4월의 군자정 경치를 인터넷으로 보았다. 역시 예상한 대로 어디에 내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멋진 경치를 보여주었다. 이쪽 지역에서는 벚꽃이 피는 4월이면 벚꽃 명소 중의 하나로 군자정을 꼽는다고 한다. 


그런데 군자정을 보고 있으면 아쉬움인지 궁금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전체적인 균형 면에서 어색함이 느껴졌다. 그건 섬과 정자에 비해 연못이 작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세월이 흐르면서 어쩔 수 없는 변화가 있었겠지만, 다시 섬을 수축하고 새로 정자를 지으면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연못을 팔 때 나온 흙으로 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후에 새로 수축하면서 섬을 돌로 쌓았다는 이야기가 있는 걸 보면 무언가 변화가 있었던 게 아닌가 추측된다. 


군자정을 보는 즐거움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게 돌다리다. 연못을 가로질러 정자로 이어지는 돌다리는 멋스러운 또 다른 볼거리였다. 돌다리는 굵고 길쭉한 네 개의 자연석으로 만들었다. 전체 길이가 7.4m에 폭이 65㎝로 작지 않은 크기였다. 사람이 딛는 돌을 받치고 있는 교각의 돌들은 크고 굵은 돌에 작은 돌을 끼워 넣어 수평을 맞췄다. 


생긴 모습이 서로 다른 돌들이 세심한 손길로 어우러진 돌다리는 멋과 운치가 가득했다. 돌다리는 정자를 지을 당시에 만든 것이라 세월의 무게로 본다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돌다리는 세월의 더께가 쌓이지 않은 정자를 대신해 군자정의 지난 세월을 보여주었다. 


튼튼하게 보이지만 돌다리에 배어있는 세월과 함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지 건너는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웠다. 돌다리를 건너면 정자 앞에 서 있는 빗돌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담한 크기의 빗돌은 군자정의 문지기라도 되는 듯 살며시 고개를 숙여 찾아온 이를 반겼다. 그 모습이 거만하지도 그렇다고 굴종적이지도 않게 차분해 보였다. 


빗돌에는 흘림체로 ‘낭관호’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무슨 뜻일까? 낭관호는 당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시선(詩仙)이라 칭송받는 이태백이 뱃놀이를 즐겼던 호수라고 한다. 글씨가 이태백의 것이라고 하는데, 이태백이 군자정을 위해 글을 썼을 리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문헌에서 필요한 글자를 찾은 게 아닌가 싶다. 그나저나 우리 선비들의 배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군자정의 연못을 이태백이 뱃놀이를 즐겼던 그 넓은 호수에 빗댔으니 말이다. 


사람 손으로 만든 경치의 정자를 볼 때는 눈길을 가까이 두어야 한다. 멀리에서 경치를 찾는 게 아니라, 가까이에서 아름다움과 매력을 찾아야 한다. 소소한 경치이지만, 선비들이 둘러앉아 시대와 학문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정자가 지닌 진정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연못 밖으로 나와 군자정을 가운데 두고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면서 바라보았다. 늘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은근슬쩍 숨은 듯이 보이는 군자정의 모습이 역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만했다. 거기에 운치 있는 돌다리와 있는 듯 없는 듯 서 있는 빗돌이 보태지면 한 폭의 동양화가 완성된다. 벚꽃이 활짝 핀 계절에 두 눈으로 직접 군자정을 본다면 그 멋진 경치가 오죽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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