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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Jun 06. 2023

서산 어리굴젓과 영양굴밥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으면 제아무리 멋진 경치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같은 먹거리라도 여행에서 먹는 것과 일상에서 먹는 게 다르다. 일상에서는 건강과 삶을 위해 먹지만, 여행에서 먹는 건 그것 말고도 여행을 좀 더 즐겁고 풍요롭게 해준다. 그렇다 보니 여행에서 절반의 즐거움은 먹는 데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들은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지와 함께 그곳의 맛집을 찾는다. 나는 맛집이 아니라 그 지역의 토속 음식을 찾는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교통이 발달해서 지역의 특산물이 전국으로 유통된다. 그 때문인지 그 지역의 독특한 음식이 자취를 감추거나 대중화가 되었다. 또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먹을거리가 다양해지다 보니까 지역의 토속 음식을 찾기가 쉽지 않다.

충남 서산의 먹거리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어리굴젓’이다. 어리굴젓은 조선 시대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진상품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 충남 서산과 태안지역의 토속 음식으로 간한 굴에 고춧가루를 섞어 삭힌 젓갈이다. 불그레한 양념과 뽀얀 굴이 어우러져 먹음직스럽고 맛도 일품이다. 지방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 일부러 서산휴게소에서 어리굴젓 정식을 많이 먹었다. 

어리굴젓은 서산 간월도와 웅도에서 생산한 자연산 굴로 만든 걸 알아준다. 서산 굴은 다른 지역의 굴보다 크기는 작지만, 알이 단단해서 더 고소하다고 한다. 굴은 바다의 우유라고 부를 만큼 영양성분이 많다. 각종 비타민과 엽산, 아연, 철분, 칼슘 등이 많아 허약체질 개선이나 면역력을 높이는 데 뛰어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나저나 어떻게 어리굴젓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니 두 가지가 있다. 나무위키 사전에는 소금을 적게 사용한 간을 ‘얼간’이라고 하는데, 어리굴젓은 다른 젓갈류와 달리 소금을 적게 쓰기 때문에 ‘얼간을 한 굴젓’ 즉 ‘어리굴젓’이 되었다고 나와 있다. 사전이라 그런지 역시 논리적인 해석이다.

그런가 하면 조선 광해군 때 영의정을 지낸 사람의 후손이 낙향해 굴에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얼얼하게 젓을 담근 이후 ‘얼얼하다’라는 의미에서 어리굴젓이라는 명칭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게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토속 음식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이야기가 있는 후자에 더 마음이 간다. 

간월도 인근에 가면 어리굴젓 파는 곳이 한 집 건너 있다. 그만큼 지역의 토속 음식이란 걸 알 수 있고, 시대를 떠나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그곳에는 어리굴젓을 파는 곳과 함께 영양 굴밥집이 많다. 그런데 영양 굴밥도 토속 음식일까? 궁금해서 찾아봤지만, 영양 굴밥이 토속 음식이라고 단정한 내용은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추측건대 굴밥은 토속 음식일 것 같다. 예로부터 우리의 주식은 밥이었다. 지역마다 그 지역의 특산물을 넣어 지은 다양한 밥들이 있다. 꼭 특산물이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것을 넣어 만든 밥이 많다. 그것을 보면 굴이 흔했던 이곳 지역에서는 예부터 굴을 넣어 밥을 해 먹지 않았을까 싶다. 영양이라는 말이 붙은 건 근래에 들어 마케팅 차원에서 붙였을 것이다.

아마 7~8년쯤 되었을 거다. 부산 친구 아들 결혼식이 있어 아내와 큰딸과 함께 여행을 겸해 부산에 가면서 간월도에 들렀다. 점심으로 먹으려고 찾은 곳이 간월도 인근에 있는 영양 굴밥집이었다. 우리가 찾았던 집은 그때도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지금 같지는 않았다. 그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 아내와 보령 여행을 가면서 일부러 그 영양 굴밥집을 찾았다. 나는 그때 가보고 처음이니까 무척 오랜만이었지만, 아내는 중간에 지인들과 두어 번 다녀왔는지 그 집의 위치를 정확히 기억했다. 



이번에 부처님 오신 날은 3일간의 황금연휴였다. 아쉽게도 부처님 오신 날은 물론 이튿날도 비가 내렸다. 올해 들어 이틀간 줄기차게 비가 내린 건 처음이었다. 연휴 둘째 날에다 비까지 내리고 있어 식당에 사람들이 많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도착하니까 식당은 이미 만원이었고,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기 순서가 다섯 번째였다. 아는 사람만 찾았던 그 집은 이제 서산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그러다 보니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이 밀려들면서 초심을 잃어버린 집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한때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리던 곳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휑하니 변해 있는 곳을 여러 번 보았다. 생각보다 일찍 자리가 났다. 예전에는 이것저것 시켜 먹었지만, 이번에는 영양 굴밥만 주문했다. 

영양 굴밥은 솥 밥으로 나오니까 시간이 걸린다. 거기에 사람까지 많으니 더딜 수밖에 없다. 기다리기가 무료하다 싶을 때, 제법 큰 굴 부침개가 먼저 나왔다. 막 부쳐 나온 것이라 입맛이 당겼지만, 선뜻 젓가락을 내밀지 못했다. 이제는 먹는 양이 줄어 어떤 것이고 많이 먹지 못한다. 부침개로 배를 채우면 영양 굴밥 맛이 떨어질까 싶어 망설였다. 

그렇지만 배가 살짝 고픈 상태여서 부침개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 맛만 보자는 생각으로 부침개의 한쪽 귀퉁이를 떼어내 양념간장에 찍어 먹었다. 비 오는 날에는 막걸리에 파전이라는 국민 공식이 있는 것처럼 정말 맛있다. 따끈함과 고소함이 어우러져 입맛을 사로잡았다. 맛만 보자는 생각은 이내 사라지고 결국 부침개를 다 먹어 치웠다. 

부침개를 먹고 나니까 반찬이 들어왔다. 무생채와 콩나물무침을 비롯한 반찬들은 정갈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건 역시 어리굴젓이었다. 간월도에 왔는데 어리굴젓이 빠지면 섭섭하다. 또 영양 굴밥을 먹을 때는 어리굴젓과 함께 먹어야 그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다른 반찬과 함께 나왔지만 넉넉하게 담아 내놓았다. 은근슬쩍 어리굴젓을 내 앞으로 당겨 놓았다.

곧이어 상 한가운데에 청국장이 놓였다. 반찬들을 비집고 가운데를 차지한 청국장은 마치 제가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당당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청국장은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도 청국장의 진하고 깊은 맛이 느껴졌다. 



주인공은 나중에 등장하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영양 굴밥이 담긴 작은 솥이 나왔다. 종업원이 영양 굴밥을 놓아주면서 친절하게 먹는 법을 알려주었다. “솥 밥을 빈 그릇에 옮겨 담은 후에 무생채와 콩나물무침을 적당히 넣고, 참기름과 간장을 넣어 비벼 드셔요!” 종업원이 일러준 방법도 좋지만, 영양 굴밥의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어 약간의 간장과 참기름만 넣고 맛을 보았다.

영양 굴밥에는 당연히 굴이 들었고, 그 외에 은행과 버섯 등의 재료가 들어있다. 양념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촉촉한 풍미가 입안에 가득해졌다. 그렇게 한입을 먹고 나면 으음~~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새어 나온다. 그렇다고 그렇게만 먹으면 영양 굴밥의 참맛을 놓치고 만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영양 굴밥의 최고의 맛은 어리굴젓과 김이 어우러질 때다. 김은 조미김이나 소금을 뿌려 구운 김은 안된다, 굽지 않은 김에다 영양 굴밥을 올리고 그 위에 화룡점정으로 어리굴젓을 얹는다. 그렇게 싸서 한입에 먹으면 맛에 대해서는 더 길게 말할 게 없다. 아이들 말마따나 게임아웃이다. 맛있는 걸 먹었을 때 하는 표현으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너무 흔해서 싫증 나지만, 이 순간에는 그것만큼 어울리는 표현이 없다.

매콤하고 짭조름한 어리굴젓이 삼삼한 영양 굴밥의 맛을 높여준다. 어리굴젓의 강한 맛이 입안을 헤집고 다닐 때, 은근슬쩍 김이 나타나서 입안을 토닥거려준다. 한번 이 조합에 맛을 들이면 영양 굴밥을 다 비울 때까지 이 조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상 위에 놓여 있는 다른 반찬들이 머쓱하게 보여 왠지 미안했다. 

일부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식당이 초심을 잃지 않고 있어 다행이었다. 언제 다시 또 찾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변함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틀째 내리는 비는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맛있는 영양 굴밥을 먹은 덕분에 다음 목적지를 위해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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