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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Aug 12. 2023

이곳이라면 여름날의 바닷가 추억을 멋지게 만들 수 있다

여름휴가가 절정이다. 8월이 시작되는 날, 강원도 동해에 있는 해수욕장은 피서객들로 북적인다. 여름이라고 휴가나 피서를 가 본 지 오래됐다. 예전엔 에어컨이 정말 귀해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선풍기나 부채로 긴 여름을 났다. 그 시절 여름에는 무더위를 피해 너나 할 거 없이 시원한 바다와 계곡으로 피서를 떠났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7월 말과 8월 초 사이가 피서의 절정기였다. 

요즘은 집은 물론, 어지간한 건물에는 에어컨이 다 설치되어 있다. 밖에 나가지 않으면 여름을 모른 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 어떤 곳은 너무 세게 에어컨을 틀어서 춥고, 냉방병에 걸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다 보니까 일부러 피서를 가는 게 덥고 더 힘들다. 에어컨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차라리 일하거나 집에서 시원하게 보내는 게 훨씬 더 좋다. 여름휴가는 묵혀두었다가 날씨 좋은 계절에 사용했다. 

휴가철이라 고속도로에 차가 밀린다는 뉴스가 나와도 그때뿐 금방 잊어버린다. 이젠 여름이 되어도 언제가 휴가철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산다. 지구온난화 때문이지 여름 더위가 점점 더 기승을 부린다. 이제는 덥기만 한 게 아니라, 열기 속에 습기가 잔뜩 묻어있어 마치 사우나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여름이니까 예전에도 당연히 더웠다. 그래도 그때는 그늘에만 들어가도 시원했고, 부채질이나 선풍기만 틀어도 그럭저럭 더위를 물리칠 수 있었다. 요즘 무더위는 그걸로 턱도 없어 에어컨을 끼고 살 수밖에 없다. 날씨가 무더워서 그런지 요즘 들어 시원한 물회 생각이 많이 났다. 서울에도 물회 잘하는 집들이 많아 일부러 먼 곳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물회를 핑계 삼아 당일치기로 고성에 간 건 여행이 고팠기 때문이다.



막상 집을 나서자 그때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8월이 시작되는 첫날이라 휴가의 절정기다. 그동안 따로 여름휴가를 다니지 않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차 싶었던 건 휴가철이라 고속도로가 밀리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차가 길게 늘어선 고속도로에서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상황은 정말 고역이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어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어쩐 일인지 고속도로가 하나도 막히지 않았다. 일찍 서둔 덕분이지 아니면 휴가 가는 사람이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점심은 고성 막국수를 먹고, 오후에 물회를 먹은 다음 서울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날씨가 가당치 않게 더워 먹는 것 말고는 다른 일정을 생각하지 않았다. 막국수에 수육까지 곁들여 먹는 바람에 배가 많이 불렀다.      

어디 시원한 카페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까 했는데 아무래도 소화를 시킬 겸 어디라도 둘러보아야 할 것 같았다. 어디를 가지? 휴가철을 맞은 여름날 고성에 왔는데 수영은 그렇다 쳐도 바닷물에 발이라도 담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고성을 드나들면서 알게 된 아야진 해수욕장이 떠올랐다. 이름이 재밌고 독특해서 언젠가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아야진 해수욕장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딱히 휴가철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예전과 달리 휴가철인데도 도로가 붐비지 않았다. 그 착각은 아야진 해수욕장에 들어서자마자 무참히 깨졌다. 주차장은 물론 도롯가에도 차들이 가득했다. 차들이 이렇게 많으니 아야진 해수욕장에 사람이 넘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차를 세울만한 공간이 없을뿐더러 그 인파에 들어갈 자신이 없어 도망치듯 아야진 해수욕장을 빠져나왔다. 

     

그래도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잘라야 하는데 어딜 가지? 핸드폰에서 이곳저곳을 찾다가 백도해변이 눈에 들어왔다. 백도해변? 그동안 고성을 여러 번 드나들었지만, 백도해변은 알지 못했다. 처음 가는 곳이라 경치가 어떨는지는 몰라도 사람은 많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 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순간적인 결정이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백도해변은 여느 해수욕장과 달리 아담하게 보였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동해안에 알려진 해수욕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적어 무척 여유로웠다. 바다에 들어간 사람들을 보면 수심이 낮아 해수욕을 즐기기에 아주 좋아 보였다.


해변 한쪽 끝에서는 사람들이 서핑을 즐겼고, 해변 소나무 숲에는 오토 캠핑장이 있어 많은 사람이 바닷가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백도해변은 깔끔하면서도 여유로워서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겼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아야진 해수욕장을 보고 와서 그런지 백도해변이 더욱더 마음에 들었다. 한편으로는 휴가철인데도 왜 이렇게 여유로운지 그게 궁금했다. 

그래서인지 백도해변은 오토 캠핑장을 찾은 캠퍼들의 전용 해변같이 생각되었다. 숨겨져 있던 여행지를 찾아낸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해변을 걷다가 갑자기 밀려드는 파도를 제대로 피하지 못했다. 바닷물에 발이라도 담그려고 했지만, 모래를 털어내고 물기를 닦아내는 게 귀찮아 그냥 걸었다. 그런 마음을 눈치챈 파도가 이때다 싶어 심술궂게 두 발을 적셔버렸다.

한 번의 파도에 운동화가 흥건하게 젖었다. 어찌 되었든 애초 생각대로 바닷물에 발을 담근 꼴이 되었다. 운동화와 양말과 맨발 사이에 낀 바닷물 때문에 찝찝한 느낌을 떨쳐낼 수는 없었지만, 여름 바닷가를 왔다 간 증빙만은 확실히 되었다. 


아이가 백사장 모래 파는 재미에 푹 빠졌다. 작은 삽으로 얼마나 열심히 팠는지 제법 깊게 파였다. 어디까지 파려는지 아이의 삽질은 멈추지 않았다. 한낮의 열기와 땡볕도 아이의 모래놀이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알록달록한 튜브에 몸을 실은 사람들이 여름 바다를 즐기는 모습만 보아도 시원함이 느껴졌다.


해변에는 그늘막을 친 평상들이 놓여 있어 편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니까 학창 시절에 해수욕장으로 놀러 다녔던 추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숙박시설이 많지 않았고, 주머니가 가벼웠던 그때는 다들 텐트를 쳤다. 넓디넓은 백사장에는 발 디딜 틈 없이 텐트가 빼곡하게 들어찼다. 그때 사진을 요즘 젊은 사람들이 보면 난민촌으로 착각할지 모른다. 밤이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기타 치며 노래 부르던 지나간 젊은 날의 추억이 꿈만 같다.

백도해변 옆에는 자그마한 문암2리항이 있다. 백도해변에 붙어있어 해변을 찾은 이들에게는 서비스의 볼거리이다. 포구를 둘러싼 방파제가 있고, 등대가 있어 무척 정겹게 보였다. 포구 안에는 한낮의 열기에 축 늘어진 배들이 죽은 듯이 쉬고 있다. 한눈에 들어오는 포구의 모습은 마냥 여유롭고 한가롭다. 세상이 까맣게 잠든 이른 새벽에 바쁘게 돌아갔을 포구는 이제야 느긋하게 모자란 잠을 채우고 있다. 늘 부산하게 움직이는 큰 항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매력을 보여준다. 이곳에는 가리비가 많이 나는 모양이다. 

포구 한쪽에서 가리비를 구워 먹고 있다.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뜨거운 불판 앞에서 가리비를 구워 먹는 사람이 제법 있다. 백도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다가 한낮의 열기가 수그러들 때쯤 포구에서 가리비를 먹으면 여름날 이곳만의 멋진 추억이 될 것 같다. 사람이 많지 않고 여유로워서 기회가 된다면 백도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겨보고 싶다. 바닷물에 들어가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에서 사라졌다. 오래전에 사놓은 수영복을 여태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다. 서랍 속에 있는지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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