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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Aug 21. 2023

내년에는 이곳에서 피서를 즐겨보아야겠다


얼마 전, 강원도 고성을 다녀왔다. 구경하는 것보다 맛있는 거나 먹고 드라이브나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길이 생각지 않게 알찬 여행이 되었다. 떠나던 날은 휴가철의 절정이었는데, 웬일로 고속도로가 뻥 뚫려있어 기분 좋게 고성에 도착했다. 점심을 그득하게 먹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게 백도해변을 보았다. 


생각했던 일정은 오후 늦게 물회를 먹고 서울로 돌아가는 거였다. 그러려면 한참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가볼 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어딜 보겠다는 생각 없이 떠난 길이라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이웃 블로그를 찾는다. 


이곳저곳을 기웃대다가 여행작가학교 동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백섬 해안전망대’를 발견했다. 열심히 전국 여행을 하는 동문이 소개하는 곳이라 일단 신뢰가 갔고, 블로그에 올라 있는 사진들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 여기다!’ 내비게이션에 백섬 해안전망대를 입력하고 들뜬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금방 백섬 해안전망대에 도착했다. 짙푸른 동해를 끼고 나 있는 해안도로 옆으로 뾰족한 삼각형의 커다란 바위와 해안 데크가 눈에 들어왔다. 해안도로와 전망대가 연결되어 있어 쉽게 눈에 띄었고 접근하기도 편했다.


사진을 보면서 대략 짐작은 했지만, 주변 경치는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만큼 좋았다. 하긴 해상전망대를 세운 곳이니 어련하겠는가. 백섬은 크고 작은 바위들로 이루어졌다. 그중의 제일 큰 바위에 해상전망대가 연결되어 있다.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당당하게 서 있는 커다란 바위는 날카롭고 뾰족한 게 꽤 거칠어 보였다. 알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거친 바다를 상대로 버텨냈으니 그럴 만했다.



백섬 해상전망대는 거진항 어촌관광 체험 마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되어 2020년에 개방되었다고 한다. 고성을 여러 번 드나들면서도 몰랐던 건, 그만큼 생긴 지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잔돌이 많아 ‘잔철’이라 불렀는데, 제일 큰 바위가 갈매기 배설물로 하얗게 보여 백섬이 되었다고 한다. 


나름 독특한 이름이라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나 싶었는데, 갈매기 배설물 때문에 그랬다니까 슬쩍 웃음이 나왔다. 지금도 갈매기 배설물이 많은가 싶어 보았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도 짙은 갈색 바위에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는 걸 보면 그 말이 틀린 건 아닌 것 같다. 휴가철이지만 사람들로 복잡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왔다. 


전망대로 이어지는 해안 데크에 들어서면 시원한 바닷바람이 달려와 반갑다고 얼싸 안겼다. 징그럽게 달라붙었던 찌는 듯한 더위가 간단하게 떨어져 나갔다. 푸르다 못해 짙푸른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바다 색깔만큼이나 진하고 시원했다. 


그래도 계절이 계절이니만치 시원한 바닷바람 속에는 계절의 눅눅함이 은근슬쩍 배어있다. 그렇긴 해도 에어컨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바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시원함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수평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푸른 바람이 있어 굳이 바다에 들어가지 않아도 시원한 여름이 느껴졌다. 



해상전망대 꼭대기에서 내려보는 경치는 밑에서 보는 것과 달랐다. 밑에서 보는 경치가 일반 렌즈로 찍는 사진의 경치라면 위에서 보는 경치는 광각렌즈로 찍은 사진처럼 넓고 시원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다라고 해서 색깔이 다 같지 않다. 해안가의 바다는 예쁜 쪽빛이지만, 조금만 멀어지면 그때부터는 푸르름이 쌓이고 쌓여 짙푸르다. 


백섬 해상전망대 옆에는 거진1리 해수욕장이 있다. 해수욕장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해수욕장처럼 백사장이 있는 게 아니라, 해변은 몽돌과 자갈로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까 해수욕장이면서도 해수욕장 같지 않은 이곳만의 경치와 분위기를 보여준다. 해변의 그런 모습은 백섬과 훨씬 더 어울려 보였다. 


해수욕장 앞으로 펼쳐진 바다에는 백섬을 이루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저마다의 자리를 차지했다. 아무 데나 마음대로 놓인 게 아니라, 누군가가 멋스럽고 조화롭게 배치해놓은 것 같았다. 백섬과 해수욕장이 어우러져 여느 해수욕장에서 볼 수 없는 이곳만의 멋진 경치가 완성되었다. 이 멋진 경치를 보고 있으면 평범한 해수욕장보다 좀 더 근사한 이름을 붙였으면 좋겠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있는 쪽빛 바다는 더위를 피해 온 사람들의 물놀이터다. 물이 얼마나 맑은지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위에서 보면 물속의 깊이가 일정치 않아 보이고, 어떤 곳은 꽤 깊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스노클링과 투명 카약을 타면서 여름 바다를 즐겼다. 



투명 카약은 그렇다 쳐도 스노클링은 정말 해보고 싶다. 바닷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곳이라 스노클링의 재미가 한껏 더 클 것만 같다. 핑계지만 조금만 젊었어도 당장 내려가 스노클링을 했을 거다. 공짜라고 넙죽 받아먹은 세월 때문인지 이젠 마음만 앞서지 자꾸 망설여진다. 


수영 실력이 좋은 사람들은 바위 절벽에서 다이빙을 즐긴다. 물고기를 잡으려는 새가 날렵하게 물속으로 파고드는 것처럼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멋있다. 그들이 과감하게 바다로 몸을 던질 때마다 바다에서 하얀 물거품이 솟아올랐다. 그 모습을 보면 마치 내가 바다로 뛰어든 것처럼 시원하게 느껴졌다. 


멀쩡했던 팔에 닭살이 돋는 걸 보면 그 느낌이 제대로 전해진 모양이다. 수평선 너머가 궁금할 만큼 툭 터진 푸른 바다와 크고 작은 바위들 그리고 그 속에서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어 이 여름날의 멋진 경치와 낭만이 완성된다. 


생각지 않게 여행했는데, 가보지 못한 곳을 보게 되어 더욱 알찬 여행이 되었다. 두 곳 모두 내게는 숨겨진 고성의 멋진 볼거리여서 기분이 좋았고, 그만큼 더 즐거웠다. 올해도 역시 피서 여행은 가지 않았다. 여행이 일상이 되어 버린 요즘 때맞추어 여행가는 게 더 어색하다. 그것도 사람들에 이리저리 치이는 여행은 끔찍이 싫다. 어쨌든 피서철에 고성을 다녀왔으니까 누가 물으면 피서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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