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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Sep 20. 2023

짬뽕은 역시 국물 맛이 승부처다!

중국집에 갈 때마다 하는 즐거운 고민이 있다. 그 고민은 중국집에 가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중국집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된다. 먹을 음식을 선택하기 위한 고민치고는 그 시간이 길다. 평소 그러지 않던 사람도 마치 결정 장애가 있는 것처럼 오락가락하기 일쑤다. 어쩌다 한번 큰마음을 먹어야 하는 값비싼 음식도 아닌데 말이다. 


그게 무엇 때문이냐고? 바로 짜장이냐? 짬뽕이냐의 선택이다. 이 두 음식은 중국집을 지탱하는 대표 음식으로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생긴 모양부터 맛까지 두 음식은 극과 극으로 다르다. 이렇다 보니 짜장을 먹으려고 하면 짬뽕의 얼큰함이 아른거리고, 짬뽕을 먹자니 짜장의 매혹적인 맛이 못내 아쉽다. 짜장이냐 짬뽕이냐를 놓고 벌어지는 선택의 갈등은 시작된 지 오래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중국집에서 짜장과 짬뽕을 동시에 먹을 수 있는 짬짜면을 내놓았다. 처음 나왔을 때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는데, 언제인가부터 인기가 주춤해졌다. 왜 그럴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떤 걸 고를까 하는 행복한 고민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지 싶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자체가 알고 보면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이 있어 음식의 맛이 더 살아난다. 


개인적으로는 얼큰한 짬뽕을 더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중국집에 가면 생각과 달리 짜장을 주문할 때가 많다. 전날 술을 먹었거나, 날씨가 우중충하고 추우면 여지없이 짬뽕을 선택하지만. 전체적인 주문 비율을 보면 “짜장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렸을 때는 지금 같지 않았다. 그때는 중국집의 대표 메뉴가 짜장과 짬뽕이 아니라, 짜장과 우동이었다. 아이들은 백이면 백 다 짜장을 좋아했지만, 어른들은 뜨끈한 국물의 우동을 많이 드셨다. 그러던 게 어느 때인가부터 소리소문없이 우동이 밀려나고, 그 자리에 짬뽕이 들어서면서 짜장과 짬뽕이 중국집의 양대 산맥이 되었다.


한번 치고 올라온 짬뽕의 기세는 지금도 식을 줄 모른다. 나이 먹어가면서 칼칼한 짬뽕이 좋기는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짜장을 많이 먹는 편이다.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중학교 때. 친구 집에서 먹었던 짬뽕 맛 때문이다. 첫사랑이 쉽게 잊히지 못하는 것처럼 어렸을 때 먹었던 그 짬뽕 맛의 기억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친구네가 중국집을 한다는 건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우리 동네와 멀리 떨어져 있어 가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그 친구 집에서 짬뽕을 먹게 되었다. 그때 먹었던 짬뽕은 요즘 젊은 친구들의 표현처럼 인생 짬뽕이었다. 얼마나 맛있었던지 그 맛과 모양을 지금도 기억한다. 


친구네 집 짬뽕은 특이하게 잘게 썬 김치가 들어 있었다. 양배추나 생배추가 아닌 분명 김치였다. 아마 담근 김치를 씻어서 썰어 넣은 게 아닌가 싶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국물 맛이 정말 좋았다. 짬뽕은 뭐니 뭐니 해도 국물이 생명이다. 그 짬뽕의 국물 맛은 시원하면서도 깔끔하게 칼칼했다. 그야말로 입에 착착 감겼다. 


요즘 먹는 짬뽕의 국물 맛은 날카롭게 매워서 입 안이 얼얼해진다. 칼칼한 맛이 아니라 억지로 맵게 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많은 곳에서 짬뽕을 먹었지만, 친구 집에서 먹었던 그 맛을 찾지 못했다. 아마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그때 까까머리 중학생이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으니, 그 짬뽕을 만들던 친구의 아버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짬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많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했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3대 짬뽕이니 5대 짬뽕이니 하는 집들이 있다. 그 짬뽕을 먹으려고 먼 곳까지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호기심이 가기는 한다, 그래도 일부러 찾아갈 만한 열성은 없다. 거기엔 인생 짬뽕에 대한 기억이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는 것도 한몫한다. 


처형들이 사는 고창은 심심찮게 드나든다. 서울로 돌아올 때는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니까 군산을 거쳐야 한다. 군산에는 우리나라 3대 짬뽕집으로 꼽히는 중국집이 있지만, 지금까지 일부러 찾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창에서 돌아오는 이번 길에 느닷없이 짬뽕 생각이 났다. 기왕이면 이름이 알려진 집에서 먹어보자는 생각에 군산으로 차를 몰았다. 


가면서 확인해보니 그 중국집은 오후 4시에 문을 닫는다. 그만큼 사람이 많아 맛과 질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만 판매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다. 그래도 군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 없어 갈만한 집을 찾았다.


그렇게 찾아간 집은 두 종류의 짬뽕을 팔았다. 조개 짬뽕과 전복 짬뽕이었다. 전복 짬뽕에 살짝 마음을 흔들리긴 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맛은 조개 짬뽕이지 싶어 조개 짬뽕을 주문했다. 식당 벽에 붙어 있는 신문 기사를 보면 이 집도 꽤 오래된 식당이다. 또 주문받으면 그 즉시 조리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어 나름 기대감이 커졌다.


다른 중국집보다 나오는 속도가 조금 늦긴 했지만, 지루할 정도는 아니었다. 짜장이나 짬뽕을 먹을 때 나오는 건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닌데 전국이 통일되어 있다. 노란 단무지와 양파 그리고 춘장이 전부다. 전국 어디서나 나오는 그것들이 이곳에서는 은근히 짬뽕 맛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부재료처럼 여겨졌다. 


드디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조개 짬뽕이 나왔다. 미식가들처럼 눈으로 먼저 먹는 수준은 아니지만, 어떤 게 들었는지 궁금해서 먹기 전에 짬뽕부터 살펴보았다. 조개 짬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조개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짬뽕에서 빠질 수 없는 홍합을 비롯해 꼬막 등 서너 가지 조개가 정말 푸짐하게 들어갔다. 


짬뽕이 나올 때. 빈 그릇을 놓아주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조개를 빼고 나면 면과 함께 약간의 양파와 양배추밖에 없다. 이걸 보면 이 집 짬뽕은 국물과 면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먹기 편하게 먼저 조개를 건져냈다. 조금 과장해서 조개는 건져도 건져도 계속 나왔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나서 국물 맛을 보았다. 마치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이 아니 음식 평론가가 된 것처럼 진지하게 국물을 먹었다. 사실 처음 짬뽕이 나왔을 때, 국물 색깔을 보면서 국물 맛을 나름 유추했었다. 그 생각과 다르지 않게 국물 색깔에 딱 어울리는 맛이었다. 


요즘에 먹는 짬뽕은 매운맛이 눈으로 느껴질 정도로 새빨갛다. 이 집의 짬뽕은 빨갛다는 표현보다 불그스름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입 안이 얼얼해지는 예리한 매운맛이 아니라, 깔끔하면서도 짬뽕 본연의 칼칼함을 놓치지 않았다. 예전처럼 그릇째 들고 마셔도 될 정도로 입에 감기는 맛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 맛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옛 친구 집의 짬뽕 맛을 떠올리게 했다. 친구 집처럼 씻은 김치가 들어가 어우러졌다면 바로 그때의 짬뽕 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입만큼 간사한 게 없다. 또 사람마다 입맛이 달라 음식을 놓고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래도 이렇게 짬뽕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군산에서 먹었던 짬뽕이 꽤 맛있었던 모양이다.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처음으로 배신감을 느낀 때가 있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대중목욕탕에 가면 뜨거운 물에 들어간 아버지가 “아! 시원하다” 하시면서 들어오라고 했다. 김이 펄펄 나서 뜨거울 것 같았지만, 설마 아버지가 날 속이랴 싶어 탕 속에 발을 넣었다가 질겁했던 기억이 있다. 오래전, 아버지는 하늘의 별이 되셨다.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보니까 아버지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온탕에 들어가면 시원하게 느껴진다. 그것처럼 짬뽕의 뜨거운 국물 맛도 예전에 먹었던 것처럼 칼칼함 속에 시원함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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