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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Sep 19. 2020

바다가 시작하는 곳에서 상상의 낙조를 펼친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구봉도 낙조 전망대를 회로에 입력한 내비게이션은 앞으로 300여m를 더 가라고 재촉한다. 코앞에 있는 구봉도 공영주차장 뒤에는 대부해솔길 입구가 보인다. 순간적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멈칫댄다. 기록을 갈아치울 만큼 길었던 장마가 끝나자 여름 날씨가 감추고 있던 본색을 드러낸다. 더운 날씨라 못 이기는 척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가야 할지, 그래도 걸으려고 마음먹은 여행길인데 어떡할까 갈등한다. 결국 더 가기를 그만두고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주차장에 차를 세운 게 현명한 결정이었다.

 

주차장 뒤에 있는 산에 “대부해솔길”이라고 써 붙인 작은 문이 세워져 있다. 초행길이라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마침 문 앞에 앉아 계시는 노부부에게 다가가 길을 여쭌다.  

"이 길이 구봉도 낙조 전망대로 가는 길 맞습니까?“

“네~”

“거기까지 많이 가야 합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요. 여긴 길이 넓은데 금방 좁아져요.”

“아~~ 예! 고맙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산길로 들어선다. 멀지 않다는 것이 다행이다 싶을 때,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이정표에 나와 있는 길이는 낙조 전망대까지 2.1Km이다. 매일 운동 삼아 6~7Km 정도 동네 산길을 걷는다. 2.1Km 정도는 어르신 말씀처럼 멀지 않아 가볍게 걸을 수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네 산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는 완만한 길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울창한 나무숲이 따가운 햇볕을 가리고 있어 걷기에 아주 그만이다. 금방 길이 좁아지긴 했어도 수많은 이들이 오간 길이라 걷는데 불편한 것은 없다. 임시공휴일까지 생긴 연휴가 끝난 다음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가끔 혼자 걷는 사람과 마주칠 뿐이다.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 산인데도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어스름하다. 나무 사이로 저 멀리 펼쳐진 바다가 보이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바다를 바라본다. 뿌옇게 가려진 저편의 바다와 인간의 구조물들이 어울리는 듯 안 어울리는 듯이 하나가 된다.  

군데군데 이정표와 표식이 있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길이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은근히 부대낀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 왠지 모르게 발걸음에 흥이 들어가지지 않는다.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시간을 재지 않았지만 느낌상 제법 걸은 것 같은데도 낙조 전망대는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무슨 놈에 2.1Km가 이렇게 머냐고 혼자 투덜댄다.

  

그때 앞에 가고 있는 대여섯 명의 중년 남자들이 보인다. 밤에 낯선 국도를 달릴 때, 앞에 가는 차가 있으면 그 뒤를 따라가는 게 운전하기 편하다. 그것처럼 혼자 심심하던 차라 그들과 20여m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뒤따라간다. 오랜만에 만나 친구들인지 계속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앞서가는 발걸음이 더디다. 그 바람에 내 걸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면 물어보지 않아도 목적지는 같을 게 뻔하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급한 내리막길이 나온다. 내리막길을 먼저 내려간 그들이 밑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바다 쪽을 살핀다. 그러더니 발걸음을 돌려 다시 올라온다. 무슨 일이지? 뭐가 잘못됐나 싶어 올라오는 사람에게 묻는다.  

"이 길이 낙조 전망대 가는 길이 아닙니까?" 

"아니요. 맞는데 저 밑에 길이 바닷물에 잠겨 못 갈 것 같은데요." 

"네??"

"가보셨다가 못 갈 것 같으면 그냥 돌아오세요." 

그 말을 남기고 그들은 미련 없이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여태 산길로 왔는데 왜 저 밑에 있는 바닷가 길을 말하지?’ 

일단 그들이 섰던 곳으로 내려가 바닷가를 살핀다. 해안을 따라 나 있는 콘크리트 포장길이 바닷물에 잠겨 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산길로 왔고, 산길이 이어져 있는데 저 밑에 길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주변을 살펴봐도 해안가로 내려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또 높은 산길에서 바닷가 길로 내려가야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다. 되돌아간 그들의 말이 확신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되돌아갈 수는 없다. 왔던 길과 이어지는 길이 있고, 지금까지 걸어온 것이 아까워 그냥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이럴 때면 가슴 어느 한구석에 숨죽이고 있던 여행 욕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이놈의 여행 욕심 때문에 두어 번 오금이 저리도록 놀란 적이 있는데도 그 욕심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래! 못 먹어도 go다.

되돌아오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다시 길을 걷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물이라도 한 병 사서 올 걸 하는 후회가 뒤늦게 밀려온다. 다행히 길은 이어진다.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고 하는데 좋은 일도 그런가 보다. 때마침 여자분이 걸어온다. 구세주를 만난 것 같은 반가운 마음으로 길을 묻는다. 묻는 말에는 틀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게 담긴다. "이 길이 낙조 전망대 가는 길 맞지요?" “네~~” 여자분의 대답은 짧고 분명하다. 그제야 마음이 환해진다. 

‘아니 그 사람들은 뭐야?’

  

조금 더 길을 가자 관광 지도에서 보았던 개미허리 아치교가 나타난다. 아치교에서는 나무에 걸림 없이 툭 터진 바다가 보인다. 관광 지도에는 아치교가 있는 개미허리가 하나의 육지로 되어 있다. 그런데 밀물 때여서 그런 건지 아치교 밑으로 바닷물이 흐르고 있어 아치교는 개미허리처럼 섬과 섬을 이어주고 있다. 지형의 생김새를 보면 개미허리라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

 

아치교 한가운데 서서 잠시 바다 구경을 한다. 드넓은 바다도 더위에 지쳤는지 잔잔하다. 수평선은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게 뿌옇게 흐려있다. 먼바다는 숨죽인 듯 잔잔한데, 아치교 밑을 빠져나가는 물살은 뜻밖에 거칠다. 두 섬으로 나누어진 개미허리를 통과하는 바람은 시원하다. 그 바람에 티셔츠에 뱄던 땀까지 날아간다. 개미허리까지 왔으니 이제 낙조 전망대는 다 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구봉도 낙조 전망대를 가는 게 이 정도일지 몰랐다. 사람들이 찍은 낙조 전망대 조형물과 개미허리 아치교 사진을 여러 번 보았다. 가보지 않은 곳이라도 사진으로 자주 보면 마치 가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손쉽게 갈 수 있는 곳이라 착각한다. 개미허리에서 보니까 내비게이션이 공영주차장을 지나 왜 더 가라고 했는지 대략 짐작이 간다. 나중에 돌아올 때 알았지만, 바닷가 콘크리트 길 끝에 있는 종현어촌체험마을 주차장으로 안내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했으면 길이 바닷물에 끊겨 낙조 전망대 근처도 못 가보고 돌아갈 뻔했다.

 

아치교를 건너 계단을 오르자 다시 급한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내리막길 끝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내려가자 해안가에 높이 세워진 데크 길이 나온다. 그 길 끝에 구봉도 낙조 전망대 조형물이 하늘을 찌를 듯이 날카로운 기세로 서 있다. 오후의 뜨거운 태양이 사정없이 햇살을 쏟아낸다. 바다를 뜨겁게 달구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맹렬하다. 그 햇살과 열기를 피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방법 아닌 최선의 방법이다.

 

그래도 구봉도 낙조 전망대로 나를 이끈 조형물이 눈앞에 있어 발걸음이 가볍다. 여행하면서 해돋이나 해넘이를 잘 보지 못한다. 게으른 것도 있지만, 시간을 맞추어야 하는 강박감을 느끼는 게 무엇보다 싫다. 그때 보는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알지만, 마음껏 자유를 즐기려고 떠난 여행에서 시간의 족쇄를 차고 싶지 않다.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다. 여름이라 해지는 시간이 더 멀다.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에 낙조의 경치를 상상력으로 덧칠할 생각이다. 낙조 전망대에서 찍은 해넘이 사진을 많이 봐서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그 어느 때보다 쉽다.

 

낙조 전망대는 서쪽 끝자락에 있어 해넘이 경치를 보기에 이만한 곳이 없을 듯하다. 낙조는 어느 계절이고 다 멋있지만 그래도 으뜸은 가을이다. 가을에는 유난히 화려하고 환상적인 붉은 노을이 펼쳐진다. 그 노을 속에서 우주의 뜨거운 기운을 끌어안은 채 바닷속으로 몸을 숨기는 해넘이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이다.

    

직접 보고 싶었던 낙조 전망대 조형물을 찬찬히 살펴본다. 조형물 뒤로 하루가 저물어가는 해넘이 사진에 끌려 이곳이 보고 싶었다.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한 멋스러움이 있다. 안내문에 나와 있는 작품 이름은 “석양을 가슴에 담다”이다. 육지의 끝자락에서 아름다운 일몰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 속의 풍경을 담았다고 한다.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뻗어나간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다. 그건 일렁이는 파도 위에 비치는 아름다운 노을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안내문을 읽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텅 빈 낙조 전망대를 독차지한 채 벤치에 피곤한 몸을 내려놓는다. 오후의 뜨거운 햇살과 열기는 여전하지만,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있어 덥지 않다. 묵직한 바람이 불 때마다 오히려 시원하다. 이것이 자연의 오묘한 배려이자 어우러짐이다.

 

조금 지나 남자분이 도착한다. 청바지에 스틱을 들었다. 복장으로 보아 이곳을 잘 아는 사람으로 보인다. 다시 산길을 돌아가자니 걱정이 태산이다. 목이 마르고 다리도 묵직해서 가는 길은 편하게 빨리 갔으면 싶다. 남자분에게 돌아가는 길을 묻는다. 왔던 길을 되짚어 조금만 가면 올 때 보았던 운동기구가 있는 곳에서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고 한다.

  

독차지했던 낙조 전망대를 그 사람에게 넘겨주고 왔던 길을 되짚어간다. 그 사람이 일러준 대로 바닷가 길로 내려간다. 장마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려가는 길은 깊게 파여 있다. 드디어 툭 터진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면서 바닷가 길이 나온다. 딱딱한 콘크리트 길이지만 편하고 빠르게 돌아갈 수 있어 다행이다. 얼마 가지 않아 배웅 나온 할매 할아배 바위가 수고했다고 등을 토닥여준다. 등 뒤로 쏟아지는 햇살에 떠밀려 발걸음이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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