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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Aug 06. 2020

취석정에서는 지나가는 세월도 잠시 머물다 간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전북 고창은 구경거리와 먹을거리가 풍성한 고장이다. 아내의 고향으로 두 분 처형이 살고 계셔서 셀 수 없이 드나들었다. 여기저기 가본 곳이 많아 고창에 사는 분들만큼이야 못하겠지만 어지간한 곳은 다 안다고 자부했었다. 그런데도 무언가 빠진 것 같고,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채워 넣지 못한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그건 여태 고창에서 정자 구경을 못 했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고창 땅에 빼어난 경치를 품은 정자가 없을 리가 없는데 어찌 된 일인지 보지를 못했다. 


하루는 특별한 일이 없어 인터넷을 뒤지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인터넷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고창의 취석정을 우연히 발견했다. 일부러 찾으려고 했던 게 아니라, 어찌하다 보니 취석정 사진을 보게 되었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었다. 숨겨진 세월 동안 풍파에 이리치고 저리 치여 회색빛으로 바랬지만, 단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모습에 금방 마음을 빼앗겼다. ‘아니! 이렇게 멋진 정자를 왜 여태 몰랐지?’ 고창을 제법 안다고 자부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마음은 이미 취석정으로 달려갔다. 

 

머리에 취석정이 꽂혀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어 안달이다. 그렇다고 해도 고창은 휭하니 다녀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달랑 취석정만 보러 가기에는 오가는 시간과 비용이 녹록지 않다. 이럴 땐 고창에 갈 일이 있으면 참 좋은데… 그걸 핑계 삼아 취석정을 보러 가면 아주 딱 맞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길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다. 갈만한 건수가 없나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본다. 그때 창고에 넣어둔 온수 매트가 퍼뜩 떠오른다. 쓰지 않는 것으로 시골 갈 때 작은 처형에게 주려고 언제부터 보관하고 있던 거다. 옳거니!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건수가 생겼으니 주저할 것이 없다. 시골 갈 때 가져다주어도 된다는 아내 말을 못 들은 체, 온수 매트를 차에 싣고 내빼듯이 고창으로 달린다. 눈치챘겠지만 첫 목적지는 처형 집이 아니라 취석정이다. 고창으로 가는 동안, 궁금한 것이 머릿속을 맴돈다. 정자의 멋은 정자가 품은 경치가 8할을 차지한다. 정자 자체의 아름다움도 무시할 수 없지만, 경치와 정자가 어떻게 어우러졌는지에 따라 정자의 멋이 좌우된다. 

  

고창에서 경치 좋다는 곳을 둘러보는 동안, 경치와 어우러진 멋스럽고 운치 있는 정자를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취석정이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 또 얼마나 멋진 경치를 품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늘 그랬듯이 여행의 동반자이자 안내자인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길을 간다. 낯익은 고장이라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방향은 대략 짐작이 된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평범한 시골 들녘과 마을뿐이다.

 

한때 정자의 매력에 빠져 이름난 정자를 찾아다녔다. 그렇다 보니 정자를 품은 주변 경치가 대략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다. 이름깨나 알려진 정자는 산, 바다, 강과 계곡 중 어느 것 하나는 끼고 있다.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시골 경치는 그것들과 동떨어졌다. 결국 의구심이 고개를 쳐든다. 천하에 길치라 내비게이션의 광신도이다. 아주 가끔 입력을 잘못해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경우가 있어 혹시나 해 목적지를 다시 확인해본다. 목적지는 틀림없다. 

내비게이션은 내가 품은 의구심과 상관없이 연신 쫑알대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온 신경과 두 눈은 차창 밖을 살피는데 정신이 팔렸다. 급기야 목적지를 지나쳤다는 앙칼진 내비게이션 소리에 화들짝 놀라 차를 세운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펴봐도 정자가 있을 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


어쩔 수 없이 다시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여 엉금엉금 기듯이 차를 몬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자 얼마 안 있어 내비게이션이 샛길로 빠지라고 다급하게 외친다. 그렇게 100여 미터를 갔을까? 그제야 담장에 둘러싸인 취석정이 눈앞에 나타난다. 이것을 보면 선입관이 참 무서운 것이다. 



얼핏 보면 취석정은 정자가 아니라, 어느 집안의 사당이나 재실쯤으로 착각할 수 있다. 보기 드물게 솟을대문에 기와를 얹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주변부터 살펴보지만, 정자를 구경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 할 수 있는 그럴듯한 경치는 보이지 않는다. 고창 땅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들녘만 가득해서 딱히 경치라고 할 것이 없다. 

그런데도 취석정이 들어앉은 곳은 평범한 시골의 모습과는 다른 느낌과 분위기를 풍긴다.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섬처럼 취석정을 위해 마련된 별도의 공간으로 느껴진다. 지금껏 보았던 정자들과 달리 취석정은 정자의 순수한 멋이 8할이요 주변 경치가 2할이다. 취석정이 있어 밋밋한 주변이 새로운 경치로 탈바꿈했다.

 

취석정 옆으로 작은 개울이 흐른다.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던지 제법 큰소리를 내며 흐른다. 맑은 물소리는 먼 길을 달려온 피로와 잠시 당황했던 마음을 청량음료처럼 시원하게 해준다. 인기척이 없어 개울물 소리가 더 크고 정겹게 들려온다. 취석정이 품은 세월에 버금가는 큰 나무들이 취석정을 두르고 있다. 


사찰에 가면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거대한 사대천왕이 천왕문을 지키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당당하게 서 있는 나무들은 사대천왕처럼 취석정을 지키고 있다. 그뿐 아니라 취석정의 멋과 운치까지 보태고 있어 정자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특출하지는 않아도 소소하고 평범한 것이 하나가 되어 이곳만의 경치를 이루었다. 


다행히 문이 열려 있다. 세월이 할퀴고 간 할아버지 손등처럼 거칠거칠한 문을 조심스럽게 밀친다. 끼익~~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세월이 부서지고 갈라지는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혼자 있다는 사실에 잠깐 가슴이 철렁한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안은 채 문 안으로 들어선다. 지금, 이 순간은 여행자가 아니라 마치 탐험가가 된 듯한 기분이다.

 


색이 바랠 대로 바랜 취석정은 세월의 풍파를 숨기지 않고 다 드러냈다. 그 어디에도 화려한 단청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취석정을 받치고 있는 목재들은 세월이 휘두른 날카로운 칼날에 이리저리 갈라져 있다. 그렇게 거친 세월을 이겨내고 지금도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취석정을 그리는 데는 회색 물감 하나면 충분하다. 바싹 마른 회색빛은 은근한 멋스러움과 함께 고풍스러움을 보여준다. 채색을 가하지 않는 수묵화는 먹의 농담으로 그린다. 그 수묵화에 딱 어울리는 대상이다. 취석정은 단청을 입히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단청을 입혔다면 지금의 이 운치와 멋스러운 분위기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 훨씬 더 보기 좋다. 단청은 묵은 세월의 흔적을 보톡스나 필러를 맞은 것처럼 가릴 수 있다. 그보다 옛것은 옛것대로의 모습과 흔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훨씬 더 매력적이다. 


정자 한가운데는 마룻바닥보다 바닥이 낮은 방이 하나 들어 있다. 방문이 사방으로 나 있어 문마다 보이는 경치가 다 제각각이다. 방에 앉아 방문으로 들어오는 경치를 돌아가며 즐기는 것도 여유이자 풍류이지 싶다. 정자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상상의 즐거움이다. 정자 안에 내가 있다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 보는 것 이상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정자를 둘러볼 때는 카메라 셔터보다 내 안의 상상력 셔터를 먼저 누르는 것이 좋다. 그만큼 여행이 풍요로워진다. 

 

취석정 주위에는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큰 돌들이 있다. 그 돌들을 보면 왜 취석정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이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취석정의 “취”를 가질 취(取)로 생각했다. 그렇게 갖다 붙이니까 정자와 돌이 어우러진 정자의 이름이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취석정의 취는 “취할 취(醉)”이고, 석은 돌 석(石) 자다. 취석은 욕심 없이 한가로이 살아간다는 의미로, 중국 시인 도연명이 술에 취해 집 앞에 있는 돌 위에서 잠들기도 했다는 고사에서 따왔다.  



그 돌들은 평범한 돌이 아니라 고인돌이다. 담장 안에 7기가 있고, 밖에 3기가 있다. 왜 이런 곳에 고인돌이 있을까 싶겠지만, 고창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고창은 고인돌 유적지가 있을 만큼 고인돌이 많은 곳이다. 이 고인돌도 취석정만의 특별한 경치를 만드는데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 지금까지 꽤 많은 정자를 보았지만, 고인돌을 품은 정자는 없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취석정은 대접받을 만하다.

 

취석정은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경치는 없어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나름의 멋과 운치를 품고 있다. 기교를 많이 부리는 예술가가 있는 반면에 순수함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가가 있듯이 취석정은 정자 그 자체로 멋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취석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조광조의 제자였던 김경희가 세웠다. 사화를 겪으면서 고향에 돌아와 취석정을 짓고 시문과 산수를 즐겼다고 한다.

 

시대는 달라도 사람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를 게 없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정자를 짓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와 풍류를 즐겼다. 늘 쫓기듯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쉬어갈 수 있는 삶의 여유와 공간이 필요하다. 가끔 정자에서 옛사람들의 여유와 멋을 느껴보는 것도 한 박자 쉬어가는 삶의 지혜일 수 있다. 취석정은 이름난 관광지가 아니라 차분하고 조용하다. 그만큼 정자를 둘러보는 여행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 취석정이 끌어안은 세월의 파편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다시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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