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밤이 주는 절대의 어둠과 고요를 마주했다

by 레드산


요즘은 전국 산마다 자연휴양림이 있다. 자연을 좀 더 가깝고 편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 사람들이 아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자연휴양림 숲속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야영장과 숙박시설은 인기가 무척 높다. 숙박시설은 계절을 막론하고 주말에는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피톤치드 가득한 숲속의 맑은 공기와 싱그러운 경치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데, 숙박비까지 저렴해서 사람들이 정말 좋아한다.


1박 2일 보성 여행에서 하룻밤을 묵을 곳으로 제암산 자연휴양림을 정했다. 숙소를 예약하기 어려운 주말을 피한 주중의 일정이라 예약은 순조로웠다. 제암산 자연휴양림의 숙박시설은 리조트 형태의 제암휴양관과 숲속휴양관이 있고, 독채로 사용할 수 있는 숲속의 집이 있다. 기왕이면 좀 더 조용히 머물 수 있는 숲속의 집을 선택했다.


요즘 펜션들은 경쟁이 치열해서 내외부 시설이 으리으리하다. 물론 그만큼 숙박비용이 비싸긴 하지만… 자연휴양림 숙박시설의 시설은 펜션들과 비교할 수 없지만, 쉬면서 묵어가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자연의 숲속에 안겨 맑은 공기를 마시며 조용히 머물 수 있는 여건을 생각하면 오히려 고급 펜션이 부럽지 않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여러 군데 자연휴양림에서 묵었다. 그런데 이번 제암산 자연휴양림에서는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절대의 어둠과 고요를 오롯이 느끼고 즐긴 덕분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실 제암산 자연휴양림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그런 어둠과 고요가 있었지만, 그걸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다른 곳에서 머물 때는 여행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함께여서 먹고 마시고 떠들다 보니까 산과 숲이 내어준 그 어둠과 고요를 느낄 새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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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산 휴양림에 도착한 게 오후 4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도착해서 짐을 내리자마자 졸음이 사정없이 쏟아졌다. 밤잠을 자지 못할까 봐 어지간해서는 낮잠을 자지 않는 편인데. 저절로 감기는 눈꺼풀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결국 밤에 잠을 잘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나중에 두고볼 일이라 일단 눈을 붙였다. 잠깐 눈을 붙일 생각이었는데, 깜박하는 사이에 두 시간 지나 눈을 떴다.


안 그래도 어둠이 일찍 내리는 산속이라 이미 사방은 어둠이 점령했다. 까맣디까만 어둠이 산속의 모든 생명체를 숨죽이게 했는지 사방은 진공상태처럼 고요했다. 간단히 빵과 차 한잔으로 저녁을 때우고, 어둠과 고요 속에 몸과 마음을 내맡겼다. 베개로 허리를 받치고 두 다리를 쭉 뻗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웠다.


손에서 잠시라도 떨어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같이 여기는 핸드폰도 큰마음을 먹고 멀찌감치 밀쳐놓았다. 여행 짐을 꾸리면서 깜박하는 바람에 책도 한 권 챙기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까 이 어둠과 고요 속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TV를 볼까도 생각했지만, 핸드폰도 치웠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상황에서 맞이하는 어둠과 고요가 처음에는 무척 부자연스럽고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면서 몸과 마음이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일단 머릿속이 가벼워졌다. 또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지니까, 늘 강박에 갇혀 지냈던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느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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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시간이 지나 어둠과 고요에 오롯이 적응되니까,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밤의 어둠과 침묵의 고요가 온전히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커튼을 열어 창밖을 보면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하늘의 달과 별도 산속의 짙은 어둠을 걷어내지 못했다. 그냥 물끄러미 그 어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얀 도화지에 작은 점 하나도 보이지 않게 새까맣게 칠해진 어둠이었다. 도시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볼 수 없는 그런 어둠이었다.


너무 진해서였을까? 진하디진한 어둠이 갑자기 내게 달려들 것 같아 살짝 두렵기까지 했다. 방에는 그 어둠을 뚫고 나오는 아주 작은 불빛이 하나 있었다. 벽에 부착된 난방조절기의 아주 작은 빨간색 등에서 예리하게 어둠을 가르는 불빛이 뿜어져 나왔다. 여느 때 같으면 다른 불빛에 치여 존재감이 없었을 그 불빛이 갇힌 공간의 유일한 불빛이었다. 그 불빛은 레이저에서 쏘아져 나오는 불빛처럼 강렬했다. 다른 때였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그 작은 불빛이 마냥 신기했다.


시각이 어둠에 잠겨 있는 동안, 청각은 고요 속에 빠졌다. 사방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니까, 나도 모르게 청각이 예민해진다. 갑자기 찾아든 낯선 고요가 익숙지 않은 청각은 고요 속에서 벗어나려고 소음이나 소리를 찾아보지만 허사다. 각종 소음에 최적화되어 있는 청각이 절대의 고요를 받아들이지 못해 어쩔 줄 모른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주변에 귀 기울여보지만,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런 고요를 순수한 고요라고 불러도 될까? 인간은 환경에 잘 적응하는 동물이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체념한 듯이 그 고요를 받아들인다. 그 덕분에 평소에 잊고 살았던 나의 숨소리가 크고 똑똑하게 들렸다. 콧속을 드나드는 미세한 공기의 흐름이 스피커 볼륨을 최대로 높인 것처럼 크고 선명하게 들렸다. 지금껏 살면서 내 숨소리를 이렇게 또렷하고 선명하게 들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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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요한 상태를 표현할 때 쓰는 말로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비유법의 하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제암산 자연휴양림에서 맞이한 이 밤의 고요 속에 있으면 그 말이 사실처럼 여겨졌다, 바늘을 가지고 있었다면 당장 꺼내서 실험해 봤을 거다. 이렇게 어둠과 고요 속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있다 보니까 언제인지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다.


날이 밝고도 한참 지나 느지막이 잠에서 깼다. 일어나자마자 놀란 건 온몸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찌든 삶의 찌꺼기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어 늘 찌뿌둥했던 몸이 거짓말처럼 날아갈 듯이 개운했다. 남들이 들으면 호들갑을 떤다고 하겠지만, 정말이지 오랜만에 몸과 마음이 가벼운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을 먹고 제암산 자연휴양림의 더늠길을 걸었다. 제암산 허리를 감도는 5.8km의 더늠길은 무장애 데크길이다. 급한 경사가 없어 누구라도 숲속을 거닐며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오늘은 4월이 시작되는 첫날이다. 산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었다. 아직 연둣빛 새잎들이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분명 봄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