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곳에는 빨간 모자 동자상들이 있다.

by 레드산


우리 속담에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보성 여행에서 대원사를 만난 게 그랬다. 4월이 시작되는 첫날, 보성을 여행했다. 이미 여기저기서 벚꽃 소식이 들려오던 때라 따뜻한 남쪽 지방인 보성에는 벚꽃이 활짝 피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요 며칠 전, 느닷없이 찾아온 꽃샘추위 때문인지 보성의 벚꽃들은 꽃망울을 맺기는 했지만, 추위를 이기지 못해 눈을 감고 있었다.


보성 대원사로 가는 길에 벚꽃길이 있다. 이 길은 ‘대한민국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힐 정도로 많이 알려진 벚꽃 명소다. 대원사 벚꽃길을 찾아가면서 활짝 핀 벚꽃의 화려한 경치를 잔뜩 기대했지만, 불청객이 찾아오는 바람에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저수지를 끼고 벚나무가 늘어선 경치는 그 자체로 멋있었다.

벚꽃길이 끝나는 곳에 대원사가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원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벚꽃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과 어쩔 수 없이 남게 된 시간을 이렇게라도 채울 생각이었다. 이렇게 만난 대원사는 꿩 대신 닭이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꿩 이상의 닭이었다.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일주문을 지나자, 사천왕루가 나타났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에 이름있는 사찰은 빼놓지 않고 찾는 편이라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사천왕문을 봤다. 그렇다 보니까 으레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사천왕루를 바라보았다. 그나마 눈길을 끈 건 다른 사찰과 달리 문이 아니라 누라는 점과 입구에 걸려있는 목어였다.


사찰이니까 목어가 걸려있는 건 특별한 게 아니지만, 목어 밑에 걸어둔 하얀 고무신에는 눈길이 갔다. 목어 양쪽에 줄을 매달아 거기에 고무신을 한 짝씩 매달아 놓았다. '아니? 여기에 웬 고무신?' '뭔 의미가 있나?' '그냥 재미 삼아 걸어 놓은 건가?' 궁금했지만, 딱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그냥 지나쳤다.


사천왕루을 지나 몇 걸음을 옮기고 나니까, 무언가를 흘리고 가는 것 같은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을 달고 갈 수 없어 다시 사천왕루로 되돌아갔다. 그제야 여느 사찰과 달리 사천왕상이 조각상이 아니라 돋을새김의 부조로 되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사천왕상이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크고 우락부락한 모습을 하고 있어 눈여겨 보지 않았다. 지금껏 많은 사찰을 가보았지만, 부조로 된 사천왕상은 처음이지 싶었다.


DSC09884.JPG


별다른 생각 없이 찾은 대원사에서 나름 독특한 것을 보게 되니까 은근히 기대와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의 마음을 강하게 잡아끄는 결정적인 게 있다는 걸 까맣게 몰랐다. 살짝 부푼 기대감을 안고 사천왕문을 지나 연지문으로 갔다. 그때 오른편 담장 밑에 빨간색 뜨개 모자를 쓴 동자상들이 줄지어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뭐지?' 가던 발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어? 이거 어디서 봤는데?' "어디서 봤지?' 순식간에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재빨리 기억의 창고를 헤집어 보지만 생각이 날듯 말 듯 나지 않았다. 결국 궁금증을 풀지 못한 채 연지문을 지나 극락전에 들어섰다. 극락전을 보면서도 머릿속은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혼자 애쓰고 있었다.


극락전 한쪽에는 커다란 태안 지장보살과 함께 빨간 모자를 쓴 동자상들이 또 있었다. 태안 지장보살은 오른손에 석장을 짚었고, 왼손에는 동자를 안았다. 이것을 보니까 궁금증이 한층 더 커졌다. 그렇게 애를 태우며 풀리지 않던 궁금증은 극락전 앞에 있는 안내문에서 풀어졌다. 안내문을 읽으니까 그제야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전에 본 것이지만, 기억은 빠르게 선명해졌다. 그때 TV를 보면서 특이한 사찰이라 언제 한번 꼭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시간이 오래되어 TV 속의 그곳이 대원사였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생각지도 않게 가보고 싶었던 곳을 우연히 만나면 복권을 맞은 것처럼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이때부터 벚꽃에 대한 아쉬움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고, 대원사에 관한 관심만 커졌다.


DSC09907.JPG


해발 609m 천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대원사는 백제 무령왕 3년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이 창건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대원사는 TV에 빨간 모자 동자상이 나오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동자상은 말 그대로 아이처럼 자그마하다.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빨간 모자 동자승은 낙태 유산된 아기들의 영혼을 상징한다. 모자의 붉은 색은 어머니의 혈이고, 모자 끝부분의 흰색은 아버지의 정을 나타낸다고 한다.


대원사는 태아 영가들의 천도를 기원하는 도량이다. 안내문을 읽고 나면 궁금증이 풀림과 동시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착잡해진다. 요즘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낙태는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낙태 추정 건수가 약 3만 2천 건이었다.

이건 공식적인 숫자고, 비공식적인 것까지 합친다는 그 수는 훨씬 많을 게 분명하다. 예전에는 수십만 건이었다고 하니까 많이 줄어 다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하다. 요즘 시간을 쪼개서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하고 있다. 시험과목 중의 하나가 법학개론이다. 법학개론을 공부하면서 태아를 위한 보호 조치 내용을 처음 알게 되었다.


태아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보아 일반적으로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일반적 보호주의와 함께 중요한 법률관계에서만 개별적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개별적 보호주의가 있다. 우리 민법은 개별적 보호주의를 취하고 있다. 개별적 보호주의에 따라 태아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있고, 상속 및 유증의 권리도 인정된다. 이것을 보면 태아는 단순한 생명체를 넘어 인간이라 할 수 있다.


다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낙태를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왔다가 이유도 모른 채 생명이 꺼져버린 태아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를 기준으로 할아버지 세대는 보통 자식이 7~8명이었고, 아버지 세대는 4~5명이었다. 70년대에는 급격한 인구 증가가 사회문제로 인식되어 정부에서 강력히 산아제한 정책을 추진했다.


DSC09891.JPG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그땐 이런 표어들을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 정책의 효과 때문인지 내 세대는 대부분 자녀가 둘이다. 이거라도 잘 지켜졌으면 좋았을 텐데, 요즘의 우리나라 출산율은 심각하다.


2024년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한 명이 채 안 되는 0.75명이었다. 이는 OECD 국가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최저 수준이다. 이렇게 된 데는 높은 양육비와 교육비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복합적으로 뒤엉켜 있지만, 어쨌든 우리에게 인구절벽은 발등의 불이 되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낙태 문제도 이제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할 것이다. 물론 개개인의 인식변화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생각지도 않게 만난 대원사에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떠난 태아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우리의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극락전 뒤쪽으로는 농림축산식품부 주관 국가중요농업유산 11호로 지정된 보성녹차 시배지가 있어 특별함을 더해주었다. 나 역시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보성 하면 녹차를 먼저 떠올린다. 그만큼 많이 알려진 보성녹차의 시배지가 대원사 뒤편에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그런 점에서 대원사는 나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연속으로 안겨주었다.


극락전을 드나드는 연지문에는 커다란 왕 목탁이 걸려있다. 머리로 치는 목탁인데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아무리 소원을 들어준대도 머리로 두드리자니 쑥스러워 가만히 손으로 쓰다듬었다. 소원이 이루어질지 안 이루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