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삶 Apr 06. 2023

눈에서 코피가 나요

나는 브랜드 매니저다. 일 년 동안 정성 들여 준비한 신제품 론칭이 코앞이었고, 그날은 매장에 걸릴 광고 시안을 테스트하는 날이었다. 광고물이 벽에 걸리고 조명이 탁 켜지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마치 코피가 눈에서 나는 느낌이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으려고 같이 있던 동료들에게 말도 않고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신제품 성능 테스트 팀에 전화를 건다.

오랜 경력으로 나보다 나이가 나보다 열다섯 살은 많은 분이다.

그는 평소에도 고압적인 태도로 어린 직원들의 기를 죽이기로 유명하다.

조금 짬밥이 쌓인 나는 30대의 넉살과 ESFP다운 기질을 업무에 십분 발휘하여

웬만하면 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그날은...

상부의 압박에 지치다 못해 답답한 마음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과장님, 무슨 상황인지 다 이해는 했습니다만, 벌써 두 달째 지연이라 제때 출시 못할까 걱정돼서 그래요. 저 웬만하면 이런 말씀 안 드리잖아요~ 그럼 다음 테스트는 언제입니까? 빨리 좀 잡아주세요. 부탁드려요."

"... 뭐라고 중얼대는 거야."

오, 나의 호소와 질문과 부탁을 그는 한마디로 일갈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 지금 회사 사람과 통화한 거 맞는 건가? 그 정도 막장인 분은 아닌데?

상식 밖의 일에 너무 충격받은 나머지 못 들은 척했다. 아니, 내가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참자. 여기서 이 사람과 싸우면 내 일만 더 복잡해진다.




브랜드 매니저가 제품 기획만 하는 건 아니다.

물량이 달릴 때는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빠르게 물류창고로 옮겨서

주문한 고객이 제품을 늦지 않게 받아볼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대리님, 안녕하세요. 어제 부탁드린 건 차량에 실렸을까요? 중요한 물량이라 첫 차로 출발 부탁드렸습니다. 저희 팀장님도 챙겨달라고 메일 드렸고요."

"무슨 브랜드팀에서 이런 것까지 챙겨? 시간이 많은가 봐.

자꾸 팀장이 시킨다 어쩐다 하는데 다 애들이잖아. 현장은 현장의 법칙이 있어. 때 되면 다 가."

"그럼요 알죠, 어려우시겠지만 오늘 출고가 꼭 필요한 물량이라..."

수신 확인을 해보니 그는 내 메일을 읽지도 않았다.




광고 테스트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내일까지 제출할 보고서를 쓰려면 자료를 읽어야 한다. 흰 것은 배경이요 검은 것은 글자로다.. 어라.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글이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아니, 눈으로는 훑고 있지만 도무지 뇌까지 그 의미가 닿지 않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