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때 이야기다. 학교를 가기 위해선 언덕 2개를 지나야 했다. 기억에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 등하교를 했던 것 같아 지도를 살펴보니 직선거리로는 약 600미터가 나온다. 당시 그 사이에는 산이 있었으므로 직선으로 다니진 않았다. 통학로가 어렴풋이 지도상에 남아있는 것 같아 다시 재보니 약 1킬로미터가 나온다.
그래, 역시 내 기억이 맞았어. 그리고 난 유난히 키가 작았지.
같은 반에는 늘 짝을 이루고 다니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있었다. 여아는 늘 원피스와 레이스로 장식된 흰 양말과 구두를 신었고, 머리카락도 늘 단정하게 묶고 다녔다. 항상 깨끗해 보였고, 고귀해 보였고, 우아해 보였다. 남아는 셔츠와 재킷을 입고 헤어젤을 발라 앞머리를 싹 넘겼고 고급진 책가방을 여린 등짝에 메고 항상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
하루는 하굣길에 앞서가는 그들을 발견했다. 그들과 나는 같은 방향으로 걸었고 본의 아니게 뒤쫓는 모양새를 한 것이 마음에 안 들어 앞서갈까, 더 늦춰 거리를 넓힐까 고민하다가 그냥 걷기로 했다. 한참을 걷다가 첫 번째 언덕 직전에 있는 아파트 앞에서 여아와 남아가 멈췄다. 아파트 입구에는 그들 각자의 어머니가 마중을 나와 그들을 다정하고 따스하게 반겨주었다.
내게 등 돌린 아이들 지나치며, 나는 여아의 레이스가 달린 양말을 보았다. 남아의 값비싸 보이는 네모난 가방을 보았다. 그들 어머니의 온기가 깃든 미소와 활짝 벌린 두 팔을 보았다. 등을 토닥이는 부드러운 손길을 보았다. 하늘과 맞닿은 높은 아파트를 보았다. 그리고 내가 올라야 할 언덕을 보았다.
저들은 부자다. 모든 걸 다 가졌다. 나는 저 여아처럼, 내 동생은 저 남아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나의 소감이었다. 지금 내 첫째 아이가 9살인데 참 순수하고 귀엽다. 고작 8살이던 나는 어찌 그렇게까지 비관적이었을까.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어찌 그렇게 세상의 잔혹한 이면을 먼저 알아챘을까. 내게 안다는 것은, 앎이라는 것은 불행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