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에 빠져버렸다.

by 홍사유

나의 생일이었던 어제, 남편과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아니, 요 근래 대부분이 그랬다. 종일 두통에 시달렸고 온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글쪼글해 무기력했다. 후두부를 손으로 잘근잘근 씹어보고 창문을 열어 폐로 찬 바람을 들이켜도 머릿속에 안개가 자욱한 것처럼 정신이 흐릿했다. 그 전날 밤에는 아이들이 잠든 후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데 몹시 피곤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소설을 그 순간 끝내고 싶었다. 새벽이 시작될 즈음 마지막 장을 넘기며 정말로,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좋았다. 위로와 안식을 얻었고 벅차오름을 느꼈다. 동시에 소감과는 별개로 내 존재가 고이고 썩어가는 느낌이 들어 불쾌했는데, 소파에 너무 깊이 몸을 밀착시킨 나머지 그랬나 싶다가 3년째 살고 있는 이 집의 어떤 풍수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느낌도 들었다. 결국 섣부른 감이 없잖아 있지만, 너무 오랫동안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던 탓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외부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다음날인 내 생일엔 숲과 나무의 기운을 받고자 뒷산에 올랐다.


쉬는 날이었던 남편과 방학중에 있는 둘째를 데리고 뒷산을 향했다. 산이라고 해봤자 동네 야산 수준이었고 어린 둘째를 고려해 등산 코스가 아닌 산책로 코스를 택했다. 가볍게, 무심하게, 여전히 몽롱한 머릿속을 탈탈 털어내어 온갖 나뭇가지에 다 걸어두고 내려오리라. 시작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둘째는 가장자리로 밀려난 낙엽들 위를 걸으며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즐거워했고, 오고 가는 사람들은 그런 아이에게 미소를 보내주었다.


아니, 그런데 이 녀석이 돌아올 때는 힘이 드는지, 도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돌아오는 내내 안아달라며 짜증을 내는 통에 남편과 나는 완전히 지쳐버리고 질려버렸다. 약 12킬로그램인 3살 둘째는 심지어 엄청나게 두껍고 미끄러운 패딩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의 품에 안긴 상태로 짜증을 부리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산속을 누비는 고라니처럼 재빠르고 날렵하게 몸을 비틀며 우리의 품을 벗어나려고 하다가도 다시 파고들었다. 아, 이게 무슨 극한 노동이람. 이러려고 오른 산이 아닌데. 그래,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이런 것이었지. 반복되는 굴레 위에서 예측불가한 함정에 빠져버리는 것. 아아,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의 상황이 딱 그거였다. 함정에 빠진 상태. 나와 남편이 최근 겪는 지독한 무력감과 지끈거리는 두통, 가슴을 옥죄는 느낌은 우리가 함정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겪는 현상이다. 우린 이 곤욕에서 하루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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