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호주에 도착한 지 약 5개월쯤 되는 시점에 텀블러(Tumblr)에 쓴 글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지지 않는다는 말, 유명한 김연수 작가님의 산문집 제목이며 내가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거나 자아가 쭈글쭈글해졌을 때 찾아 읽는 글들 중 하나다. 몇 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그때의 내 수준에 맞는 인용구들을 터억하고 집어내 머릿속에 쏙쏙 박히게 해주는 글들. 이런 글들은 당장 답을 알기 위해 찾아 읽는 글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읽다 보면 위로받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때의 내게 맞는 연고를 발라준다.
우리의 영혼은 언제든 찾아 읽을 수 있는 글들, 푹 빠져서 현실감각과는 잠깐 안녕-하게 만드는 볼거리와 지친 하루를 싹 잊고 귀르가즘을 느끼게 해 줄 들을 거리들을 필요로 한다. 콘텐츠라는 단어가 식상해서 최대한 안 쓰려고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전부 콘텐츠와 맞닿아있으며, 거기에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따듯한 레몬티와 하루를 마치고 체온보다는 조금 뜨거운 물에 좋아하는 바디 클렌저를 곁들인 샤워까지 더하면 좋아하는 걸 적극적으로 추구해도 어느 누구에게도 전혀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하루를 완성할 수 있다. 어렵지 않게 나름 잘 살았다고 자부하며 잠자리에 들 수 있는 하루가 된다.
소소히, 하지만 꾸준히 나새끼(가끔은 정말 새끼란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나 자신)를 돌보는 것
이곳 호주에 오면서 하기 싫은 것은 절대로 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쫓아보기로 했었다. 그 과정에서 괜히 어느 조직에도 속하지 않고 둥둥 떠다니는 스스로를 어떤 타이틀로 정의하려 하고, 어느 곳에라도 속한 존재로 발을 걸쳐놔야만 한다는 욕구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자유를 찾아왔어도 스스로를 자유롭지 못하도록 가두는 것들은 무궁무진하게 많다. 완벽주의, 비교, 불안감, 미래의 특정 위치나 상태에 대한 집착 등. 현재의 내가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수많은 것들 사이에서 의식적인 삶 살기란 매일 조금씩 수련하고 또 조금씩 퇴보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다만, 고맙게도 그 순간들에 내 곁에는 고마운 글들이 있었다. <지지 않는다는 말>, <태도에 관하여>, <상처받지 않는 영혼>,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와 같은 책들. 낯선 곳에 와서 마음이 너덜 더 널 해졌을 때 나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에서 그 책을 읽고 다시 새로 태어난 것처럼 집 밖으로 발을 내딛고 활짝 펴진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 일을 했다.
자아가 쭈글쭈글해진 육 개월 전의 나는 마케팅이니 비즈니스니 하는 일들이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일로서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대신 너무 자주 방전시키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 큰 역할을 맡을 텐데 큰일이라고 생각했고 그 모든 것을 해낼 자신이 없다면 멈출 수 있을 때 멈추고 싶었는데 - 이 먼 곳 호주로 갭이어를 갖겠다고 떠나오자마자 COVID-19가 창궐했고 돌고 돌아 다양한 형태의 마케팅류 일을 다시 하게 되었다는 거. 그런데 마음의 창이 달라지니 이 일이 하나하나가 그렇게 새롭고 감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쯤 되고 보니 멈춤을 원했던 마음 또한 잘해보고 싶었고 내 삶에 애정이 많았던 어린 마음임을 알았다. 늘 넘쳐서 나를 힘들게 만들던 그 순수한 열정이 짠하고 안쓰러웠다. 그 어리고 상처받기 쉬운 마음이 건강한 거라고 말해주는 인생의 선배들이 있어서 지난날의 나는 위로받고, 오늘날의 나는 더 자신감 있는 발자국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이십 대의 무조건 내 전부를 쏟아야만 그나마 만족할만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지금도 누군가는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기 위해 모진 새벽을 넘기고 있을 테지.
살살, 밸런스를 지키면서 해야 다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다
김연수 작가님은 삶이 달리기 같고, 달리기를 통해서 삶에 창의적인 시각을 갖게 해 줘서 달린다고 했는데 나는 비슷한 이유로 요가를 한다. 긴장과 이완의 반복, 몰입과 내려놓음의 사이클에서 꼭 백 퍼센트를 다 쏟지 않아도 괜찮고 한 칠십 퍼센트쯤, 아니면 육십 퍼센트쯤만 쏟아서 일을 해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을 배운다. 아니, 그전엔 나를 위한 말 같지 않았던 것들을 조금 다른 세상에 와서 요가를 하며 비로소 체감하였다. 그쯤 되니 십 년쯤은 해보고 내 길인지 아닌지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애써 외면했던 말 또한 나를 위한 말로 들린다. 사실은 나의 일을 너무나 좋아했고 일을 할 때 호르몬이 샘솟아서 머리가 팽팽 돌고 뇌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는 일의 축복을 누리던 한 사람으로서 두려움 때문에 그 끈을 놓아버리기는 것은 너무 미련 남는 장사가 아닐까. 그보다는 완급조절하며 나를 달래는 법, 갑갑한 틀을 깨서 자유롭게 놓아주는 쪽을 택하겠다.
매일 널을 뛰는 에고가 하기 싫다고 저항하는 크고 작은 일들은 사실은 제대로 쉬어주지 않아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아서, 혹은 에너지가 엥꼬 날까 봐 두려운 마음에서 비롯됨을 느낀다. 삶의 의미를 찾겠다고 백날 쉬어봐야 혹은 백날 일만 해봤자 의미는 그런 곳에 있지 않다는 김연수 작가님의 말처럼, 나 새끼를 데리고 걸어가는 길고 긴 여정을 조금은 가볍게 즉흥적으로 즐기면서 가보자. 인생의 선배들이 혹은 동료들이 남긴 글과 영상과 음악을 마음껏 향유하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은 그만 좀 느끼고 약한 우리를 받아들이고 연대하며 나아가자.
원래 인간은 약하고 불안해서 다른 사람들과 연대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 말은 유튜브 강연에서 가져온 것이므로 출처를 남긴다.